열왕기하 18장 1–8절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 삼년에 유다 왕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중략)…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기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하지 못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병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중독문제입니다. 이 중독은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굉장한 파괴를 가져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하였더라도 정신을 차리고 돌아봤을 때, 건강도 잃고, 가족도 잃고, 친구도 잃고, 추억도 잃고, 온전히 헝클어져서 망가져있는 자신만 발견하게 되는 무서운 현상입니다. 이것이 마치 전부인 냥 생각하며 삶에 균형을 잡지 못하게 되는 모든 일이 이에 해당됩니다.

게임중독, 도박중독, 사랑중독, 알콜중독, 약물중독, 쇼핑중독, 니코틴중독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중독에 빠지게 되면, 초기엔 스스로에게 쉴 새 없이 경고음이 스스로에게 작동합니다. “지금 뭔가 잘못됐다. 내게 잘못된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쳐야한다. 끊어야한다.” 이런 생각과 걱정들이 쏟아집니다. 그럼에도 그것에 빠져서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멈출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중독에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앞에서 나열한 여러 중독들과 하나님은 서로 섞일 수 없는 완전한 상극이기 때문에, 중독이 깊어질수록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반비례하여 망가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본문 속의 상황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다윗 왕 시기 이후, 엄청난 부요함과 평화로움을 누리던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해이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후, 솔로몬 시기로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왕국은 그 후 두 나라로 분리되었습니다. 남유다, 북이스라엘. 이렇게 갈라진 두 왕국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 속으로 빠집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전쟁과 조공을 번갈아가며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것입니다. 패기 있는 왕이 나오면 극심한 전쟁을 하여 땅이 황폐해졌고, 두려움이 많은 왕이 나오면 바벨론이나 이집트를 섬기며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렇게 두 이스라엘은 망가지기 시작했으며, 가장 기본인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생활 또한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청년이었던 히스기야가 현재의 사태를 적나라하게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히스기야 왕이 그렇게 이스라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고, 문제를 받아들여서 그에 맞게 해결하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여유가 있으실 때, 히스기야 왕이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에 대해 분석해놓은 성경본문을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역대하 29장, 30장에는 히스기야 왕이 본 이스라엘의 문제점을 짚어놓은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상태를 분명하게 들여다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될 때라야, 우리의 문제가 조금씩 치료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온 히스기야의 결단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다 죽어가는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해 어떤 특단의 조치를 내렸을까요? 히스기야의 개혁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역대하 31장을 보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안에 있는 우상, 쓰레기, 먼지 등을 털어버렸습니다

“이 모든 일이 끝나매 거기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없애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자기들의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대하 31:1)

이 본문을 우리에게 적용시켜보면,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게 된 사람은 자신이 가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붙잡고 있었던 잘못된 우상들은 자비 없이 깨뜨리고, 털어내고, 뽑아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초부터 적당히 타협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알콜중독자가 “이제는 술을 딱 한잔만 해야겠어. 그리고 적당히 삶과 균형을 이뤄야지”하고 합리화를 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망가질 때로 망가지고, 깊은 중독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간 사람들은 절대로 중독된 것과 적당한 타협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위와 같은 결심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애초부터 심각한 중독 상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느낀 사람이라면, 타협 없이 잘못된 것들을 바로바로 제거하고, 정리해나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히스기야는,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다시 예배를 회복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열을 정하고 그들의 반열에 따라 각각 그들의 직임을 행하게 하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휘장 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고” (대하 31:2)

제사장과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다시 예배를 드리는 일에 집중하도록 임무를 배분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을 우리의 몸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이스라엘이라는 우리의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각 기관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임무를 위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어느 기관이 필요할까요? 보통 눈, 코, 입, 귀, 손과 발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히스기야 왕처럼 이 기관들에게 일을 배분하십시오. “눈아 성경을 보아라. 코야 말씀 속의 향기에 취해라. 입아 주님을 찬양하라. 귀야 말씀을 들어라. 손아 십자가를 잡아라. 다리야 무릎을 꿇고, 기쁨으로 뛰어라.” 이렇게 자신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거룩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 말씀하십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 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 자체가 거룩한 성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히스기야와 같이 종교개혁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히스기야왕은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쳤습니다

“또 왕의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 곧 아침과 저녁의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의 번제에 쓰게 하고” (대하 31:3)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 예배를 드리기 위한 번제물들을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소유를 바치는 기회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유는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헌금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것. 우리가 우상시하며 떠받든 우리의 재정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자, 오직 주님이 모든 것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행위가 바로 헌금입니다. 또한 시간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루에 받는 24시간이 모두 하나님이 주신 시간임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시간 얼마를 딱 떼어서 하나님께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묵상하며, 대화하는 시간이 바로 하나님께 시간을 바치는 방법입니다. 또 열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재능을 돈을 버는 곳이나 성공하는 곳에만, 인정받는 곳에만 기울일 줄 알았다면, 이제는 하나님께 열정을 드리고 재능을 바쳐서 하나님을 위해 쓰는 일들이 많이 있을수록 좋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을 위해 바치고, 쓸 줄 알아야 합니다.

히스기야의 네 번째 개혁은, 단 한 가지에 집중한 일입니다

“또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을 명령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몫의 음식을 주어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하니라” (대하 31:4)

예전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우상숭배에 젖어 있어서, 하나님의 전으로 번제물들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먹고 살 방법이 없었기에 따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와도 제사장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밭에 가 있다거나, 다른 일을 하느라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하나님 일에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혼신을 쏟지 못하는 비극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다시 예배하고 싶어 막상 예배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임무를 맡기고, 소유를 바쳐서 시간을 드려 딱 책상 앞에 앉아도 수많은 걱정들과 고민들이 자신을 덮쳐옵니다. 기도하기 위해 앉은 자리인데, 한참 고민만 하다가 시간은 훌쩍 지납니다. 성경을 읽으려는데 갑자기 친구들한테 연락이 오고, 기도를 하려다가 미래 걱정에 한숨을 푹푹 쉽니다. 찬양을 하려다가 불안한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결국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에 늘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늘 히스기야와 같이 하나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묵상시간에는 다른 사람들이 방해하지 않도록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방법, 또 미리 벽에다가 여러 걱정거리들을 써놓고, 그 생각에 잠식 당하지 않도록 만만의 준비를 하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문제점들을 파악하여 조속히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둘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명령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방들을 준비하라 하므로 그렇게 준비하고” (대하 31:11)

하나님의 전 안에 작은 방을 만들어두어, 그 방에 이스라엘인들이 가져온 예물과 십일조와 거룩하게 구별된 물건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이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거룩하게 구별된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에서 제가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성전에 따로 작은 방을 만들었듯이, 우리도 따로 작은 방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방은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것들을 쌓아놓는 방입니다. 언제고 꺼내볼 수 있도록, 언제고 되새겨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과 시로 가득한 방이 여러분에게도 하나씩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봅시다. 지금 여러분이 너무너무 많이 화가 나있습니다. 딱 떠오르는 성경구절이 있으십니까? 또. 여러분이 지금 너무나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탈출구가 없는 듯한 답답함이 온 맘 가득합니다. 그 때 묵상 하고픈 성경구절은 무엇입니까? 또.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친한 사람으로부터 너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 때 당장 읽고 싶은 본문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성전 안에 따로 방이 만들어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런 상황이 닥칠 때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들이 생각납니다. 성경 본문과 또 알맞은 찬송가가 여러분에게 맴돌면서, 큰 힘과 은혜와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새기십시오. 만약 그게 쉽지 않다면, 찬송가를 먼저 가까이 두시길 권해드립니다. 찬송가를 가까이 하면 정말 필요한 순간에 그 가락과 선율이 생각나면서 가사를 읊조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 찬송가 가사를 통해 역사하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 힘은 목사님이 해주신 설교 말씀이기도 하고, 신앙의 선배들이 해주었던 조언이 될 수도 있고, 신앙서적의 한 구절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거룩한 성전에 작은 방을 만들어서, 언제고 필요할 때에 꺼내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이 이미 많이 망가졌는데, 이렇게 신앙만 바로 세운다고 뭐가 달라질게 있을까요? 건강도 잃고, 희망도 읽고, 가족에게 신뢰도 잃고, 친구들도 잃었는데… 신앙이 생긴다고 뭐 달라질 게 있습니까?”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역대하 31장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나 남는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대하 31:10)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니 하나님께서는 다른 것들 또한 풍족하게 채워주시고, 치유해주셨습니다. 아주 간단한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18장으로 돌아가 보시겠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역대하를 보았는데, 굳이 제가 설교본문을 열왕기하로 잡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역대하에는 히스기야의 행동과 결단을 집중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했고, 어떤 결단을 하였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의 중심에 어떤 마음이 있었는지는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열왕기하 18장에서만 히스기야의 중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왕하 18:5)

엉망이 된 이스라엘. 폐허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이스라엘. 전쟁으로 참혹하여지고, 여러 우상에 물들어 성적으로는 문란하고, 영혼은 피폐해지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자식을 제물로 바치고, 굶어 죽게 되어 서로의 자식을 삶아먹자며 이웃주민과 거래를 한 사건까지 이렇게 엉망이 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겠노라. 다시 세우겠노라. 치료하겠노라’고 생각한 히스기야의 마음속에서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부터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통해 본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이 이토록 놀라운 이유이자,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회복시키는 엄청난 사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뭔가에 빠져 여러분의 삶이 망가졌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십니까? 길을 잃고 막다른 골목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 미로와 같은 세상 속에서 분명한 길을 찾고, 탈출구를 찾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오늘날, 우리 각자는 하나의 이스라엘입니다. 우리는 망가진 이스라엘이기도 하며, 또 개혁을 결심한 히스기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히스기야 왕이 되어, 자신을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소생시키고, 변화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에게 왕국이자, 국가입니다. 여러분은 왕으로써, 여러분이란 나라를 다스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국가로써 다시 토대를 쌓아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여러분은 다시금 회복되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기대하며, 하나님께 뜨겁게 기도하는 오늘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강주혜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졸업
숭실대학교 기독대학원 상담학과(Th.M.) 졸업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종교교육학과(M.Ed.) 졸업
(現) 안산동산고등학교 교목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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