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장 18-31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어린 시절 제가 살던 집은 산자락 바로 아래에 있었습니다. 외출하고 집에 가려면 언덕을 올라가야 돼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저 멀리 시내까지 훤히 다 보이는 전망이 참 좋은 집이었습니다. 장관은 야경이었습니다. 특별히 어두운 밤하늘 아래 빛났던 수많은 빨간 십자가는 비록 어렸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또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정말 사랑하시는구나’라고 느끼게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밤하늘 아래 수없이 펼쳐져 있는 빨간 십자가는 한국 교회의 자부심이요,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가요? 그 빨간 십자가는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겐 은혜와 사랑, 구원의 상징인 십자가가 이 땅을 함께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리끼고, 피해야 하는 집단의 상징이 돼버렸습니다. 이 가슴 아픈 역설이 벌어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나아가 어떻게 다시 그 십자가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길 소망합니다.

고린도전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이 서신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중대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교회의 분열’이었습니다. 성도들끼리 파가 나뉘어 누구의 제자인가를 자랑하기 시작했고(게바, 바울, 아볼로), 누가 더 우월하냐는 논쟁 가운데 한 몸으로 굳건히 서야 할 교회가 분열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세속적 가치의 추구’가 만연한 교회였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당시 굉장히 발달된 무역 도시로서, 상업뿐만 아니라 철학, 지혜, 수사학 등 지적이고 문화적 자부심이 큰 도시였습니다. 자연스레 승리주의적인, 소위 말해 성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던 도시가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이런 고린도의 세속적 특징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옴으로써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세상 지혜로, 사도들을 지혜 선생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더 뛰어난 사도인가’라는 논쟁으로 분열하게 된 것이고, 복음을 그저 세상 지혜 중 하나로 여김으로써 진정한 복음의 의미와 능력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9절). 즉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무엇보다 세상 지혜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의 최고봉에 ‘십자가의 도’,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진정한 의미, 즉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를 본문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복음이 전해진 곳에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은 그저 미련한 이야기로 치부해버리지만,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입니다(21절). 마치 오늘날의 연예인처럼 사람들이 따랐던 당시의 지혜자, 학자(선비), 변론가(대중 웅변가)도 이 하나님의 지혜 앞에는 어리석은 자들에 불과합니다(19-20절).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알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을 높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지혜에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 구원의 능력은 세상이 멸시하고 꺼렸던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여기서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는 의미는 그 방법(전도)이 미련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용 자체가 어리석게 들린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가 22절부터 설명됩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2)

유대인들은 왜 ‘표적’을 구했을까요? 이방 민족에게 오랫동안 억눌려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있어 메시아란 존재는 그 모든 세상 권력을 무력화시킬 강력한 능력의 소유자여야 했습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영광을 다시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메시아는 로마를 쳐부숴야 하는 존재인데, 로마의 힘에 의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못 박힐 순 없는 것입니다.

헬라인은 왜 지혜를 찾았을까요? 고대 사회에서 가장 문명화된 민족 중 하나인 그리스인들은 고상한 삶을 추구하며 지혜와 철학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복음에 그와 같은 것을 기대한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그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그리스도, 구원자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으라니!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3) 유대인에게 있어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신명기 21장 23절(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말씀을 근거로 거리끼는 것, 즉 저주의 상징이 됩니다. 그리스인에게도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형으로 처참하게 죽임 당한 사람을 메시아로 믿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미친 짓입니다.

헬라철학의 ‘이원론’에 비추어 볼 때 악하고, 더럽고, 열등함을 의미하는 ‘육체’를 입고 온 신을 믿는다구요? 그가 구원자, 메시아이라구요? 당시 헬라 사람들에겐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정신 나간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복음은 거리끼는 것도, 미련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4) 유대인이 원했던 표적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인들이 추구하며 칭송했던 지혜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 그것이 십자가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임을 바울은 담대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 얼마나 멋진 말이며, 얼마나 통쾌한 선포인가요! 그러나 이 말을 처음 접했을 고린도 교인들에겐 매우 찔리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추구했던 세상의 지혜와 능력이 십자가 앞에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바울이 분명하게 선포하고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26-28절은 바로 이런 복음의 능력, 십자가의 지혜가 명백히 나타난 고린도 교회의 실례를 들고 있습니다. 지혜자, 부자, 권력자보다 못 배우고, 가난한 자들이 더 많았던 고린도 교회.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런 자들을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 함이었습니다.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27절), 잘 난 자들을 없애시려고 비천하고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던 것입니다(28절). 왜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나요?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9)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를 통해 우릴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우리 중 그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지혜가 많고, 소유가 많고, 권력이 많아서 그것을 자랑했던 고린도 성도들에게, 심지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은사와 성경 지식 등을 가지고서도 서로 비교하며 자랑했던 고린도 성도들에게 바울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 외에, 그 무엇도 자랑하지 말라!”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1)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의 자랑이었던 빨간 십자가가 한국 땅에서 혐오와 배척의 상징이 되어버린 오늘날,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이 메시지를 정말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복음의 영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출발은 먼저 교회 안에서, 성도의 삶 안에서 땅에 떨어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높이 세워야 합니다. 섣불리 세상에 나가 빨간 십자가를 꽂으려 하기 전에, 다시 우리 안에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높여지고, 존귀히 여김 받아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께만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높여져 그분만이 우리의 자랑이 되었어야 하는데, 고린도 교회는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성도들의 자랑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곳에는 복음의 능력이 없었습니다. 구원의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영광이 없었습니다. 십자가는 약함과 비천함, 부정함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십자가를 높이 들었습니다. 소리 높여 담대히 찬양하며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끌어내리고, 우리 자신의 힘과 지혜와 부요함을 자랑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마치 고린도 교회처럼 그 구별됨(거룩함)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요?

우리 눈을 다시 십자가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자랑하고 높이던 삶을 내려놓고, 예수의 십자가가 보여주셨듯이, 이 땅의 낮은 곳을 향해 우리의 눈과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헌신이 더 낮은 곳을 향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비천하고, 약한 것들을 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일 것입니다. 낮은 곳을 향하지만 십자가는 가장 높이 드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낮추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이었던 그 빨간 십자가. 그 십자가의 감격을 회복합시다. 그 십자가의 능력을 회복합시다. 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 우리의 자랑으로 삼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노한석 목사

한세대학교 선교학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M. Div)
한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구약학(Th.M)
인천순복음교회 청년부 선교학교 강사
인천순복음교회 유년부 여름성경학교 강사
여의도순복음광명교회 청년부 수련회 강사
삽교감리교회 청년부 수련회 강사
신나는교회 청소년부 수련회 강사
100주년 기념교회 청년교구 전도서 세미나 강사
순복음강남교회 중등부 수련회 강사
순복음강남교회 교회학교 교사대학 강사
(現) 하늘벗교회 담임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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