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장 5-13절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중략)…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오늘 저는 여러분과 왜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오는지를 예수님께 물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왜 고난을 당하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이 고난당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인간에게 어떻게 고난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궁금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데 왜 고난이 오느냐가 궁금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왜 고난을 겪는지 설명하고자 합니다.

1.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확성기이다.” 이 말은 C. S. 루이스(C.S. Lewis)의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군인이 아침 6시에 기상나팔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듯,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확성기가 고난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참으로 사실입니다. 시편 119편에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시편 기자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고난 당할 때는 몰랐는데, 고난을 지나고 보니 그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깨닫고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확성기를 틀지 않습니다. 오죽하셨으면 고난이라는 확성기를 틀어 놓으셨겠습니까? 처음에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말씀에서 멀어질 때, 조용한 소리로 “그 길 아니다”하고 부르십니다. 그래도 못 듣고 더 멀리 가면, 조금 더 큰 소리로 “그 길 아니다”하고 부르십니다. 그러나 끝내 듣지 못하고 위험한 길로 갈 때는, 급한 나머지, 확성기를 틀어서 “그길 아니다”하고 외치시는데, 그것이 바로 고난을 보내어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복된 인생은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소리만 지르는 하나님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다. 조용한 소리에도 주님의 음성임을 알고 순종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저 장미꽃 위의 이슬 아직 맺혀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이렇게 은은하게만 들려도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알아듣는 사람에게 고난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귀가 주님의 음성에 예민해져서 주님이 평생 소리치실 일 없기를 축원합니다.

2. 고난은 성숙을 위한 과정입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 반드시 겪게 되는 것이 성장통입니다. 자라기 위해 동반되는 고통입니다. 저도 키가 한창 클 때 무릎이 가려워서 밤마다 긁고 긁어도 시원하지 않아서 괴롭게 잠든 날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키가 크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완벽하신 하나님 안에 완벽하지 않은 여러분을 넣어놓고 완벽하신 하나님처럼 만들려고 하면, 여러분을 늘리고, 당기고, 구부리고 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야 하지요. 그때 생기는 것이 고통입니다. 고난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는 고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고통을 동반합니다. 절대로 쉽게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서 우리의 태생이 죄이고, 선을 행하는 것보다 죄를 행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편하고 익숙합니다. 익숙한 것을 할 때는 아무 고통이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서 사는 것이 너무 편합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살아보지 않았던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매우 매우 불편합니다. 말투도 바꾸고, 생각도 바꾸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바꾸고, 가치관도 바꾸고 하는 것은 수많은 고통을 동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양쪽 다리는 각각 발목에서 허벅지까지 깁스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육상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무릎 뼈에 문제가 생겨서 깁스를 해야 하는데 두 쪽 다 못하니 한쪽씩 번갈아서 깁스를 하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깁스를 몇 달하고 난 뒤에 풀면 당장에 걷지 못합니다. 다리가 몇 달 동안 고정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한 번에 무릎을 쭉 펴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며칠을 조금씩 피면서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처럼 죄에 오랫동안 빠져서 살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바로 달리고 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자유자가 되었지만, 우리 속에 있는 옛 사람의 흔적들은 우리를 자꾸 옛사람의 모습으로 끌고 갑니다. 그 옛 사람으로 끌고 가려는 그 관성을 거슬러 새 사람으로 살려고 하니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러나 그 고통을 견뎌야 새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깁스를 푼 고통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자꾸 다리를 펴야 자유로운 다리로 뛰어다닐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 고통을 피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급기야는 뛰고 달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프다면 성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고통이 찾아와서 그 고난의 바다를 건너고 있다면 믿음이 자라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에서 목회하던 교회의 성도님 중에 한국의 자랑 PGA 골프선수 최경주 선수가 우리 교회 성도님이었습니다. 주일날 예배에 간증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그분이 했던 간증 중에 이 대목이 굉장히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분 제가 요즈음 골프 슬럼프를 지나고 있습니다. 너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힘들면 현역이고, 힘들지 않으면 은퇴한 것이다. 제가 매일 매일 힘듦으로 이기고 견디는 것은 아직 해야 할 경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면 현역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가장 위대한 선수가 가장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합니다. 가장 위대한 가수의 목이 가장 아프고, 가장 위대한 화가의 캔버스가 가장 많이 부서져 나가고, 가장 위대한 작가의 원고지가 가장 많이 찢겨 나갑니다. 그래야 위대한 작품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14번 두드려 맞으면 14K가 되고
18번 두드려 맞으면 18K가 되고
24번 두드려 맞으면 24K 순금이 된다.

기가 막힌 말입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오는 법입니다. 가장 많이 망치에 두들겨 맞은 것이 순금이 되고 가장 뜨거운 불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순금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여러분을 성숙하게 만드는 학교입니다. 지금 고난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누가 뭐래도 여러분은 지금 성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3. 고난은 사랑하는 이를 위한 회초리입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 12:5-8)

여기서 지속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징계가 없는 아들은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친아들을 징계하시는 것일까요?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히 12:10-11)

징계의 목적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자격을 부여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징계를 이기고 견디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의와 평강의 열매를 주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모르는 사람이 남의 집 아이를 때릴 때는 죽이자고 때리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때릴 때는 살리자고 때립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는 사이코 아버지 말고, 보통 일반적인 아버지의 성향을 말합니다. 죽이자고 때리는 사람은 방문 걸어 잠그고 때리지만, 아버지가 자식을 때릴 때는 뒷문 열어놓고 때립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야단칠 때를 가만 보세요. 엄마 없을 때는 야단 안칩니다. 엄마가 있어 말릴 사람이 있어야 야단칩니다. 이래서 부모의 매는 아무리 아파도 솜방망이입니다.

하나님이 자녀인 우리를 아무리 징계하셔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피할 길을 열어놓고 우리에게 야단을 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 12:5)

혹시 누구라도 이중에 고난당하는 분이 있다면, 우선 이 고난이 마귀가 주는 시험(Temptation)이라면 빨리 회개하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Test)이라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에서 받는 징계와 고난이기에 안전한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아직도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며, 하나님이 여러분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다는 뜻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고난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너무 동의하기 힘든 정의를 제가 내렸습니다. 어떻게 선물이 없어서 고난이 선물입니까? 그러나 선물 맞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더 큰 고난을 만나지 말라고 미리 알려주는 신호이기 때문에 고마운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작은 고난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더 큰 고난의 파도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눈치를 채서 스스로 조심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함으로, 당하게 될 더 큰 고난을 면할 수 있습니다. 다가온 지금의 고난은 하나님이 미리 주신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나단 애드워드(Jonathan Edwards)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가장 커다란 고통과 재난은 우리가 마땅히 당해야 할 불행에 비하면 너무나 사소한 것이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의 이 고난이 더 큰 고난을 피해가게 하는 미리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제가 왜 고난을 감히 선물이라고 말씀을 드렸는지를 조금 더 설명 드리겠습니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가 쓴 책 『Soul Survival』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가 어느 날 한센병 환자촌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센병 환자 중에 한 사람이 신발을 신고 신발 끈을 묶는데 자기의 발이 신발 끈에 잘려나갈 정도가 되었는데도 모르고 계속 신발 끈을 조이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때 그는 깨닫게 됩니다.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선물이구나.’ 한센병 환자가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몸에 치료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한센병 환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입니다. 그분들에게 고통은 곧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한센병 환자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통을 모릅니다. 고난으로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는데도 영적 공허함을 느끼지 못하는 고통의 감각을 상실한 사람이 많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정신 차리라고 때리시는 징계가 분명한데도 하나님의 손길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영적인 감각을 상실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귀에 대고 소리치시면서 그 길로 가지 말라고 하시는데도 귀가 들리지 않아 죽음의 절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는 감각이 살아있다면, 그 고난은 여러분을 하나님께 묶어두는 가장 귀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5. 고난은 위장된 축복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공부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고난은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 참 의미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고난을 피하는 종교가 아니라 이기는 종교입니다. 만약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었다면 실망하실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 고난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피하기 위해 예수님을 택하셨다면 잘못된 선택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이기기 위해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아주 좋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성경은 고난을 피하는 방법이 아닌 이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b)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이제부터 잘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서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는 넘어지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고난이 여러분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데도 왜 고난이 멈추지 않는지가 궁금하십니까? 야고보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봅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하나님은 우리로 온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고난이라는 학교에 입학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경꾼 만들고 싶으신 마음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모두 일꾼으로 만들어 하나님 나라의 정병으로 사용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도 8.0의 지진에도, 시속 800km 이상의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가운데로 걸어가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 목표입니다. 처음에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흔들리던 믿음이 그 바람을 맞고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다 보면 태풍의 한가운데서도 넘어지지 않고 버티고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미풍 속에서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시고 태풍 속에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태풍을 뚫고 들어가서 태풍의 한가운데 있는 태풍의 눈 속에서 예수님은 여러분을 만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태풍의 눈의 한가운데로 부르고 계십니다. 태풍이 무서워서 도망가지 마십시오.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하나님의 초청에 도망가지 말고 응해야 합니다. 태풍 앞에 도망가지 말고, 태풍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마침내 태풍의 눈에 도달하면, 절대적인 평안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까지 우리는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인이 겪게 되는 고난의 이유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입니다.
고난은 성숙을 위한 과정입니다.
고난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회초리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고난은 위장된 축복입니다.

혹시 한 분이라도 지금 고난의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다면, 그 폭풍 가운데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을 14k로 만들고 계시는지 18k로 만들고 계시는지, 아니면 24k순금으로 만들고 계시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 반드시 고난의 뒤편에서 주님이 주실 복이 있음으로 그 복을 미리 바라보면서 오늘도 걸어가시길 축원합니다.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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