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장 1-5절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본문 말씀은 바울이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된 골로새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위협하는 이단 사상을 조심하고, 오직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2절)를 깨달아 믿음을 지킬 것을 당부합니다.

본문 2절 말씀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는 골로새서 전체의 주제와도 관련된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비밀(μυστήριον)은 ‘신비로움’을 뜻하는데,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 이전에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하나님 나라를 이제는 우리가 완전하게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의 마음에 와닿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는다’는 것은 논리적인 지식이 아닌 체험적인 지식입니다. 인격과 인격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지식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우리는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내 삶의 근원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우리 안에 바른 판단력이 생깁니다. 이것은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 1:1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 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승리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7) 그리고 로마서 8장 말씀에서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더 나아가 승리의 확증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요일 5:5) 함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으로 예수님을 삶의 구주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알고 깨닫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면 마음의 위로를 얻게 됩니다

바울은 본문 2절에서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라고 선포합니다. ‘위안을 받고’(παρακληθῶσιν)라는 말은 보혜사 성령을 뜻하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위안을 받았다는 뜻은 ‘위로함을 얻는다, 힘을 얻는다, 용기를 얻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성령으로부터 임하는 위로와 용기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주시고 인도자가 되어주시며, 때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해 주시는 것처럼(롬 8:26), 우리가 예수님을 깨닫게 되면,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위로와 용기를 더하여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 머물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베드로도 그 자리에서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과거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실 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한 후, 성령이 베드로에게 임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담대하게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성령이 주는 위로와 용기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면, 분노와 불평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에는 언제나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마음의 연약함이 바뀌어 강해지고, 인내력이 생깁니다. 소외감과 고독, 더불어 어리석은 모습이 사라지고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창조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기에, 늘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기에 마음에 늘 위로가 넘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위로는 우리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돕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은혜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죄에서 떠나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에 참된 위로와 소망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과거를 뒤로하고, 십자가를 통해 믿음의 길로 나아갑시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을 알고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면 사랑 안에서 연합하게 하십니다

바울은 본문 2절에서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기독교의 구원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의 위부터 아래는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나타내며, 옆으로는 이웃과의 온전한 관계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단절됐던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친히 화목제물로 돌아가셨습니다.

로마서 5장 말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롬 5:10)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될 때, 하나님과 다시 하나 되는 역사를 경험하고, 이웃과 내가 하나 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3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성만찬을 행하시며 다음과 같이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예수님이 여기서 사용하신 ‘사랑’은 ‘아가페’(αγάπη)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요한복음 13장 말씀에 잘표현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이 사랑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람이 되며, 이 사랑을 내 삶 속에 실천하게 될 때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선물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깨닫게 됩니다. 더 나아가 받은 사랑을 또 나누고 섬길 때, 우리 안에 풍성한 은혜와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요한일서 4장 말씀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다짐과 연결됩니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 삶을 통해 그 사랑이 전해지는 줄 믿습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면 삶의 부요함이 넘칩니다

바울은 본문 2절에서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라고 선포합니다.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이라는 말은 ‘풍요로움, 놀랄만한 일, 기적’을 의미하며, ‘영광의 풍성함’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하는 것이며, 빼앗길 수 없는 풍성합니다.

예수님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내 삶에 풍요와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하늘의 소망을 더하여 주십니다. 베드로는 이 소망에 대해 ‘산 소망’(벧전 1:3)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어도, 확실한 소망과 미래가 있다면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내적인 부요함과 풍성함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은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7장 21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음으로 우리는 영생의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 영생의 소망을 가진 삶에는 기쁨과 평안과 즐거움이 넘쳐나며, 이 거룩한 삶이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입니다.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하나님 나라이며,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 가게 될 하나님 나라입니다. 현재 우리의 삶이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는 영혼이 돌아갈 하나님 나라를 떠올리며, 참된 풍성함과 부요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풍성함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우리의 삶과 존재 자체가 부요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삶은 우리 안에 예수님을 깨달을 때에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4장은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우리는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의 앞에 엎드려 찾고 구하고 두드릴 때마다 우리에게 풍성함으로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인에게는 부요함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에는 부요함이 넘쳐나고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게 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의 지혜와 지식으로 인해 우리 안에 위로함과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하나 됨의 역사를 경험하고, 화목의 역사를 이루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정석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졸업
감리교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애즈베리신학대학원 졸업(목회학 석사)
미국 애즈베리신학대학원 졸업(목회학 박사)
광림복지재단 이사장
빛의숲문화재단 이사장
미국 웨슬리신학대학교 이사
재단법인 동서신학재단 이사
영국 캠브리지 웨슬리하우스 국제 이사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이사
(現) 광림교회 담임목사
(現)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남연회 감독

■저서
『하나님이 만지시면 낫지 않을 상처가 없다』, 『I WILL MAKE YOUR LIFE』, 『완전한 복, 팔복에 담긴 천국의 비밀』 외 다수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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