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7장 7-16절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중략)…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 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모두가 죽음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세요.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 가셨을 때, 아홉 살 소년이었던 나는 울었다. 그럼에도 다음날 나는 아버지와 울타리를 고쳤다. 집안이 가난해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은 한 권 살 수 있었다. 모든 돈을 쏟아 부은 사업이 실패했다. 십년을 일해야 갚을 수 있는 빚을 떠안았다. 그래도 난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17년 뒤,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계속해서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 사람들은 내 자살을 우려해 주변의 칼과 날카로운 물건들을 정리했다. 하지만 난 실패를 겪을 때마다 오히려 식당에 가 배부르게 먹고,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길을 걸으며 스스로 다짐했다.
1861년 3월 4일, 난 평소와 같이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머리를 정돈했다. 그리고 국회의사당으로 가서 내 이름에 사인하고 선언했다.”

여러분 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입니다. 그는 총 27번의 치명적인 큰 실패를 겪었습니다. 언젠가 그 가 이런 말을 했는데요.

“내가 실패할 때마다 마귀는 내게 찾아와서 ‘이제는 끝장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실패할 때 마다 하나님은 내게 찾아와서 ‘너는 절망하지 말고 이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귀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속에서도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절망과 고통, 좌절과 슬픔만이 남아 있는 듯한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더 이 상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어떻게 한 여인의 삶 속에 펼쳐지는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아합 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아합의 통치와 더불어 이스라엘 땅에는 연이은 고난이 찾아옵니다. 영적 암흑기와 함께 말이에요. 아합 왕의 아내였던 이세벨로 인해서 바알 숭배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백성들은 바알을 하나님보다 더 위하며 섬기게 되었어요. 그러나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었던 바알 숭배 때문에 오히려 이스라엘 땅에는 3년 6개월간 이슬조차 내리지 않는 대재앙이 선언 됩니다. 이 심판의 소식을 아합에게 전한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였어요.

그런데 아합 왕은 오히려 이 가뭄의 원인을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죽이기 위해 온 땅을 샅샅이 뒤지며 찾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 합과 이세벨의 위협으로부터 엘리야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으라고 명하시고, 까마귀들을 동원하여 떡과 고기를 가져다 먹이 는 기이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죽음의 위협과 환란 가운데 있는 하 나님의 사람을 어떻게 보호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까마귀는 자기 새끼 에게도 먹이를 주지 않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식욕이 아주 왕성하기 때문에 음식을 배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장 부적합한 존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냇물이 말라 버렸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이제 시내도 말라버려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게 되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 8-9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의 사르밧으로 가서 지내어라. 내가 그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네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해 두었다.” (우리말성경)

우리는 이 장면 속에서 격려와 도전을 함께 받습니다. 저는 참 위로가 되었어요.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얻는 위로는 무엇일까요? ‘삶이, 인생이 이보다 나빠질 수 있을까?’하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이에요. 엘리야에게 근근이 자신의 삶을 유지해주었던 중요한 자원이 고갈된 순간,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여십니다.

여러분 어떠세요? 우리도 이런 상황을 만날 때가 있죠. 말씀대로 살아도 풍요가 없고, 사명 따라 살아도 아무 근심 없는 그런 삶이 펼쳐지지 않아요. 대단한 걸 원한 것도 아니고, 겨우 고갈되어가는 시냇가 옆에서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음식을 먹고 살았을 뿐인데, 그 시냇가마저 메말라버리는 것을 보고 맙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순간 들리는 음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할 길을 예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요. 고통 속에는 언제나 우리를 향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 도다” (시 107:20, 우리말성경)

인생의 시냇가가 말라버리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말씀이 있다면 구원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회복이 있고, 치유가 있고, 공급이 있고, 보호와 인도하심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믿음의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다음 피난처를 지목하시는데 그곳이 어딥니까? 시돈이죠. 시돈은 이세벨의 아버지인 시돈 왕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바알 숭배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왜 하필 시돈입니까? 지금 엘리야에게 있어서 그곳만 큼 위험한 장소는 없습니다. 그는 바알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아합과 이세벨의 추격으로부터 겨우 피신한 선지자였어요. 그런 그가 바알 숭배의 본거지, 이세벨의 고향으로 도망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세요?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바로 그곳에 숨기셨어요. 게다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가라고 명령하신 곳의 이름이 매우 시사적입니다. 왜냐하면 사르밧은 금속을 녹이는 도가니를 의미하는 단어와 동일한 어근을 가졌고, 그 뜻은 ‘용광로’ 혹은 ‘단련’을 의미하기 때문이에요. 순금에서 불순물을 분리해내는 곳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여러분 무엇에 대한 단련이겠어요? 믿음에 관한 것이죠. 하나님에 대한 그 의 믿음과 순종에 대한 정련, 단련의 장소입니다.

엘리야는 그릿시냇가에서 무려 160km가 넘는 긴 광야를 가로질러 사르밧으로 가야했습니다. 만약 그 곳에 자신의 고향집 같이 안락한 은신처 와 풍족한 음식이 있고, 정서적·영적으로 자신을 따뜻하고 평안하게 맞아 줄 누군가가 있다면 한 걸음에라도 달려갈 수 있었겠죠. 이미 그는 너무 지쳐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곳은 원수의 본거지였습니다. 낯선 이방인의 땅이었어요. 결코 쉬운 걸음이 아니었을 거예요.

더욱이 그곳에 가자마자 안식이 준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처량한 과부의 손에서 자비를 얻으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아합 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민족지도자인 선지자가 낯선 도시의 이방인 과부에게 서 양식을 얻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인생의 가장 곤핍한 순간, 가장 구차한 명령에 순종해야 했어요. 엘리야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없었다면, 과연 이 과정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요?

우리도 동일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자비가 사라졌어요. 거친 광야의 다음 걸음이 안식이 아니라 순종이에요.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라면 문제의 해결이 있고, 극적인 전환이 있는 게 있을 텐데,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란 말이에요. 길고 지루한 고난의 과정과 연거푸 계속되는 도전의 과제가 남은 것이죠. 그런데 이때 엘리야는 어떻게 합니까? 10절 말 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엘리야는 일어나 사르밧으로 갔습니다. 엘리야가 성문에 다다르자 과연 한 과부 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들을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그 여인을 불러 말했습니다. “목을 축이게 그릇에 물 좀 떠다 주시오.” (우리말성경)

엘리야는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고 자기가 받은 명령대로 사르밧으로 갔습니다. 인생이 낭만적 기대와 다르듯이 믿음 또한 상식과 다릅니다. 엘리야의 믿음은 더 깊은 것을 보고 있었어요. 인간의 곤경은 하나님의 기회라는 사실을요. 그릿 시내가 마르자 사르밧이 열렸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내일은 내일의 하나님과 함께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립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에 도착하자 과연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과부가 있었어요. 여인은 땔감을 얻기 위해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는데요. 원문에서는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지푸라기와 같은 잔가지들을 줍고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장작이 아니었어요. 정말 형편이 말이 아니었던 거죠. 그만큼 이 여인이 극빈자의 삶을 사는 어려운 처지였다는 것을 보여주 는 겁니다. 정말 참담해요. 160km나 되는 광야를 가로질러 찾아온 이곳 에서 그가 마주한 여인의 처지가요.

그런데 엘리야는 그런 여인을 불러다가 말합니다. “목을 축이게 그릇에 물 좀 떠다 주시오.”

여러분 사실 이 요구는 간단한 요구가 아니었어요. 그때 상황이 어땠죠? 당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어요. 360일도 아니고요. 3년 6개월이요. 여러분 현대사회도 아니고 농경사회에서 3년 6개월간이나 비가 내 리지 않았다고 한번 상상해보세요. 그 삶이 얼마나 피폐 했을지요. 모든 시 내와 샘이 말랐겠죠. 마실 물을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 상황 에 엘리야가 과부에게 물을 구합니다. 그런데 이런 요구에 과부가 물을 구하러 가려하자 엘리야가 과부를 다시 불러 세웠어요. “빵도 좀 주시오.”

우리는 이쯤에서 정황을 의심하게 되죠. 아니 선지자가 이래도 됩니까? 이렇게 이기적이어도 되나요? 사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녀에게 예비해두신 양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 말씀 때문에 그곳에 갔으니까요. 그런데 엘리야의 제안을 받은 여인이 차분히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제게 빵은 없고 통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제가 나뭇가지를 주워 집에 가서 저 와 제 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먹고는 죽을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말성경)

엘리야 입장에서 이 여인의 절망적 상황은 그에게 어떠한 시험지였을까요? 3년 6개월간의 기근과 굶주림 끝에 말씀을 따라 공급을 기대하며 먼 길을 찾아온 이 선지자가 직면한 이 상황이요. 약속 끝의 이 상황, 인도하심 끝의 이 만남. 이것을 세상은 실패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믿음의 배신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거창한 성공과 극 적인 변화를 기대하며 위기의 순간마다, 믿음을 발휘하여 간 길에서 여러분도 이런 좌절을 맛볼 때가 있지 않으세요? 하나님께서는 하필 이렇게 궁핍한 과부를 통해 엘리야를 공급하기 원하셨는지 우리는 계속해서 그분의 계획과 방법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제 과부의 형편을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녀는 엘리야에게 자신에 게 남은 가루 한 줌과 기름 조금으로 자기 아들과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 을 생각이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에서 마지막은 어떤 때인가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이 남아있으면 그게 마지막이 될 수 있나요?

과부가 단순히 음식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냥 ‘마지막 음식을 아들과 나눠 먹고 죽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아니요. 과부는 그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을 거예요. 해볼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봤고, 당할 수 있는 굴욕은 이미 다 당했고, 처할 수 있는 비참함은 다 맛보았을 거예요. 아마 하다하다 못해 정말 별걸 다 한다 싶은 일을 해서 얻은 게, 그 마지막 남은 가루 한 줌과 기름 조금일거예요. 인생의 마지막 보루. 인생의 마지막 자원. 이제 그게 떨어지면, 그게 없다면, 정말 끝인 것이죠. 더 이상의 기회는 없어요. 다른 방법은 없어요. 희망도 없어요. 과부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고통의 가장 극단에 왔어요. 인생에서 내몰릴 만큼 몰렸던 거예요. 이제 이 고통의 출구는 하나뿐이에요. 죽음이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 과부의 고통이 공감되는 청년들이 있다는 이 현실이 저에게도 너무 마음이 아파요. 이런 극단적인 고통과 절망의 막다른 길에 서 있는 인생이 있다는 게 너무나 가슴 아프죠. 그러나 여러분의 고통이 깊은 만큼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완전한 소망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과연 우리가 발견한 소망이 무엇인가요? 바로 이 좌절된 두 인생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늘 본문의 두 사람은 인생의 깊은 곤경에 처한 사람이에요. 과부란 당시 아주 비천한 존재였어요. 사회에서 가장 약자고 경제 능력으로도 가장 극빈층이었어요. 평상시에도 비천했다면, 오랫동안 계속된 기근과 위기 속에서는 더 할 수 없이 바닥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존재였을 거예요. 또 선지자 엘리야는 당시 최고 권력자가 그의 생명을 취하려 했어요. 사방이 적이에요. 큰 위험에 처해있어요. 그는 철저하게 외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둘을 만나게 하십니다. 단순히 엘리야에게 먹고 살 음식을 주시기 위해서도 아니고, 과부에게 기적을 보여주시기 위해서도 아니에요. 하나님은 인생의 위기를 만나 가장 극단적인 고통에 처한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그 분의 구원을 베풀고자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그것 을 이해하고 있었어요. 하나님의 구원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요. 엘리 야가 여인에게 하는 말을 좀 들어보세요. 13-14절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가서 당신이 말한 대로 하되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해 조그만 빵 한 개를 구워 주시오. 그러고 나서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해 먹을 것을 만드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호와가 땅에 비를 내리는 그날까지 통 안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겠고 병 안의 기름이 마르지 않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소.” (우리말성경)

엘리야가 보이는 분명한 확신에 주목해보세요. 그에게는 불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는 믿음의 순종 뒤 하나님의 마르지 않는 공급을 확신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의 경험을 통해 매우 귀중한 진리를 배웠던 것이에요. 매일 까마귀가 날아 와 자신에게 음식을 공급했습니다.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양식을 받아먹으면서 엘리야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불가항력적 공급. 이성과 상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방법. 인간이 미처 생각지 못하고, 기대하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을 것이에요.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까마귀가 음식을 물어다 줄지요.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 음식을 공급하시면서 엘리야에게 음식과 동시에 메시지를 보여주신 거예요. “엘리야야. 생각지도 못했지. 내게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 방법의 의외성을 통해 엘리야는 자신에게 음식 을 공급할 과부가 사르밧의 비참한 극빈자였다는 사실을 직면하고도 희망 을 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통 해서도 역사하시는 분이니까요. 여러분도 인생의 광야에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인간의 전망과 기대를 넘어서 생각 지 못한 방법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어요. 그들은 자기들이 광야에서 굶어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들은 죽지 않았어요. 언젠가 다윗은 속으로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힐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폭풍이 이는 바다에 빠져 죽을 것 이라고 두려워했어요. 그러나 그들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기 위해 기다리고 계셨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바로 이때 무엇이 필요한가요? 그건 단순한 믿음, 하나뿐입니다.
순종뿐이에요. 사르밧 과부는 어떻게 했습니까? 15절을 보면 과부는 순종했어요. 자기 나름대로 순종한 것이 아니라 엘리야가 요구한대로 순종했고, 말한 즉시 순종했습니다.

과부가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선지자를 위해서 떡을 만들 때 이 과부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떤 마음으로 그 떡을 구웠겠습니까? 얼마나 그 떡을 아들에게 주고 싶었을까요? 엄마가 마지막 남은 떡을 굽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아들을 볼 때, 그녀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 떡 반죽이 이 모자에겐 어떤 의미였어요? 인생의 마지막 양식이에요. 아니 그냥 인생의 마지막이요. 그게 없으면 이제 모든 게 끝인 거예요. 그 다음은 두 사람에겐 죽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선지자를 위해 빚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믿음을 선택하는 거예요.

여러분, 인생에서 이런 고통을 내가 더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이제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라고 할 때요. 그때 바로 믿음을 택하세요. 이 문을 열면 죽음이 있을 것 같을 때요.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는 죽음이 가장 안전하고, 희망적이라고 마귀가 말할 때요. 바로 그 때 믿음을 택하세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요. 자신을 믿는 자들을 결단코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세요. 여러분을 사랑하기를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세요.
그러면 고통에 새로운 출구가 열립니다. 바로 구원이라는 출구 말이에요. 그 문을 열면 우리는 생명을 만납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고통의 마지막 출구는 죽음이 아니에요. 구원이에요. 여러분 구원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으로요.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다.” (막 13:13, 우리말성경)

믿음으로 견딜 수 있는 하루, 한걸음, 여러분 구원이 오기까지 견디고 이 기세요. 그러면 고통의 끝은 죽음이 아닌 생명입니다. 절망이 아닌 소망이 에요. 저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바로 이 고통의 마지막 출구가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원의 문이 열리고 새 생명과 새 소망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연 고통의 출구 끝에 이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15-16절 말씀을 다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과부는 가서 엘리야가 말한 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와 엘리야와 그 식구가 여러 날을 먹었는데도 통 안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 안의 기름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

과부가 인생의 마지막 고통의 순간에 믿음을 선택했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그 가정에게 평생 부족함 없이 공급하셨어요. 이 장면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은 단순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서일까요? 여러분 이 말씀에서 가루와 기름의 상징성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루’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가리키기 위해 택하신 상징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아랫돌과 윗돌 사이에 떨어져 생명의 떡이 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죠. 레위기에 등장하는 다섯 가지 제사의 형태 중에 ‘고운 가루’로 드리는 소제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또한 기름은 성령께서 수행하시는 기름 부으심,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시는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상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통 안의 가루와 병 안에 기름은 그저 인생의 하나의 자원일 뿐이었어요. 남은 것이라곤 그뿐이었을 때, 그래서 그것이 또 한 절망의 이유가 되었을 때, 그것은 그저 한번 먹고 나면 배를 채우고 사라질 양식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채우시는 새로운 공급은 그 모자가 평생을 부족함 없이 먹고 살 수 있는 것과 더불어 어떤 의미가 있었죠? 그 과부는 이 기적의 사건을 통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라면 마지막 한 줌의 가루를 믿음으로 드리기까지 감당했던 과부의 아픔과 고 통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이 개선되기 전에 더 나빠지게 하실 때가 많아요. 그분은 기다리세요. 무엇을요? 우리가 예수를 발견할 때까지요.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것이 다 소용없어져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절망에 빠지고, 더 이상은 소망이 없다고 느낄 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서 이제 유일하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시는 것이에요. 예수만 남겨질 때 까지, 예수를 얻게 될 때까지. 그래서 우리는 때로 이 도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에 남은 희망이 없으세요? 인생에 미래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으시죠? 그때 이 말씀을 기억하세요. 엘리야에게 찾아온 까마귀. 160km 떨어진 원수의 땅 시돈. 그리고 과부의 남은 가루 한 줌. 기름 조 금. 이 말씀을 통해 고통의 출구가 오직 죽음뿐인 자들에게, 인생의 기대할 것을 결코 찾아 볼 수 없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살아갈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을 통찰해 보세요. 완전한 절망과 고통 속에서 인생의 전혀 기대하지 못한 의외성을 통해 새로운 생명 의 문을 여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는 단순히 살아갈 수 있는 자원을 공급하는 것 뿐 아니라 살아갈 이유를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우리를 살 수 있게 하실 뿐 아니라, 살고 싶도록 하신다는 것이에요. 예수를 발견할 때, 우리는 먹고 살 능력뿐 아니라 인생의 참된 이유를 찾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의 고통의 마지막 출구가 되기를 사모합니다. 구원과 생명, 소망의 문으로 주님과 함께 새 길을 가세요. 저와 여러분은 매일 아침마다 여러분 인생 속에 마르지 않는 은혜와 다 함이 없는 사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이 주시는 평안 가운데 새 날을 맞이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원유경 목사

서울 여자 대학교 학사
횃불 트리니티 M.Div.
(現) 온누리 교회 SNS 청년부 담당
(現) 온누리교회 대학 청년부 예배 기획 담당
(現) 홀리 임팩트 예배 인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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