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23-31절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 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 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면서 3일 동안 아무것도 보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곧 다시 앞을 보게 되었고, 몸을 추스르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체험 이후에 사울은 곧바로 유대인들의 여러 회당을 돌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거기 있던 사람들 이 사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 사람 원래 예수 믿는 사람들 죽이던 사람 아니야?”라며 서로 수군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예 수 믿는 척하면서 사람들의 정보를 캐내어, 결국 한꺼번에 감옥에 잡아넣으려는 거야! 저 사람은 스파이야!”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경계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더욱 예수님 을 증거했습니다.

처음엔 바울에 대한 단순히 의심과 경계심만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그가 점점 더 예수의 이름을 전파하자 더 이상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를 증거하는 사울이 정말 눈엣가시 같았겠죠. 그래서 결국 그를 죽이기 로 모의합니다. 그런데, 마침 사울이 그들의 계획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작정하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키며 그를 잡으려고 했으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사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서 성 밖으로 달아 내려주었고, 결국 사울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의 위기를 피한 사울은 예루살렘에 돌아갔습니다. 한차례 죽음의 고 비를 넘긴 사울은 거기에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교제하려고 했으나, 제자들은 사울의 광기 어린 예전 모습을 떠올리며 그를 경계하며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바나바라는 사람이 사울을 사도들에게 데리고 가서 다메섹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고, 그제서 야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루살렘에서의 사울의 삶이 평탄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메섹에서 그랬던 것처럼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도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했던 사람이, 한순간 예수를 증거하는 자가 되어 돌아왔으니 얼마나 얄밉겠습니까? 그래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 도 사울을 죽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 계 획들을 사울의 친구들이 알게 되었고, 결국 사울을 다소라는 곳으로 몰래 도망치게 했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9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참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우여곡절 많은 사울의 에피소드가 이런 결론으로 끝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 9:31)

‘그리하여’ 교회가 더욱 안정적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친구들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라는 표현 말입니다. ‘그리하여’는 ‘그러므로’와 같은 의미인데, 이 단어 의 뜻이 무엇인가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니까 그 의미를 ‘앞의 내용이 뒤의 내용의 이유나 원인, 근거가 될 때 쓰는 접속 부사’라고 설명합니다. 이 접속사는 앞의 내용이 뒤의 내용의 이유나 원인, 근거가 될 때 쓰는 접속사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을 다시 한 번 잘 살펴보세요. 사도행전 9장의 이야기는 온통 사울이 전도하다가 사람들의 핍박과 죽음의 위협 때 문의 도망가는 이야기뿐이었습니다.

26절,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서 성 바깥으로 달아내렸다.” (도망)
27절, “사울이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사울이 제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였다.” (불신)
30절, “신도들이 이 일을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냈다.” (피신)

바울이 도망가고, 사람들에게 의심받고, 피신하는 이야기뿐인데, 그런데 31절은 ‘그러므로’ 교회가 부흥했다고 합니다.

(19-30절) 사울은 복음전도를 하다가 실패하고 도망가야 했다.

(31절) 그러므로 결국 온 교회가 평안해졌고, 부흥했다.

사울은 가는 곳마다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야 했고,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를 받다가, 결국 자기의 고향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끝이 어떠합니까?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넘쳐서 부흥했다 고 합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결론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친구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사도행전이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요? 바울이 경험했던 이 삶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이 꼭 이 한 가지 진리를 가슴에 새기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삶의 끝에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시는 승리가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청소년기의 삶에도 어려움과 아픔이 있습니다. 말 못할 고민과 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만 한다면 그 길에 끝에 하나님 이 준비해 놓으신 역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혹시 바울이 당한 어려움과 고난처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조롱당하는 것 같은 비참한 모습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친구들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느끼길 바랍니다. 친구들의 삶에 끝에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신 참된 평안과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흥과 승리가 있음을 기억하는 친구들 되길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며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b)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친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의 끝에 예수님이 언제나 함께하십니다.

내 삶이 내 뜻과 의지대로 되지 않아서 힘든 친구들 있습니까? 말 못할 실패를 경험해서 눈물 흘리는 친구들 있습니까? 마음처럼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고민하는 친구들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붙들기만 한다면, 그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행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평안해지고 부흥했더라.’ 매우 짧은 한 문장이지만, 이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친구들의 삶을 이끌어가는 믿음의 고백 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실패를 통해 일하십니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한다면 우리 삶이 돌이키고 싶은 순간은 없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눈물 과 슬픔의 자리를 기쁨과 평안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친구들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방세휘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과 졸업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Th. M.)
안산 꿈의교회 교육부 총괄 디렉터
안산 꿈의교회 청소년교회 담당목사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