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4-6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히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 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 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 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배꼽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배꼽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 게 배꼽이 다 있지만, 배꼽이 좀 못생긴 사람도 있습니다. 참외 배꼽이 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물 장난칠 때 참외 배꼽이 있었던 친구가 있어서 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배꼽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바로 아담입니다. 왜냐하면 탯줄이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아담은 배꼽이 있었습니다. 딸이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배꼽은 어떻게 생긴 거야?” 아빠가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창조하신 후 너무 기뻐서 “너는 내 꺼야”라며 배를 꾹 눌러서 생긴 거야!”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 너무 기뻐서 “너 는 내 꺼야!”라며 배 한가운데를 꾹! 꾹! 두 번 눌렸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저와 여러분의 배꼽보다 깊이가 더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 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 존재 자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존재하심으로 인하여 기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의 근원입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보고 기뻐하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7번 말씀하신 것이 바로 ‘토브’(좋았다)입니다. “It was good!” 히브리어인 ‘토브’는 형용사로 ‘선함’, ‘위대한’(시 11:2), ‘놀라운’(욥 37:14), ‘완벽한’(신 32:4), ‘아름다운’(전 3:11) 등에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위대하며 놀랍고 완벽하였으며 좋지 못한 것(로 토브)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창조를 마치고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1:31). “It was very good!” (창 1:31)

‘토드 메오드’ 즉, ‘심히 좋았다’는 것은 창조의 위대함과 합목적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심히 좋았다는 것을 심미적( 審 美 的 )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기쁨으로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늘 기쁨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신 동시에 기쁨의 하나님이십니다. 제 목회의 우선순위는 먼저 하나님 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목회인가요?

첫째,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 그러므로 제사보다 우선순위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요 4:23)

진리를 헬라어로 ‘알레세이아’라고 하는데 이것은 ‘진실, 진정성’이라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께 예배할 때 진정성 있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진정성 있는 예배란 ‘육’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방식은 ‘영’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영으로 예배하지 않고, 육으로 예배하는 것은 받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명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겨심이니” (딤전 1:12)

사도 바울은 주님께 감사한 이유가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성도는 바로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에 충성하는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저 역시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며 늘 영과 진리의 예배자가 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삶을 힘쓰겠습니다.

목회의 마지막 순위는 성도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를 행복하게 하는 목회란 제가 먼저 신앙과 삶의 모범이 되며,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함으로 말씀을 받은 성도들이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목사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공동체 가 그 공동체의 사명을 잊지 아니하도록 끊임없이 충동하는 사람’입니다. 그 충동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바르게 운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전달되면 성도들의 영은 기쁨으로 반응하며 치유와 소생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는 매일 새벽 배달하는 사람이 두 분 계십니다. 한 분은 신문 배달하시는 분입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행정실 앞에 들어서면 신문이 배달되어 있습니다. 신문 배달하시는 분이 이 세상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간 것입니다. 다른 한 분은 하나님 말씀을 전달하는 목사입니다. 목사는 하나 님 나라의 소식, 구원과 영생의 기쁜 소식을 새벽부터 배달해 주는 사람입니다. 목사는 날마다 하늘의 기쁨의 샘, 은혜의 강에서 기쁨과 은혜를 길러 배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목사는 유통업자입니다. 목사는 하늘의 기쁨, 하늘의 사랑, 하늘의 은혜를 세상에 배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또 다른 직업은 ‘기쁨의 유통업’입니다. 그러므로 유통업에 종사하고 계신 분은 저를 동업자로 여겨 주시길 바랍니다.

요즘 전도가 안 된다고 합니다. 어렵다고 합니다.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런데 내가 받은 ‘하늘의 은혜’가 넘친다면 ‘하늘의 기쁨이 충만하다면’ 그 은혜와 기쁨을 자연스럽게 가족과 이웃을 향해 흘러 보내십시오! 유통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전도요, 선교입니다.

성도 여러분! 행복한 사람의 특징, 불행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행복한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는 사람입니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무엇을 먹어도 맛있고, 누구를 만나도 즐겁고, 무슨 일을 해도 즐겁습니다. 반면에 불행 한 사람은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고, 누굴 만나도 귀찮고, 무슨 일을 해도 불평만 나오는 사람입니다. 행복이 무엇일까요? 행복이란 ‘마음속에 기쁨 이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기쁨은 ‘마음에 벅찬 느낌이 있어서 즐거운 기색이 얼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사람, 기쁨이 충만한 사람은 얼굴에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하늘의 기쁨을 담지 못한 얼굴에는 기쁨 대신 짜증, 원망, 불평이 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예배 후에 자신의 얼굴을 한 번 들여다보세요! 자신의 얼굴에 기쁨이 드러나 있는지 아니면 타인에게 물어보세요! “지금 제 얼굴에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사람이 건강을 잃은 신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입맛부터 잃어버립니다. 병든 영혼! 불행한 인생은 ‘살맛’을 잃어버립니다. 살맛이 없다는 것은 삶에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환자가 건강이 회복되기 시 작하는 신호가 무엇인가요? 바로 입맛이란 감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혼이 병들면 ‘신앙의 맛’을 잃어버립니다. 무미건조한 종교 적 행위만 반복합니다. 예배의 맛, 기도의 맛, 찬양의 맛, 말씀의 맛을 잃어버림으로 모든 것이 다 귀찮게 여겨집니다. 눈을 감으면 1분도 기도할 수 없습니다. 남들이 힘차게 찬송할 때 하품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을 때 잡니다. 예수님은 참된 믿음을 버린 세대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마 11:16-17)

하나님을 멀리 떠나 영혼의 감각을 상실한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은 춤출 줄도 모르고 슬퍼할 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결국 ‘영혼의 감각을 상실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래전 인기 드라마 대장금에서 수라 간 궁녀인 장금이가 한동안 미각을 상실했습니다. 수라간 궁녀가 미각을 상실한 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 벌침으로 미각이 회복이 되니까 눈물을 흘리며 기뻐합니다. 때론 신앙생활 가운데 영적 감각, 은혜 의 감각, 기쁨과 감사의 감각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벌침 곧 말씀을 들음으로 회복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영혼의 감각이 회복되었다는 사인이 바로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분명히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것은 ‘믿음’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인 되신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오, 아버지시오, 구원자 되심을 알고 믿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러한 것을 믿고 사는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임재한 사람’ 곧 ‘예수의 믿 음’을 가진 성도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요?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기쁨의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내가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기쁨의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사이에 서로의 기쁨의 만남과 교제가 바로 ‘예배’입니다.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이 증언하십니다.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했지만 아벨의 제 사는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에녹 역시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는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7)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하고 그 대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존재 목적과 가치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가 왜 중요할까요? 감사가 사라진 상태가 ‘불행’이요, 감사가 넘쳐난 상태가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요? 물질, 명예, 권력, 때문에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 이러한 기쁨은 그것이 사라질 때 반대로 불행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내는 기쁨! 소유, 명예, 권력을 통해 얻는 기쁨과 즐거움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은 끝이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영과 진리로 참된 감사의 예배를 우리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 그 하나님의 기쁨이 오늘 우리에게 전이되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일 하늘의 은혜와 기쁨을 가정과 이웃과 직장에 배달하는 유통업자의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믿음은 하나님의 기쁨입니까?

장승권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B.A.)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
장신대 선교대학원(Th.M.)
장신대 일반대학원(Ph.D.) 수료
Drew University (D.Min.) 과정
(現) 청주서남교회 위임목사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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