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9장 1-8절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중략)…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최근 가황, 가수의 황제, 나훈아 씨가 모 방송에서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 을 위로하는 비대면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그 노래 중에 연일 화제가 되는 곡이 뭐지요? 그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 가본 저 세상 어떤가요? 테스 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 형”

이 노래는 코로나 시대에 세상살이가 무엇인가, 비정상적이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테스는 소크라테스를 친근하게 부른 호칭입니다. 그런데 그런 힘든 세상을 말하다 천국을 끄집어냅니다. 그런데 천국에 관하여 왜 테스 형한테 물을까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겁니다. 천국은 전문가이신 하나님께 물어야지요! 나훈아 씨가 언급한 천국은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을 의미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천국이란 단지 죽은 다음 영혼이 가는 곳만이 아닌 지금 여기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 Kingdom of God’을 말씀하셨습니다만 천국은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라 는 일반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눅 17:21).

이렇게 세상과 천국을 대조적으로 노래하는 것은 아마도 이 세상은 힘든 곳이고 천국은 쉼이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묘사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세상살이가 힘든 것은 누구나 동의하실 것입니다. 또 천국은 영원한 안식, 영원한 쉼이 있는 곳이 라는 것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의 쉼은 죽어서 천국에 가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자에게는 쉼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이 힘드셨지요? 그리고 많이 힘드시죠? 주님 은 수고한 자, 무거운 짐 진 자, 지친 자, 힘든 자들에게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게 오는 자에게 쉼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 리스도 안에 참된 쉼이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그 예배를 통하여 가슴에서 뜨거움이 솟아오릅니다. “아! 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아! 기쁘다. 아! 행복하다 아! 감사하다” 이 시대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 아버지이신 주님이 위로 하여 주시고 붙잡아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산모가 출산하게 되면 갓난아이에게 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어루만짐’ 입니다. 엄마의 어루만짐은 ‘엄마의 숨결, 엄마의 심장 소리, 엄마의 따뜻한 온기, 엄마의 부드러운 속삭임이 있습니다. 아이가 잠투정하면 엄마의 부드러운 속삭임이 시작됩니다. 엄마의 손길로 피부를 터치하고, 볼에 뽀뽀하고 “우리 아이 어쩜 이렇게 예쁠까?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자장자장 우 리 아기!” 그렇게 엄마의 손으로 가슴이나 등을 토닥거리고 자장가를 부르면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이렇게 아이는 엄마의 ‘어루만짐’을 통 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 ‘어루만짐’을 영어로 ‘Grooming’이라고 합니다. 이 그루밍은 주로 고양이과나 개과의 동물들이 잘합니다. 혀로 상대를 핥아주는 행위, 원숭이과 동물들이 상대방의 털을 고르며 이를 잡아 주는 행위가 바로 그루밍입니다.

그런데 ‘Grooming’이 오늘날 부정적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방법으로 타인을 길들이는 것을 ‘그루밍 성범죄’라고 합니다. 초등학생에게 오픈채팅을 통해 ‘게임 되게 잘한다’, ‘학원 다니는 것 힘들지? 숙제하기 싫지?’ 등의 대화를 이어가며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고 공감해 주며 신뢰를 쌓고 친밀감을 형성한 뒤 자신의 성 적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Grooming’은 ‘Groom’이란 동사로 쓰일 때는 ‘손질하다, 다듬다, 어루만지다’라는 의미이며, 명사는 ‘마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부는 ‘말을 씻기고 손질하는 사람, 말을 단장시키고, 길들이 고, 어루만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신부를 ‘Bride’, 신랑을 ‘Bridegroom’이라고 합니다. 신랑은 ‘신부를 어루만지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신랑은 신부를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물론 신부도 신랑을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위로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지체들끼리 서로의 피곤함과 아픔을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어루만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루만지시는 하나님, 그루밍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어루만짐은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서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여기서 ‘운행’이란 히브리어는 ‘라하프’(Rahap)입니다. 히브리어로 ‘라 하프’라고 합니다. 운행으로 번역한 라하프의 원어적 의미는 ‘어미 독수리 가 둥지의 새끼를 보호하면서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지극정성으로 감싸주며 보호하는 사랑의 모습, 어미 닭이 어린 병아리를 품고 모든 외부 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라하프’의 모습이 신명기 32장에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 32:11)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온 세상을 운행하시며, 우리를 라하프, 그루밍, 어루만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에도 온 세상은 하나님의 ‘라하프’로 충만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라하프’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로다 여호와께 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시 121:5-8)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키시는 그 모습이 바로 ‘라하프’입니다. 문제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다, 주님의 일을 감당하다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때 어떻게 해야 하나?’입니다. 오늘 지치고 피곤한 심령으로 나온 분은 없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탈진한 심령을 어떻게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의 왕비 이세벨이 죽이겠다는 협박에 그동안 버텨왔던 심령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 버틸 힘이 사라졌을 때 ‘하나님의 라하프’, ‘하나님의 그루밍’이 어떻게 임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는 아합 왕(B.C. 876-854)과 아하시야 왕 시대에 사역한 선지자로 오직 야훼 하나님만을 신실하게 섬겼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과 갈멜 산에서 누가 바알과 야훼 중 누가 참된 하나님이신지, 누가 과연 살아있는 신인지를 두고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 라 선지자 400명, 총 850:1로 대결을 벌입니다. 요즘 말로 ‘맞짱’을 뜹니다. 결과는 엘리야의 승리였고, 엘리야는 그 광경을 구경하던 백성들에게 기손 시내에서 우상을 섬기던 선지자들을 모두 도륙합니다. 거기다 3년 6 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큰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왕상 18:44, 약 5:17).

엘리야의 기도는 이스라엘이 당한 경제문제, 신앙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일을 아내 이세벨에게 일러바치자 이세벨이 반드시 엘리야를 죽이겠다는 말에 자기의 생명을 위해 브엘세바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거기서 광야로 하룻길 더 들어가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왕상 19:4)

지금 엘리야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Burn Out’(탈진)이라고 합니다. 엘리야의 Burn Out! 엘리야 안에 있던 열정의 에너지가 다 타서 바닥이 났습니다. 며칠 전까지 갈멜 산에서 목숨 걸고 하나님을 섬겼던 엘리야에게 갑자기 영적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목숨 걸고 하나님을 섬겼던 엘리야가 갑자기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도망치다가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하나님께 푸념과 항변을 늘어놓습니다. 지금 엘리야는 심각하게 영적 슬럼프, 영적 우울증에 걸린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적 탈진이 언제 찾아왔습니까? 갈멜 산의 승리 다음에 찾아왔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승리 뒤에 ‘영적 어려움, 영적 탈진’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등산은 산을 오를 때보다 산을 내려올 때 조심하고 합니다. 챔피언 벨트를 따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인생은 도전할 때 어려 운 것이 아니라 정복했을 때 승리했을 때 더 어려운 법입니다. 엘리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위대한 선지자입니까? 모든 야훼 선지자들이 사라지고 오직 엘리야만 홀로 꿋꿋이 버텨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버틸 힘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당시 엘리야의 주된 호소가 무엇이었나요?

‘나만 홀로 남았으나’(왕상 18:22) ⇨ 갈멜 산 대결 이전 ‘오직 나만 남았거늘’(왕상 18:10, 14) ⇨ 갈멜 산 대결 이후

엘리야는 갈멜 산 승리 이전과 이후에 변함없이 ‘자신만 남았다’라는 외로움, 그리고 자신을 향한 ‘연민의 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없이 자 신이 초라하고, 불쌍하고… “아! 더 이상 하나님의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 하지 못하겠다!”

엘리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도 낙심하고 절망하고 삶의 의욕이 상실되고 우울감과 영적 탈진이 찾아왔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우리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당연히 찾아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러 한 영적 어려움, 탈진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루밍하고, 라하프하고, 터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엘리야를 외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로뎀 나무 그늘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 나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왕상 19:5-6)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래서 떡과 물을 먹고 누었는데 천사가 또 찾아왔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왕상 19:7)

‘어루만짐’은 영어 성경에는 ‘Touch’, 히브리어로 ‘나가’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하나님의 어루만짐에 대하여만 사용하는 말입니다(단 8:18, 10:16).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루밍, 라하프, 터치하시고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엘리아야 너 외롭지? 엘리아야 너 힘들지? 내가 네 수고를 안다. 그런데 내가 있잖아~~.”이러한 하나님의 ‘어루만짐’은 새로운 힘을 주시는 능력으로 작용합니다. 엘리야는 그 위로를 통해 40일을 걸어 호렙산에 이르고 거기에서 새로운 사명을 받습니다. 또한 그렇게 외롭다고 하는 엘리야에게 “너만 남은 사람이 아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 명을 남겨 놓았다”라고 힘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위로는 엘리야에게 다시 버틸 힘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나만 힘들고, 나만 어렵다는 생각으로 엘리야처럼 하나님 앞에 나 오신 분은 없습니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낙심하는 엘리야 같은 처지를 호소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영적으로 탈진한 엘리야가 회복될 때까지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탈진한 엘리야, 버틸 힘이 사라진 엘리야를 어루만지 신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그루밍, 하나님의 라하프가 저와 여러분 위에 있습니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은혜와 나눔을 통해 하나님은 위로를 어루만지십니다. 하나님의 라하프를 날마다 경험하며 이 시대를 버티어 내고,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장승권 목사(청주서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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