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1-15절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 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 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믿음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하려 합니다.

첫째, 우리가 왜 ‘예수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이 세상 가운데서 승리의 삶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믿음 묵상을 계속하는 가운데 어떤 성도님께 ‘은혜의 파도가 계속 밀려오 는 것 같다’라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파도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파도를 일으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파도 앞에서 세 가지 반응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저 구경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수영복과 튜브, 서핑보드 등 물놀이 기구를 준비하였지만 안 들어간 사람입니다. 셋째, 서핑보드나 튜브를 준비하여 파도를 향해 뛰어 들어가서 파도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튜브도 있고 서핑보드도 있지만, 파도를 향해 뛰어 들어가지 않으면 튜브나 서핑보드는 있으나 마나입니다. ‘믿음’은 파도를 향해 튜브나 서핑보드를 들고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이라는 파도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파도를 오히려 즐깁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서핑보드를 가지고, 그 고난의 파도를 향해 달려가서 즐깁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이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2)

고난이란 파도가 다가오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믿음’이라는 서핑보드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 믿음의 서핑보드를 사용하여 고난의 파도를 즐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타 종교에도 믿음이 없는가?

믿음은 어느 종교이든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종교도 없을 것입니다. 어느 종교인이든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믿음은 타 종교의 믿음과 무엇이 다를까요?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인 ‘예수의 믿음’(Faith of Jesus)을 말하는 것입니다. 타 종교는 ‘내 믿음’을 말하는 것 이라면 기독교는 ‘예수의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예수의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 궁극적으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거듭남(Born again), 구원(Salvation), 영생(Eternal Life)을 얻습니다. 천국(Heaven), 하나님 나라 (Kingdom of God)를 얻습니다. 사람의 출생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한 생명이 이 땅 밖에서 이 시간 밖에 서, 이 땅으로 그리고 이 시간 안으로 침투해 오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남’의 경험이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방법은 ‘태어남’입니다. 태어남은 육적 출생을 말합니다. 육적 출생이란 ‘한 생명이 세상 밖에서 세상 안으로, 시간 밖에서 시간 속으로 들어오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육적 출생을 얻은 것 자체가 바로 사람으로 누리는 첫 번째 복입니다. 그런데 육적 출 생의 복을 받은 사람이 이 시간 안에 살면서 반드시 받아야 할 또 하나의 복이 있습니다. 그 복이 바로 ‘영적 출생의 복’입니다.

그러면 육적 출생은 알겠는데 영적 출생이란 무엇인가요? 영적 출생이 란 ‘시간 속으로 들어온 존재가 다시 영원 속으로 들어가는 것’, ‘사람이 시 간 안에서 영원으로 침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은 스스로 시간 안에서 영원으로 침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영적 출생의 복은 모든 사람이 받는 복이 아닙니다. 사람이 시간에서 영원으로 들어가는 사건, 영적 출생의 사건을 ‘구원’ 또는 ‘영생’이라고 합니다.

왜 영적 출생을 해야 하나요? 영적 출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 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 출생의 복을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예수의 믿음을 가진 자만이 얻는 복입니다. 오늘 주님은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네 가 거듭나야 하겠다”(요 3:7)라는 말씀을 놀랍게 여기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적 출생의 기회를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적 출생을 통해 시간 안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시간에서 영원 속으로 옮겨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시간 안에서 영원 속으로 침투하는 영적 출생의 신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내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산헤드린 공의회의 일원으로 당시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은 의장을 포함하여 71명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의장이 되 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서기관 장로 등 백성의 대표들로 구성하여 유대 인들의 사법, 입법, 종교를 관장하는 최고의 권력기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공의회의 의원이었던 니고데모는 부와 권력과 명예가 있었고 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나아가 누구보다도 야훼 하나님을 믿는 열심 있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밤에 왔다는 것은 사람의 눈을 피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부릅니다. “랍비여!”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좀 특별한 랍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특별함이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 때문이었고, 그 표적이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면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왜 니고데모가 사람들 의 눈을 피해 예수를 만나러 와야 했느냐?’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왜 예수라는 랍비를 찾아왔을까요? 니고데모가 예수님에 대하여 질문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하신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다” (요 3:2)

니고데모는 예수라는 랍비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있기 때문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청년 랍비 예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랍비 예수에 대하여 불편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랍비 예수를 낮에 만나는 것은 아마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 밤에 랍비 예수를 찾은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고 있었음에도 자신도 모르는 ‘어떠한 영적 갈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어쩌면 저 특별한 랍비 예수가 자신의 영적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니고데모가 오기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니고데모는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아니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다시 어머니의 태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 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라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 저 유일하신 야훼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거듭나야 한다” 즉,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6)

우리는 모두 부모의 육체를 통해서 육으로 출생했습니다. 영적 출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영을 통해서 출생할 수 있나요? 바로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 ‘성령’을 통해서만 영적 출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거듭남이 란 ‘다시 태어남’, ‘영적 출생’을 말합니다. 사람은 지, 정, 의를 통해 자신 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을 때, 그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의 영, 곧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임재가 시작됩니다. 이것을 ‘영 적 출생’,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거듭남’, ‘영적 출생’은 현재의 시간에서 영원으로 잇대어지는 삶이 시작됨을 말합니다. 이것을 ‘구원’, 또는 ‘영생’ 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영적 출생, 구원, 영생,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믿음’으로 ‘예수의 영’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야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사건을 예로 듭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르 산에서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해 원망 했습니다. “이 광야에서 죽게 만들었다. 이 광야에서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한다”라고 불평했습니다.

이 하찮은 음식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말합니다. 세상에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내려 주신 ‘만나’, 이 만나가 없었으면 그야말로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향해 악평을 합니다. 결국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한 태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로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죽게 돼서야 모세에게 살려 달라고 요청했고, 모세는 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그 것을 본 자는 살려 주셨습니다.

“…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 21:8b)

그것은 ‘놋뱀’을 말합니다. 불뱀에 물린 자가 고개를 들어 놋뱀을 보면 그것만으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고개를 들어 놋뱀을 보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매우 쉬운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쉽게 주셨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구원의 방법이 너무 쉬우니까 우습게 여기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5-16)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 안에 구원이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사도 요한은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만남 의 결과를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구원, 영생, 즉, 복 음의 진수인 요한복음 3장 16절을 말씀하신 것을 니고데모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말씀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사복음서 중에 유일하게 이 니고데모의 방문을 기록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제아무리 명성이 높고 권력이 높고 많은 재물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인생의 마지막 모습은 모두 똑같습니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에게 주신 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3:19b)

이 말씀은 심판이기도 하지만 당연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신의 구성체는 흙으로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생령이 떠나면 그 가치는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람 은 다른 동물과 달리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방법으로 ‘생기’(네사먀)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네샤마는 하나님의 호흡 또는 기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의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야)이 되었습니다.

네페쉬는 호흡(Breath), ‘숨’, 하야는 ‘생존’,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네페쉬 하야, 곧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는데 하나님의 네샤마(숨)을 불어 넣은 살아있는 영적 존재가 된 것입니다. 흙덩이에 불과한 사람이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생기’(네사먀)가 떠난 사람은 그저 흙덩이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흙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본질이 ‘흙’임을 분명하게 정의하신 것입니다. 한 줌 흙덩이에 불과한 존재에 ‘하나님의 형상’을 넣어 두시고,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한 줌 흙덩이에 불과했던 우리를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선물로 주셔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하니 이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흙덩이들이 창조주 하 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것은 선하고 마땅한 일입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시 33: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시 147:1)

흙덩이에 불과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령’이 되었으니 우리의 창조자 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육적 출생을 통해 세상으로 들어와 시간 안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다시 시간에 서 영원으로 출생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거듭남’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안 에 ‘예수의 임재’가 시작되면 영적출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믿음을 가진 성도가 얻는 것은 ‘거듭남’, ‘영적 출생의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까? 여러분은 영적 출생의 복을 받았습니까? 』

장승권 목사(청주서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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