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장 12-18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 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 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 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가장 알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워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찬양은 열심히 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 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그런데 노래는 부르는데, 정 작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앤드루 머레이 (Andrew Murray) 목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뜻을 알기 위해 충분한 수고의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에 의하면, 우리가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기도하고 찾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 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9)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 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또한, 마태복음에는 무서운 말씀이 나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다윗은 일찍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 이다” (시 40:8)

다윗은 자기를 향한 주님의 뜻을 알았고, 그 뜻을 행하는 것을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삶을 다윗은 현실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오늘 짧은 시간에 성경 여러 곳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뜻을 모두 살펴볼 수 없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더 자세 히 다루기로 하고,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 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첫째, 항상 기뻐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항상 기쁘게 사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 참 어렵죠? 사람이 사는데 어떻게 항상 기뻐하면서 살 수 있습니까? 슬플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고, 우울할 때 도 있는 것이 사람이지, 어떻게 항상 기뻐하면서 살까요?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고 구마 한 100개 먹은 것처럼 답답한 심정입니다.

‘누구는 그렇게 안 살고 싶어서 안 사나?’ 하실 것입니다. 즐겁고 기쁘게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게 안 되니까 슬픈 것이고, 우울한 것이고, 화가 나는 것인데, 그런 내 형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항상 기뻐하라 그것이 너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 지금 의 내 현실과 너무 큰 간격이 있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 말대로 남들이 볼 때는 항상 웃고, 남들이 보지 않을 때는 슬퍼하면 되는 것일까요? 밤에는 밤새도록 슬픔에 잠겨서 울다가, 낮에는 사람들 만나야 하니까 밤새 흘린 눈물을 훔치고 다시 화장을 하고 활짝 웃 는척하면서 항상 기쁜 얼굴을 하면서 출근을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할까요? 그런데 성경은 밤낮없이 항상 기뻐하라고 하니,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슬픈 일 만나면 슬퍼도 하고, 화날 일 생기면 화도 내면서 살아야지 어떻게 사람이 조증 환자처럼 웃으면서 살 수 있습니까?

성경을 읽는 법 중에 하나님 중심의 성경읽기가 있고, 내 중심의 성경읽기가 있습니다. 성경을 내 중심으로 읽으면 모든 것이 율법이 되고, 명령 이 되어서 모두 내가 해야 할 의무가 되지만, 성경을 하나님 중심으로 읽으면 그 모든 명령과 의무처럼 보였던 것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시는 약속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소망이 약속이 되는 것 입니다.

예를 들어, 제 첫 번째 책인 『다시 일어남』에 자세히 나와 있는 내용인 잠언 24장 16절을 읽을 때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라는 구절을 내 중심으로 성경을 읽으면 내가 여덟 번 다시 일어나야 하니 힘들어 못 일어납니다. 같은 곳에서 일곱 번 넘어진 바보가 어떻게 여덟 번째 일어나겠습니까? 이것을 명령으로 읽으면 일곱 번 넘어 진 사람은 좌절하고 무너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성경읽기로 읽으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말은 나보고 여덟 번 일어나라가 아니라, ‘내가 너를 여덟 번이라도 다시 일으켜 줄게’라는 약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 중심으로 읽어야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으로 읽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내 중심으로 읽으면 내가 염려를 안 해 야 하니 힘듭니다. 염려 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어떻게 염려를 안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읽으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 내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도록 해줄게”로 읽게 되면, 이것은 부담이 아니라 능력이고, 소망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읽어봅시다. “항상 기뻐하라. 네가 항상 기쁘게 사는 것 이 나의 뜻이다”라고 내 중심으로 읽으면 부담이 되어서 살 수 없습니다. 기뻐하지 않는 순간 죄를 짓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으로 이 구절을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내가 너를 기쁘게 해줄게. 네가 슬픔가운데서도, 화나는 가운데서도, 우울한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말고, 너무 슬퍼하지 마라. 오히려 기뻐해라. 왜냐하면,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내가 원하는 뜻이 네 속에서 차질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네가 지금 겪는 그 모든 환경이 내 뜻을 이루지는 과정 이다. 그 뜻을 내가 반드시 너를 통해 이룰 것이다. 그러니 슬퍼 보인다고 슬퍼하지 말고, 항상 기쁨으로 살아라.”

바로 하나님 중심으로 읽게 될 때 해석되는 구절입니다. 이러면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일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고, 하나님이 직접 그 뜻 을 이끌고 이루어 가시고, 하나님이 그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를 향한 그 뜻을 거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슬퍼해도 아주 슬퍼하지 않고, 좌절해도 아주 넘어지지 않고, 우울해도 다시 눈물을 닦고 웃을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내 상황에 웃을 일 단 하나도 없지만, 주님의 뜻이 이 가운데서도 있다 고 하니, 그 뜻을 신뢰하고 내가 이제부터 기뻐하겠습니다’하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내 마음에 넣어두신 기쁨을 어떤 환경에도 빼앗기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 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이 말씀을 의지하여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첫 번째 자세입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니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뜻이 라니, 힘들어서 어떻게 삽니까? 그러나 이것은 밥도 먹지 말고 잠도 자지 말고 사람도 만나지 말고 기도만 쉬지 말고 하라가 아니라, 시작한 기도를 포기하고 멈추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삼상 12:23a)

이 말은 사무엘이 24시간 기도를 했다는 뜻이 아니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날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하겠다는 뜻입니다. 기도에는 안식일도, 안식년도 없습니다. 우리 평생 기도를 쉬어도 되는 날은 없습니다. 안식일에 다른 것은 다 쉬어도 기도는 했습니다. 아니, 기도를 더 많이 했습니다. 그 래서 이스라엘에는 기도가 멈춘 날이 없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24시간 기도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도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네가 쉬지 말고 기도하면 내가 쉬지 않고 네 속에서 일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것입니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내 속에 하나님의 뜻도 멈추지 않고 계속 이루어집니다. 내가 기도를 하다가 멈추고, 하다가 멈추고 하면,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지다 멈추고, 이루어지다가 멈추어 버립니다. 그러나 기도를 멈추지 않으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도 멈추지 않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이 말씀에는 또 다른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은, 쉬지 않고 듣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24시간 귀를 열어두고 계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성경에 는 기록돼 있어도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을 읽으면 이 말씀은 내가 쉬지 않고 너의 기도를 듣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기도는 예약제가 아닙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올라오는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쉬지 않고 듣고 계십니다. 밤에 깨어 기도를 해도 들으시고, 밝을 때의 기도도 들으시고, 비가 올 때의 기도도 들으시고, 눈이 올 때의 기도도 들으시면서 언제 나 우리의 기도에 귀를 열고 듣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라. 나도 쉬지 않고 듣고 응답해 주겠다. 네가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고 삶을 포기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다. 네가 기도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 뜻을 구하며 기도하는 그것이 너를 향한 나의 뜻이다”라 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기도하고 있다면, 그 기도 속 에 지금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범사에 감사라는 말을 내게 주시는 명령으로 들으면 ‘어떻게 사람이 모 든 일에 감사를 할 수 있어…’라고 원망이 되겠지만, 이 구절을 하나님 중심으로 읽으면, “모든 일에 감사해라. 내가 그것을 감사로 바꾸어 주겠다”로 읽히는 순간 이 구절은 소망이 넘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미리 알고, 모든 일에 감사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감사할 수 없는 중에도 웬일인지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바 로 그 사람이 사는 방식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일을 마치고 나서 결과를 보고 그제 서야 감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이 일 도 틀림없이 감사로 마무리될 것을 미리 알고 일을 시작할 때부터 감사하면서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진짜 예수님을 믿는 분이라면 한 분도 예외 없이 여러 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담기지 않은 신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것은 그분의 뜻으로 부르신 것이고,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든 성도는 하 나님의 뜻이 이루어져가는 중입니다. 그 뜻을 단지 다 알 수 없을 뿐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한 가지는 그 뜻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결국에는 모 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갈 때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인내입니다.

아브라함 속에 이삭이라는 뜻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인내를 하지 못했을 때 이스마엘이라는 지금 이슬람의 조상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잠잠히 그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소망 가운데 인내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서두르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은 인내로 그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히 10:36)

지금 여러분이 항상 기뻐하면서 살고,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고, 모든 일에 감사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그 모습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여러분에게 원하는 결과가 일어나지 않고 도대체 나를 통해 하나님이 무슨 뜻을 이루시려는지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답답한 순간에는 멈추지 않고 그 뜻을 여러분 속에서 이루어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기쁨을 잃지 않고 사 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기도를 멈추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삶을 사는 것 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감사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 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 가시는 그 뜻은 우리의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행하시는 그 뜻은 내가 좋으면 받아들이고, 싫으면 물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 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서, 주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내 모든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내로 한발 나갈 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나의 삶에 차츰 안개가 걷히고 하나님이 나를 향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뚜렷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30년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가온 흑사병으로 고통을 당하던 독일에 주님의 부름을 받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32세 된 루터교회 젊은 목사 베냐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 1672-1737)는 아내와 함께 그날따라 조금 먼 곳으로 심방을 나갔습니다. 그들의 방문은 상처 입은 교인들에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여러 곳을 심방허고 해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저기 멀리 보이는 집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느낌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설마 하며 재빨리 집으로 뛰어가 보니 사택은 이미 홀랑 타버렸고 탄내만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목이 터져라 아들들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정신 나간 듯이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슈몰크 목사는 어린 아들 형제가 화재에 새까맣게 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인은 그만 정신을 잃고 맙니다. “내가 심방을 가 지 않았더라도 아들을 살릴 수 있었는데….” 슈몰크 목사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부부가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중, 죽음을 앞에 두고 땀방울을 핏방울처럼 흘리면서 기도하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는 말씀이 맴돌았습니다. 죄인들로부터 온갖 모욕과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니 더 이상 주님을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약한 자들을 돌본다고 어느새 의로움으로 교만해져 주님을 원망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무엇이든지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무엇이든 주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가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중에 영감을 얻고 쓴 찬송이 바로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 속에서 그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기도 하고, ‘도대체 얼마나 큰 뜻을 이루시려고 날 이토록 힘들게 하시는가?’하며 이해를 못 할 상황도 있습니다. 우리를 정금으로 쓰실지, 질그릇으로 쓰실지 알지도 못합니다. 주님은 때로는 내 동의도 묻지 않으시고, 그럴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큰 뜻을 두고 이끌어 가시면서 단련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부딪힐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주 님 뜻을 따라 여러분이 힘들어도 한발 한발 걷다 보면, 그 뜻대로 부르심 을 입은 자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이루어지는 것을 마침내 보게 될 것입니다.

최병락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