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 22-25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 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위기는 곧 기회다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문으로 위기는 ‘위태할 위 (危)’와 ‘기회 기(機)’로 이루어졌습니다. 역사학자 토마스 칼라일(Tomas Carlyle)도 “위기는 기회에서 온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실제로 위기 가 곧 기회가 된 경우들이 많습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하만이라는 사람의 모략에 의해 유대민족이 말살될 위기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후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극적으로 개입하셔서 하만의 모든 계략이 들통나고, 유대인들은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원수들이 도륙을 당하는 대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된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 역시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아 7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머리털 하나 그을리지 않고 살아나왔습니다. 그것을 본 느브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람을 구원 할 다른 신이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위기가 곧 기회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바로가 이끄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왔습니다. 앞에는 넘실대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는 바로가 이끄는 애굽의 군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이었 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뒤따라오는 애굽의 군대는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위기가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다윗 역시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위기가 곧 기회가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수없이 체험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싸움터를 방문했던 다윗 은 3미터나 되는 적장 골리앗 앞에 서게 되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어린 소년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물매와 돌을 들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는 힘차게 달리면서 골리앗을 향하여 물맷돌을 던 졌습니다. 그러자 3미터나 되는 거구 골리앗이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졌습니다. 이에 블레셋 군대가 혼비백산하여 급히 도망갔습니다. 골리앗과의 만남이 인생의 위기였지만 도리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만방에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은 위기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위기를 싫어합니다.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중요 한 것은 동일한 상황과 환경도 어떤 사람에게는 위기가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될 수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술주정꾼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성직자가 되고, 한 아들은 술주정꾼이 되었습니다. 술주정꾼인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술주정꾼이 되었습니까?” 주정꾼인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평생 술을 잡수시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성직자가 된 아들에게도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아버지가 술 마시는 것을 보고도 술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성직자가 된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평생 술을 잡수시는 아버지의 모 습을 보고 자랐는데 어떻게 제가 술을 입에 댈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똑 같은 상황과 환경에서 자랐는데 한 아들은 술주정꾼이 되었고, 한 아들은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위기가 다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 는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위기가 추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는 위험한 기회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에게 찾아온 위기 역시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위기

예수님에게 찾아온 위기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앞서 오병이 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놀라운 기적을 행하 자 사람들은 이 표적을 보고, 자신들이 참으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선지자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요 6:14)

사람들은 예수님을 기적의 현장에서 억지로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요 6:15)

예수님은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유혹과 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지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왕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한 기적을 보고, 그 현장에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임금으로, 정치적인 메시아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그것이 바로 위기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신에게 찾아온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셨을까요? 먼저 자기를 임금 삼으려는 군중들을 해산시켰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군중심리를 이용해 예수님을 더욱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엔 제자들을 당신보다 앞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 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 더니” (마 14:23)

예수님은 자신을 임금 삼으려고 하는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이후 홀로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유혹의 자리를 피해 산으로 가 늦은 시간 까지 홀로 기도함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유혹의 위기를 극복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높아지기를 원하고,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박수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는 그 순 간이 우리 인생에 가장 위기의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때 마음이 흔들리고,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 에 이런 유혹이 찾아올 때에는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홀로 더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인생의 위기를, 또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찾아온 위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두 번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첫째는 기적의 현 장에 찾아온 위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 아 즉,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킬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기적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예수님의 제자 들이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언제 메시아로 등극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제자들 또한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 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들이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며 예수를 붙잡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할 때에 내심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해 그 현장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 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마 14:22)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대처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의 상황이 제자들에게 위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등극하는 것이 자신들에게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정 치적인 메시아로 등극하여 임금이 되면 자신들도 한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지금의 상황을 기회로 생각하고 있 었지만, 예수님은 위기로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남들로부터 칭찬과 환호를 받고, 인정받는 것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생활이 안정되고, 문제가 없는 상황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실직을 당한다든지, 자녀가 가출을 한다든지, 사 업이 부도가 난다든지, 암에 걸렸다든지, 가족 중에 누군가 교통사고를 당 했다든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든지 또는 불이 나서 집이나 공장이 전소되었을 때 이를 위기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위기가 아닙니다. 내 삶에 문제가 없어 안주하다가 서서히 내 영혼이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그것이 최고의 위기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이런 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 승진할 수 있는 기회, 대박을 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분이 처해 있는 그 상황을 기회가 아닌 위기라고 생각 하실 때가 있습니다. 반면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위기라고 생각하는 데 하나님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기와 기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무엇을 근거로 위기라고 말씀하시고, 무엇을 기준으로 기회라고 말씀하실까요? 바로 하 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만약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좋은 직장에 입사하고, 추진하는 사업이 잘 되더라도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그것은 내 영혼의 위기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지금 당하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면 이 고난은 위기가 아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만난 두 번째 위기는 풍랑을 만난 위기입니다. 예수님은 오병 이어 기적 이후 제자들을 재촉해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 을 당하더라” (마 14:24)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이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흔히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악된 길을 갈 때에만 어려움이 오 고, 위기가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요나는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처럼 말씀에 순종하여 가는 길에도 위기가 있고, 고난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의 현장을 보고 계시는 주님

그런데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 이 풍랑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제자들의 현장을 보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막 6:48a)

예수님은 이미 풍랑을 만나 괴로이 노를 젓고 있는 제자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어디서 보고 계셨을까요? 기도의 현장에서입니다. 산 위에 올라가 홀로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기도의 현장에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힘겹게 노젓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아무도 없는 칠흑 같은 갈릴리 바다의 한 복판에서 풍랑을 만나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것을 주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이는 중요한 기도의 요소입니다. 기도할 때는 막연하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산에 올라야 합니다. 실제로 높은 산에 올라가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주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보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의 깊은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성령님이 이끄시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현장을 보며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자비하심이 필요한 이들의 가난한 심령이 느껴지고, 선교지의 아픔과 눈물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생각나게 하십니다. 또 공동체의 비전에 함께 동참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따라 믿음으로 도 전하는 뜨거운 마음을 주시기도 합니다.

주님은 보고 계십니다. 오늘 당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인생의 풍랑을 만나 괴로이 노를 젓고 있는 당신의 지친 모습을 주님은 보고 계십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발 을 동동 구르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너무나 기가 막힌 일 을 당해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당신을 주님은 보 고 계십니다. 경기 침체로 인해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당신을 주님은 보고 계십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폭력에 두려워 떨며 안절부절못하는 당신의 모습도 주님은 보고 계십니다. 배우자의 외도와 자녀의 탈선으로 인해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당신의 모습을 주님은 보고 계십니다. 이런 상황을 일찍이 경험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 139:2-4)

다윗은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모든 것, 앉고 일어서는 것만이 아니라 내 모 든 생각과 혀의 말까지 알고 계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인생의 위기를 당할 때,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만은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의 현장을 찾아오시는 주님

또한 예수님은 보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 현장에 찾아오셨습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마 14:25)

예수님은 기도의 현장에서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며 안타까워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동이 트는 아침까지 머뭇거리거나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급한 나머지 물 위를 걸어 제 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언제 찾아오셨습니까? 밤 사경입니다. 밤 사경은 새벽 3-6시를 말합니다. 해가 넘어간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경과했고, 곧 여명이 밝아올 시간이기 때문에 어두움이 가장 짙게 깔린 때입니다. 그런 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상황을 보셨으면서도 좀 더 일찍 나타나 구원하시 지 않으셨습니다. 밤 사경까지 기다리셨습니다. 밤 사경까지 기다리셨다 가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을 구원하여 내셨습니다. 성경은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밤 4경에 찾아와 일을 행하심을 말합니다.

왜 밤 4경에 일을 행하시는가?

왜 밤 4경일까요? 이 시간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첫째, 밤 4경은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실 수 있는 최고의 시간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밤 4경 즉 새벽 3-6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때로 육체의 한계, 지식의 한계, 경험의 한계를 느끼는 시간입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발버둥을 쳐도 인간으로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을 말합니다.

사실 제자들도 풍랑을 만났을 때 자신들의 힘으로 풍랑을 이겨내려고 하였습니다. 힘을 다해 노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자신들의 힘과 노력으로는 풍랑을 이길 수 없는 자포자기의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이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밤 4경이 제자들에 게는 가장 큰 절망의 시간이요, 한계의 시간이요, 온전히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실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밤 4경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임을 분명히 직시하기 위한 상징적 인 때입니다. 주님이 밤 4경에 찾아오셔서 일을 행하신 이유는 이 일이 오 직 하나님에 의한 일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어떤 문제가 생기자마자 기도해서 그 일이 즉시 해결되었다면 우리는 내심 운이 좋아서, 시 대를 잘 만나서, 나 자신의 뛰어난 판단과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많은 경우 불가능한 상황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상황이 될 때까지 기 다리십니다.

그래서 “주님, 제게는 아무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역사 해 주시지 않으면 나는 일어설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나를 도 우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이 고백을 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어떤 이는 속된 말로 “하나님이 티를 내신다”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티를 내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 일을 행하셨음을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밤 4경에 물 위를 걸어오셔서 그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이후 예수님이 그 배에 오르시매 바람이 그쳤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만이 내 인생의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기 가운데서 건져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지 금 당신이 만난 인생의 위기가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 든 위기가 곧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위기가 곧 추락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위기가 곧 주님을 만나고, 주께서 행 하시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이 경험하는 인생의 위기가 추락이 아닌 도리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김은호 목사

개혁신학연구원 신학부 졸업(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낙스신학교 목회학 박사
국민일보 이사
사단법인 프렌즈 이사장
GoodTV 공동대표이사
교회성장연구소 법인이사
(現) 오륜교회 담임목사
■ 저서
『꿈만 같습니다』, 『무릎으로 승부하라』, 『땡큐 바이러스』 외 다수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