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장 1-10절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중략)…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설교를 시작할게요. ‘친구들은 지금 행복한가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요?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볼게요. ‘친구들은 행복하기를 원하나요?’ 대답할 가치가 없는 물음이죠? 세상에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도 없을 거예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살아요. 목사님도 한때는 누군가 나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다닌 적이 있어요.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실제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아요. 뉴스나 신문기사만 보더라도 우울감이나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하고, 심지어는 분노조절 장애를 겪는 사람들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사고 이야기도 종종 들려와요.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을 가만히 지켜봐도 대부분 근심과 수심이 가득한 얼굴들뿐이에요.

얼마 전, 우리 사회에 등장한 신조어가 있어요. 바로 ‘워라벨’이라는 말에요. 한 번쯤 들어본 말이죠? 이 단어는 Work – Life – Balance의 약자인데,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이 단어를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변형해서 ‘스라벨’이라고도 하더라고요. Study -Life – Balance, 공부와 삶의 균형이라는 뜻이에요. 친구들의 스라벨은 어떤가요? 만족스럽나요?

왜 갑자기 이런 신조어들이 우리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을까요?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만연해있는 ‘성공주의’, ‘성과주의’ 때문이에요. 내가 반드시 성공해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밤낮없이 미친 듯이 일을 해야 하고, 또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쉴 틈없이 달리다 보니, 행복하기 위해서 일하는데, 정작 삶에서 행복을 누릴 시간이 없어져 버린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 행복을 누리려고 자기만의 취미나 여가를 만들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려고 해요.

그러나 친구들, 워라벨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면 행복이 저절로 찾아올까요? 그렇지 않아요. 왜일까요? 행복은 외형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매일 착각해요. 우리가 어떤 것을 가졌을 때나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행복해진다고 믿어요. 결혼을 하면 매일 행복할까요? 더 높이 승진을 하면 행복할까요? 전교 1등을 하면 행복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런 행복은 잠시 잠깐일 뿐이에요. 결혼을 해도 불행을 느껴서 이혼을 하는 커플도 많고요, 회사에서 승진을 한다 해도 더 많은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쌓여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렇다면, 진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오늘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해요. 창세기 13장은 행복을 좇아간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어요. 바로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에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의 식구들을 전부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런데 때마침 가나안 땅에 극심한 기근이 생겨서 이를 피해 애굽으로 잠시 피신을 갔다가 ‘네게브’라는 곳에 도착했어요.

당시 아브라함과 롯의 가족은 목축업을 했어요. 소나 양 같은 가축을 기르며 살았던 거죠. 그들은 모두 부자였어요. 성경에 보니까 가축과 은과 금이 엄청 많았다고 해요. 그런데 이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요.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축들이 점점 번성하다 보니 두 사람이 살기에는 땅이 너무 비좁아진 거예요. 목초지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가축들을 먹어야 하다 보니 어려운 상황이 생긴 거죠.

그러다 결국 문제가 터졌어요.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진 거예요. 목자들이 자기의 가축들에게 더 좋은 풀을 먹이려고 서로 경쟁을 벌어지다가 커다란 다툼이 생긴 거예요. 게다가 더 문제였던 것은 그 땅에 가나안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심각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목자들 간의 다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몸싸움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불렀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피를 나눈 친족 아니냐? 우리끼리 다투는 일이 있어서 되겠니? 자, 이제 우리 서로 떨어져 살자.’라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아주 재미있는 제안을 하는데, 약간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을 해요.

“네가 보는 앞에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 따로 떨어져 살자.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창 13:9, 새번역)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차질 수 있는 선택권을 줬어요. 아브라함은 롯이 먼저 선택하면, 자신이 나머지 반대편을 차지하겠다고 해요.

친구들,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브라함이 약간 바보 같지 않아요? 먼저 좋은 곳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나요? 당연히 가족 서열 상 더 높은 아브라함이었겠죠. 아브라함이 롯의 큰 아빠였으니까요. 아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브라함의 등짝을 한 대 때렸을 지도 몰라요. 그만큼 미련한 제안이죠. 만약 롯이 먼저 좋은땅을 선택하면, 아브라함은 나쁜 곳으로 가야 해요.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상황이에요.

조금 억지스러운 예를 들어볼게요. 마음이 어려워도 이해해 주세요. 이 지구상에 딱 두 명의 남자만 남아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두 사람은 바로 ‘강다니엘’과 ‘목사님’이에요.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친구들은 우선 선택권을 양보할 수 있나요? 절대 그럴 수 없을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가진 권리를 포기하지 말고 사용해야 할 거예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어땠나요? 바보처럼 그 기회를 롯에게 내어줬어요. 아니나 다를까, 아브라함의 제안에 롯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 보세요.

“롯이 멀리 바라보니, 요단 온 들판이, 소알에 이르기까지,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과도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 (창 13:10a, 새번역) 롯이 높은 곳에 올라갔어요. 그러고는 어느 땅이 좋은지 사방을 둘러보았어요. 그중에 그의 눈에 요단 쪽이 확 들어왔어요. 요즘 말로 요단에 꽂힌 거예요. 성경에 보니까 그곳이 롯의 눈에 ‘여호와의 동산’ 같아 보였고, ‘이집트’ 같아 보였다고 해요. 여호와의 동산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천국을 의미해요.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것들이 가득한 세상 말이에요. 이집트는 화려한 문명들이 있는 당시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으니, 결국 롯이 선택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세상의 행복과 풍요로움을 좇아간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숨겨져 있어요. 롯의 선택은 그의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었을까요?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은 평지의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소돔 가까이에 이르러서 자리를 잡았다. 소돔 사람들은 악하였으며,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었다.” (창 13:12-13, 새번역) 롯은 세상의 화려한 문명과 즐거움을 좇아가다가 결국 소돔이라는 곳 가까이까지 이르게 됐어요. 하지만 그 소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악들로 가득한 땅이었어요. 롯이 세상의 행복을 좇다가 그만 죄악의 길로 빠져버리게 된 거예요.

친구들, 롯의 이야기를 통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 눈에 보기에 아무리 좋아 보여도 죄가 있는 곳은 불행한 곳이라는 사실이에요. 반대로, 비록 지금 내 삶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초라하고 볼품없다고 해도 그게 불행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뜻이에요. 친구들, 진짜 행복은 무엇일까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일까요? 돈 많이 버는 직장에 취직하는 것일까요? 남들이 아무리 부러워하고, 보기 좋은 삶이라도 해도 결국 거기에 죄가 있으면 불행한 삶이라는 거예요. 물론 우리 친구들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공부하지 말란 이야기 절대 아니에요. 다만,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느냐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몇 해 전, 통계청에서 청소년들에 대해 설문조사한 기사를 봤어요. 우리 나라 청소년 행복지수에 대한 설문조사였어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행복 지수는 몇 등이었을까요? 충격적이게도 OECD 22개국 중에 꼴찌였어요. 그것도 10년 연속 최하위였다고 해요. 이 국가들 중에는 우리보다 훨씬 못사는 나라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우리 청소년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대요. 목사님이 이 기사를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우리 친구들이 매일 성적에 대한 압박감과 입시 스트레스에 몰리면서 살다 보니 세계에서 제일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또 다른 조사에서 청소년들에게 ‘가출 충동을 느낀 적이 있냐’고 물었어요. 53.3%가 그렇다고 답했어요. 절반 이상이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거예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해방구는?’ 인터넷, 컴퓨터 게임뿐이래요. 이 조사를 보면서 우리 친구들이 왜 그렇게 게임을 좋아하는지 이해하게 됐어요. 또 다른 질문들이 있어요 ‘내가 잊고 싶은 두려움은?’ 이번에 치른 시험 결과래요. ‘나의 가장 큰 결점은?’ 공부를 못하는 것이래요.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강타한 드라마가 있어요. 바로 ‘스카이캐슬’이에요. 왜 드라마 제목이 ‘스카이캐슬’일까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약자인 스카이(SKY)라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한 드라마에요. 사람들이 이 하늘의 성에 들어가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발버둥을 치는 이야기를 풍자한 스토리에요. 그 드라마를 보면, SKY에 들어간다고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줘요. 세상 사람들도 알아요.

행복은 내 눈에 보이는 즐거움, 만족을 좇는 것이 아니에요. 행복은 스카이 대학에 가야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진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친구들이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어느 곳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계신 곳이 진짜 행복이 있는 곳이에요. 차디찬 조명 하나뿐인 독서실에서 홀로 외롭게 공부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곳이 행복한 곳이고요, 우리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남들처럼 과외 못 받는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 가정과 함께 해주시면 그곳이 진짜 행복이 있는 천국이 되는 거예요.

친구들, 행복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에요. 하나님만이 우리의 행복이세요. 그 행복이신 하나님이 지금 어디 계실까요?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세요. 행복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있어요. 우리 마음에 계시고, 우리 삶에 계세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든 곳이 행복한 곳이에요.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만 행복을 누릴 수 있어요. 다윗이 시편 16편에서 이렇게 고백했어요.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다” (시 16:2, 새번역) 친구들을 위해 간절히 축복해요.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영원한 소망과 행복을 누리게 되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할게요.

방세휘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과 졸업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Th. M.)
안산 꿈의교회 교육부 총괄 디렉터
안산 꿈의교회 청소년교회 담당목사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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