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장 46-52절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I. 서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해요(히 10:39). 그렇다면 구원 받기 위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함께 바디매오 이야기를 통하여 구원받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알아보려고 해요.

본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여러 무리들과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 한 맹인 거지를 만나게 돼요. 그 맹인 거지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디매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리를 듣고 소리를 외쳐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바디매오를 꾸짖었어요. 하지만 바디매오는 더 큰 목소리로 외쳐요.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바디매오를 불러오라”고 해요. 그 말을 들은 바디매오는 자신의 겉옷을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바디매오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어요. 바디매오에게 어떤 믿음이 있었을까요?

바디매오에게 있었던 믿음, 첫 번째는 ‘들음’이 있었어요.

다 같이 오늘 본문 마가복음 10장 4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칩니다. 분명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말했고, 바디매오도 “나사렛 예수”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라고 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외칩니다.

‘나사렛 예수’는 예수님의 별명이었습니다. 친구들도 별명이 다 있지 않습니까? 목사님도 별명이 있어요. 이름이 ‘강경우’여서, ‘갱우, 강갱, 경우 없는 등등’의 별명이 있어요. 이것처럼 “나사렛 출신 예수”는 예수님의 별명이었어요. 그리고 ‘다윗의 자손’은 언젠가 이 땅에 올 메시아(구원자)의 별명으로 사용이 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구원자)를 다윗왕의 재현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냥 ‘나사렛 출신 예수’이지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바디매오는 달랐어요.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는 자신을 구원하실 메시아(구원자)임을 알았던 것이에요. 그래서 바디매오는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구원자여! 메시아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자신의 구원자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바디매오에게 있었던 믿음, 두 번째는 ‘버림’이 있었어요.

다 같이 오늘 본문 5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바디매오는 자신의 겉옷을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겉옷’입니다. 당시 시대에 있어서 옷은 한 사람의 정체성 성별, 인종, 사회적 신분 등을 드러내는 것이었어요.

서민들에게 겉옷은 하나밖에 없는 외투이자 이불이었습니다. 바디매오의 신분이 거지이기에 그의 옷은 거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직위가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겉옷이지만 바디매오에게 있어서는 매우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즉, 바디매오에게 있어서 ‘겉옷’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로, 맹인 거지의 정체성, 둘째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 바디매오는 그러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자신을 드러내는 그 ‘겉옷’,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겉옷’ 그것을 버렸다는 것이에요.

세상에 살아가면서 친구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스마트폰, 비싼 명품 옷 등 하나님이 보시기에 보잘것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그것을 버렸습니다. 버린 이유는 앞에 계신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면 신분세탁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이지요. 이전에는 거지의 인생이었고 남들이 손가락질하며 낮은 자라고 생각해왔지만 예수님께 나아가면 눈을 뜨게 되고 눈을 뜨면 지긋지긋한 구걸하며 사는 인생을 버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바디매오는 ‘겉옷’을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각자에게 있는 ‘겉옷.’ 그 겉옷을 버리는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겉옷.’ 좋은 겉옷이든, 좋지 않은 겉옷이든 버리길 소망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겉옷’, 그 옷을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바디매오에게 있었던 믿음, 세 번째는 ‘따름’이었어요.

다 같이 오늘 본문 5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바디매오는 구원을 받은 후 자신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고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이 많았을까요? 그러나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이 아닌, 예수님의 뒤를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는 32절의 말씀을 볼 때 이 바디매오의 ‘따름’의 표현은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예수님의 길을 함께 따라가겠다는 의미에요. 예수님의 최종 목적지는 예루살렘 즉, 십자가, 고난,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자들은 십자가, 죽음,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이지요. 그 길을 바디매오는 따라간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따른다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베드로를 보세요. 예수님께서 최종 목적지에 대해 말했을 때에 베드로는 그 길을 가로막습니다. 예수님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제자들은 도망갔습니다. 그를 따르는 많은 무리도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한 길을, 길가에 앉아 있던 그가 그 길에서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 친구들도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을 따라가는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해요. 주일에 하나님께 나왔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서 죄를 짓고, 욕을 하고, 친구들과 싸우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하셨던 것처럼 우리 친구들에 세상의 친구들을 위해 희생하는 친구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든 초등부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강경우 목사

고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졸업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졸업
(現) 반야월교회 초등부 담당목사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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