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세계는 창조자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늘의 천군 천사도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을 주인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부르는 유일한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지음을 받은 유일한 존재이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지만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아버지’이십니다. 물론 지금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느니라”(딤전 2:4)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죄인들의 아버지가 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와 어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와 무관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거룩한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11:45)

거룩은 히브리어로 ‘카도쉬’로 ‘구별하다. 분리하다. 깨끗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분리되어 있고, 죄와 구별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죄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와 구별되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죗값을 치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메시아요, 구원자인 것을 나의 지, 정, 의를 사용해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긍휼히 보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십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죄인 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회개합니다. 여기서 회개는 내 마음대로 살던 이전의 삶의 방식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으로의 전환을 말합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의 전환,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자녀로 전환하는 결단과 내 안에 하나님의 임재,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물론 물로 세례를 받기 이전이라도 또는 세례 이후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의 문제를 해결 받으면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믿음으로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내 안에 성령님이 임재하셔서 내 믿음에서 예수의 믿음으로 변화됩니다. 삶의 목적과 목표가 수정되어, 나를 위해 살던 삶에서 주님을 위한 삶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일반적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먼저 식(食), 먹어야 삽니다. 다음은 의(衣), 입어야 삽니다. 다음은 주(住), 집이 있어야 삽니다. 이렇게 식, 의, 주가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식, 의, 주를 한마디로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돈이 있어야 먹을 것도 사고, 차에 주유도 하고, 옷도 사 입을 수 있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사람은 ‘돈’이 있어야 삽니다. 우리는 ‘돈’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통제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돈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돈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님 앞에 십일조도 드리고 각종 감사헌금도 드립니다. 왜 드릴까요? 성경에 드리라고 해서!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나는 돈의 노예로 살지 않겠습니다. 제 삶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며 찬송가 634장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이 예물을 주께 드리나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왔음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내 줍니다. 저는 헌금의 모습이 바로 ‘믿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헌금을 드리는 모습을 보면 입으로는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라고 하면서 실제는 돈의 노예로 사는 가짜 믿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입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이 세상에서 ‘돈’의 힘으로 살아갈 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세상을 돈으로만 살아가는 인생 속에는 결코 영적 출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믿음’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교회에 대한 이미지와 평가가 매우 부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앞으로 사람들이 교회를 찾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어떤 이들은 유럽 교회들처럼 쇠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봅니다. 만약 교회의 주인이 사람이라고 하면 무너져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세우신 이는 우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영적인 갈망, 신을 향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 영적인 갈망을 먼저 느낀 사람이 교회를 찾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갈망을 억압하거나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적 갈망을 일깨우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전도요 선교입니다. 아무리 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 시대라 할지라도 ‘사람들 안의 신을 향한 갈망’은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신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그리스도인은 내가 ‘만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살지 못할까요?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니지만 ‘내 믿음, 내 의지, 내 체면’으로 다니면서 ‘예수를 만난 척, 예수의 믿음이 있는 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교회 오는 것이 얼마나 고역이겠습니까?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으니 믿음이 없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니 누구한테 말도 못 하죠. 그런 마음으로 교회에 나온다면 정말 괴로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의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감정과 뜻으로 만들어낸 ‘내 믿음’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은 ‘내 믿음’이 아니라 ‘예수의 믿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의인이 무엇으로 사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

‘하나님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대신 죗값을 치러 주신 것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는 믿음을 강조한 것으로 NIV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라고 번역했고, 이 말씀을 인용한 하박국 2장 4절의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은 ‘그의 믿음으로’(베에무나토)라고 하여 ‘그의’라는 소유 대명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은 ‘εκ πίστεως μου’(나의 믿음으로) 라고 번역하여 믿음의 주체로 화자인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오직 의인은 예수의 믿음으로 산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예수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나는 비록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심으로 내 안에 예수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위대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의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이 나를 살리고, 그 믿음이 나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 믿음’과 ‘예수의 믿음’ 사이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신을 인식하는 것과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고, 우리의 믿음은 자신의 믿음에서 시작해서 예수의 믿음으로(Faith of Jesus) 변화 받는 것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믿음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이란 존재의 한계를 깨닫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말하는 것이요,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이 우주 가운데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로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앞에 옳다 함을 얻은 것은 최고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드 코로나 시대 무엇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무엇으로 승리하길 원하십니까? “오직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장승권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B.A)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
장신대 선교대학원(Th.M)
장신대 일반대학원(Ph.D) 수료
Drew University (D.Min) 과정
(現) 청주서남교회 위임목사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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