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장 35-41절

“…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

며칠 전 장로님 한 분이 아침에 구운 초란을 주셨습니다. 오후에는 권사님 한 분이 귤을 한 상자를 주셨습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권사님 한 분이 떡을 주셨습니다. 감사히 잘 받아서 교역자들 그리고 직원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목요일과 금요일 저는 달걀과 귤, 떡을 먹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고 나눌 줄 아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감사히 받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받되 잘 받아야 합니다. 잘 받는다는 것은 감사함으로 은혜로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독생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거저 받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받는 것’에서 출발하여 믿음의 끝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받았습니다.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받을 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의 영이 나와 함께 하는 ‘예수님과의 동행의 삶’을 말합니다. 지금 내 안에 예수의 영이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은 교회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예수의 영이 임재한 사람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 1:21)

이 말씀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입니다. 아니, 내가 죽었는데 어떻게 예수가 삽니까? ‘나는 죽고’라는 말은 육신적으로 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이 예수의 영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내 인생의 주인이 나였다면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면 “나는 살고, 예수는 죽고”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살고’라는 뜻입니다. ‘나는 내 안에 임재하신 예수님께 순종하며 산다’ 뜻입니다. 이것을 ‘믿음의 삶’이라고 합니다. 내 안에 예수의 영이 동행하고 있다면 어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의 모습은 ‘불순종’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내 안에 예수의 영이 동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체’하는 가짜 믿음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아니 주님 어찌 그런 서운한 말씀을 하고 그러세요? 우리가 믿음이 있으니까 주님을 따른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래 봬도 주님의 제자들 아닙니까?” 만일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또 공부를 못하는 친구에게 “너는 왜 그렇게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느냐?”고 말한다면 그 친구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너나 잘해라!”

신앙생활을 형편없이 하는 성도가 다른 성도를 향해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라”고 말한다면 무슨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너나 잘하세요!” 이처럼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다고 나무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너희들의 믿음과 달리 나에게는 참된 믿음이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가지신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의 믿음은 아버지 하나님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믿음은 하나님의 아버지의 온전하신 믿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 4:8)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으뜸은 ‘사랑’입니다. 얼마나 사랑이 충만하신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믿음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유는 믿음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음이시라”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사역으로 피곤함 몸을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광풍이 부는데 주님은 태평하게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아니 예수님이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요! 어부로 잔뼈가 굵은 제자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광풍이라면 예수님도 깰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왜 그렇게 주무셨을까요? 정말 광풍이 일어나 위험해진 것을 모르셨기 때문일까요?

예수님의 모습은 삶에 다가오는 풍랑, 고난에 대한 태도와 반응이 제자들과 같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믿음을 가지신 예수님의 반응과 아직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한 제자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삶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반응입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해도 광풍이 오면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어려움이 오고, 고난이 올수록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며 버텨내야 참믿음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는 코로나19라는 광풍이 불어오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진정 예수의 믿음을 가진 교회라고 한다면 이렇게 무너질 수 있습니까? 제자들은 광풍 앞에서 예수님께 이렇게 원망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막 4:38)

지금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주님! 왜 우리를 돌보지 않느냐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요, 또한 현재의 삶에 믿음으로 반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당신을 믿고 따랐으니 우리를 책임져 주어야 할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주님은 바람을 꾸짖으셨고 바람은 잠잠해 졌습니다. 이제 제자들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상황 종료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너희가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막 4:40)

아니, 광풍을 보고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왜 믿음의 문제가 나옵니까? 제자들이 과연 믿음이 없었습니까? 예수님을 믿었으니 가정과 생업을 버리고 따라나선 것 아닙니까? 제자들은 자신들의 전 생애를 걸고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이 정도면 보통 믿음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제자들처럼 전 생애를 걸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시간 나는 대로 믿고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풍랑이 일어나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갑자기 ‘믿음 타령’을 하고 계십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함께 계셔도 풍랑은 다가옵니다.

지금 배 위에 제자들은 누구와 함께 있습니까? 예수님! 그런데 예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큰 광풍이 일어나 제자들은 생명에 위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늘 좋은 일만 생기고, 늘 형통하고, 늘 행복합니까? 아닙니다.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음에도 고난의 물결이 찾아왔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길에는 감사도, 은혜도 형통도 있지만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그 길에는 고난도 아픔도 슬픔도 함께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삶이란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믿음으로 이기는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어려움과 고난이 없기를 바라는 기도는 성경적 기도가 아닙니다. 성경적 기도는 어떤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믿음으로 이기고 정복하는 삶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둘째, 주님은 어떤 광풍도 잠잠하게 하십니다.

아무리 태산 같은 문제가 닥쳐올지라도 주님 앞에서 그것은 별거 아닙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와 다릅니다. 장난감 가지고 싸우기도 하고, 먹을 것을 가지고 싸우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끙끙거리기도 합니다. 만약 아이가 우유를 마시고 싶은데 우유 팩을 열기 어려우면 엄마한테 가지고 가지면 쉽게 해결됩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별거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삶의 문제들을 주님 앞에 가지고 가는 것,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셨을까요? 그것은 믿음에 대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약 1,000여 명의 랍비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유대인들은 그 랍비들을 매우 사랑하고 존경했고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 유명한 랍비들의 사진은 마치 인기스타처럼 팔리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 랍비 중의 매우 특별한 랍비로 생각하고 믿고 따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람의 몸을 입으신 야훼 하나님으로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경험하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이란 단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 그 자체를 믿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믿음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무엇인지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주님이 원하는 믿음은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있어 이러한 차원의 ‘믿음’은 ‘한 번도 경험하지도 들어 보지도 못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 분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길 원하신다고 말씀하시니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성령을 부어 주시기까지 ‘예수의 믿음’,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나름대로 믿음이 있어서 예수님을 따랐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믿음은 위협적인 환경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언제 필요합니까? 천국 가서는 필요 없습니다. 이 땅 위에서 필요하고, 삶 속에서 필요합니다. 믿음은 장식용이 아닙니다. 믿음은 허풍이나 자만이 아닙니다. 주님은 아직 제자들이 온전한 예수님의 믿음을 가지지 못했음을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우리의 믿음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하는 자만심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삶의 고난 앞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어디에서 형성될까요? 인생 체험, 사회적 지식?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은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전해집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원하시는 구원에 이르는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계시는 중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에게는 주님의 믿음이 전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거센 물살을 거슬러 힘차게 올라가는 연어처럼 오늘 그리스도인은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신의 시대에 예수의 믿음으로 세상과 당당히 맞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 함께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장승권 목사. 청주서남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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