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장 14-20절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 문화는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겸양(謙讓)의 문화가 있습니다. 겸양이란 겸손한 태도로 사양하는 문화입니다. 한두 번은 사양해야지 양반이라고 생각하고, 넙죽 받으면 가볍거나 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싫어도 타인을 배려하느라 싫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양문화에서 상대방의 진심을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겸양 문화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억압하며 낮추는 것을 미덕이라고 강요합니다. 겸양 문화에서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매우 인색합니다. 만약 자신의 믿음이 좋다고 말하면 ‘교만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삶에 어려움이 생기면 “아직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생긴 고난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겸손하고 깊은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겸양 문화는 사람들 앞에서 겉과 속을 비추지 않는 것이 예의이겠지만 진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감추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따로 해발 588미터의 다볼산에 오르셨습니다. 이 산에서 예수님의 그 용모가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변화산이라고도 합니다.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막 9:9). 물론 제자들은 그 의미를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 제자들에게 왔더니 큰 무리가 둘러싸고 서기관들과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막 9:14).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문안했고, 예수님은 어떤 문제로 논쟁을 하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주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말합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마 17:15-16)

한 아버지가 귀신 들린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지만, 쫓아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마 17:17) 주님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하실 수 없으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을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셨고, 예수님 앞에 오자 귀신은 아이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아이는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렸습니다. 주님은 아이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으셨고 “어릴 때부터인데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아비는 주님을 향해서 하실 수 있거든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요청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예수님의 대답에 아이의 아버지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막 9:24) 그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고, 예수님이라면 아들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 자신의 믿음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부족한 믿음을 도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만났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도 아니요, 예수님으로부터 능력과 역사가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왜 예수님은 병자나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항상 이적과 능력을 곧바로 베풀어주지 않으실까요? 왜 꼭 이렇게 ‘믿음’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믿음’을 통해서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청주시민이 대청호의 물을 사용하고, 먹기 위해서는 상수도와 가정의 급수관이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이라는 관을 통해서 우리에게 쏟아지는 것입니다. 가정의 수도꼭지를 순금으로 만들어 놓은들 급수관과 연결이 되어 있지 아니하면 그 수도를 통해서는 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외모가 아무리 멋지고, 배운 지식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 할지라도 믿음의 관이 믿음의 근원 되신 예수님께 연결이 되어야 풍성한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더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향해 꾸짖으셨습니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가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아이에게 들어간 귀신은 듣지 못하게 하고, 말을 못 하게 하는 귀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명하시자 귀신은 떠나갔고, 아이는 죽은 것처럼 쓰러졌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죽었다”라고 하였으나 예수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곧 일어섰습니다. 이제 무리는 돌아갔고, 그 광경을 본 제자들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마 17:19)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마17:20a)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막 9:29) 마태는 마귀를 내쫓는 것이 ‘믿음’과 관련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고, 마가는 ‘기도’와 관련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믿음’과 ‘기도’는 동의어입니다. 마가복음이 마태복음보다 먼저 기록되었기 때문에, 마태가 마가복음을 참고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태는 믿음 없는 기도는 아무런 능력이 나타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가 무엇입니까? 예수의 믿음과 상관없는 기도는 상수도관을 물의 근원이 아닌 산에다 대어 놓고 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귀신을 향해 아이에게서 나가라고 기도도 하고 호통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자들의 믿음이 예수님과 접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도 아시지만, 동시에 귀신도 알아봅니다. “이래 봬도 내가 그래도 예수님의 제자인데!”라고 아무리 말해봐도, 믿음 없는 ‘직함’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의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제자들 앞에 마귀는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물러갔습니다. “네 안에 예수 없다. 네 믿음 가짜다! 믿는 척만 하는구나!”

성경에는 믿음이 부족하다거나 약하다는 표현보다 ‘믿거나 믿지 않거나로’라고 표현합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제사장 사가랴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요한으로 지으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아내도 나이가 많아서 믿지 않았습니다. 반면,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됨’을 고지했을 때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눅 1:38)라고 대답했습니다. 나이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나 남자를 알지 못한 여인이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다 맞는 말입니다. 이렇게 지, 정, 의를 동원해야만 믿어지는 믿음을 ‘내 믿음’이라고 합니다. ‘내 믿음’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믿음을 ‘작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성과 합리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큰 믿음’ 곧 ‘예수의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결국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벌로 세례요한이 출생하기까지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믿음 없이 제사장 노릇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고보 사도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

마귀는 우리의 겉모습으로 도망하지 않습니다. 믿음이라고 다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사탄의 믿음도 있고, 자기 자신의 믿음도 있고, 예수의 믿음도 있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을 알고 믿고(Not faith but believe), 하나님 앞에서는 벌벌 떨게 됩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믿음이 작다고 말씀하셨습니다.

“you have so little faith” (Ma 17:20) – NIV
“You have such little trust” (Ma 17:20) – CJB

NIV는 ‘Faith’라고 번역했는데 크리스천 유대인 성경(CJB)은 ‘Trust’라고 번역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는 제자들의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 작은 믿음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니, 겨자씨 한 알이 얼마나 작습니까? 씨앗 중에서도 가장 작은 씨앗이 겨자씨 아닙니까?

여러분의 믿음은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이 됩니까? 아니면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보다 작습니까? 아니면 겨자씨 한 알보다는 조금 더 큰 믿음입니까? 제자들의 믿음이 ‘작은 믿음’이라고 했으면 그 믿음은 ‘겨자씨 정도의 믿음’이라고 해야 앞뒤가 자연스러운데 ‘작은 믿음’이라고 하시고 겨자씨 한 알만의 믿음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모순 아닙니까?

결국 주님이 말씀하시는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이란 그 믿음이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믿음이 ‘진짜 믿음인가, 가짜 믿음인가’를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가짜 믿음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믿음과는 상관없는 ‘내 믿음’이었기에 작은 믿음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은 ‘진짜 믿음’을 비유한 것이요, 곧 예수의 믿음(Faith of Jesus)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17:20)

성도 여러분!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정말 거대한 산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내 믿음’이 태산같이 있어도 ‘예수님의 믿음’이 없으면 겨자씨 하나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예수의 믿음으로는 별것 아닙니다. 내 믿음의 능력은 별거 아니지만 ‘예수의 믿음’이 내 안에 들어오면 그 믿음은 산을 움직이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예전에 뉴스에서 금은방에 강도가 든 사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강도가 금은방에 들어와 순식간에 유리를 깨고 금을 다 쓸어갔습니다. 그 가게에는 진짜 금도 있었고 가짜 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도가 가져간 것은 모두 도금한 가짜 금이었습니다. 크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짜냐? 가짜냐?’입니다. 아무리 큰 다이아몬드가 있다 할지라도 가짜는 가치가 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믿음처럼 보일지라도 ‘내 믿음’은 귀신 앞에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믿음’ 앞에 귀신은 물러가게 됩니다. 할렐루야! 만약 이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이 찬양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마귀는 쫓긴다! 예수 믿음으로 예수 믿음으로 승리를 얻었네! 예수 믿음으로 예수 믿음으로 마귀는 쫓긴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이 세대를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진단하셨습니다. 그 세대 가운데 오직 ‘예수의 믿음’(Faith of Jesus)을 가진 사람만이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귀신이 우습게 여기는 제자들의 믿음, 곧 작은 믿음입니까? 아니면 귀신이 물러가는 예수의 믿음, 곧 큰 믿음입니까? 예수님의 믿음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장승권 목사. 청주서남교회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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