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장 35-41절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현시대는 사사 시대와 비슷하단 생각이 듭니다. 구약의 사사 시대를 한 마디로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 나라로부터 압제와 고통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주변 나라들의 힘이 너무 강해서도 아니고, 이스라엘에 변변한 지도자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를 사사기 21장 25절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그랬다.” 여기서 왕이 없었다는 말은, 다윗 같은 왕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작부터 끝까지의 왕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모시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계셨지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은 세대가 비극의 사사 시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란 왕이 계셨음에도 다른 왕을 찾고 있습니다. 왕 되신 하나님을 왕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교회의 문제에서도 보입니다. 사사기 21장 25절을 오늘날 시대로 옮겨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그때에 한국 교회에 예수가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때에 한국 강단에 예수가 없음으로 목사가 소견에 옳은 대로 설교하였더라.”
“그때에 한국 교회 교실에 예수가 없음으로 교사가 자기 생각대로 가르쳤더라.”
“그때에 목장마다 예수가 없음으로 목자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목양하였더라.”

한국 교회가 100년을 넘어가면서 모두 경험도 있고, 재능도 있고, 기술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예수님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사라졌습니다. 목회를 10년, 20년 해서 교회 돌아가는 것도 잘 알고, 성경도 잘 해석하는데 설교에 예수가 없고, 교사 20년 하면서 공과공부 준비 안 해도 그 자리에 책을 펴 한 시간 동안 문제없이 가르칠 수 있는 기술이 생겼는데 예수가 없습니다. 장사 30년 하고 나니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는데 그 비즈니스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십니다. 경험도 있고, 노하우도 있고, 재능도 있고, 기술도 있는데 예수님이 없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사 시대가 하나님이 왕으로 계신데도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자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가 블레셋에, 미디안에 압제를 받았던 것처럼, 오늘 성도들의 삶에 예수님이 계심에도 예수님을 왕으로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아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21세기 사사 시대가 되어 블레셋의 회초리에 맞고, 미디안의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풍랑을 만났습니다. 코로나를 만났고, 코로나가 만들어낸 풍랑에 매일매일 힘들어합니다. 교회를 향한 따가운 시선과 우려와 원망의 파도를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잠재울 수 없습니다. 풍랑을 만난 한국 교회가 어떻게 이 풍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이 본문 속에서 한국 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열쇠가 들어있다고 봅니다.

열두 제자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늘 있던 일이라, 제자들은 놀라지 않습니다. 갈릴리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으로 인해 호수에는 기후 변화로 늘 파도가 있어왔습니다. 그냥 불다가 사라지는 미풍 정도로 생각하고, 한가롭게 배를 저어 호수 저편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멈출 줄 알았던 바람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파도가 배 안까지 밀고 들어와 배가 부서지고 가라앉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물을 퍼내기에 급급했습니다. 더구나 본문을 보니 그저 물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배를 때리고 물이 들어온다고 나와 있습니다. 물이 넘치고, 배도 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배는 가라앉고 팔의 힘은 떨어집니다. 물을 퍼내지만 도무지 몰아치는 풍랑과 물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배가 다 부서질 위기인데, 그 배를 지킬 힘이 없고, 그 풍랑을 잠재울 능력은 더더욱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 이 배를 닮았습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 풍랑을 만났습니다. 이 나라에 불어온 코로나19라고 하는 바람이 교회를 향한 냉소라는 파도를 일으켜 교회를 때리고 있습니다. 37절이 오늘 이 상황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막 4:37)

큰 광풍이 일어나서 배 밖을 때린 것이 아니라, 이제는 배 안으로 들어와서 배 안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배가 깨지고 그 안에 물이 가득하게 들어온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 밖에서의 문제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 이제는 교회 성도들 간에도 원망과 손가락질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있습니다. 배 밖의 파도가 배 안으로 밀고 들어온 격입니다.

여러분 이 배는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요? 이 배는 무사히 그 밤을 지나고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있을까요? 한국 교회는 무사히 이 파도를 넘어 코로나의 바람을 지나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요? 정답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살아날 수 있습니다. 호수 건너편 목적지까지 반드시 갈 수 있습니다.”

본문에 해답이 있습니다. 풍랑을 만나 죽을 위기에 놓인 제자들의 눈에 문득 들어오는 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풍랑과 싸울 때는 생각도 못 했던 분, 기억도 못 했던 분, 평안히 노를 젓고 호수를 건너갈 때는 있는 줄도 몰랐던 그분이 갑자기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급히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는 것, 바로 이것만이 그 배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는 것, 이것이 한국
교회가 살아나는 길입니다. 풍랑을 원망하고 풍랑과 싸울 때가 아니라, 예수님을 찾을 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는 것보다 더 이상적인 것은, 주무시는 예수님만 보고도 안심하는 것입니다. 풍랑이 대단해 보여도 예수님이 주무시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면 이상적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호수를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으니까 건너편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이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이 상황은 마음의 평안만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이 들어와 배가 침몰하는 관념적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문제입니다. 밀려들어오는 파도가 내 마음이 평안하다고 넘어오지 않거나 배가 깨지는데도, 평안하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평안은 주님을 생각하면 없어져도 현실적인 문제는 실제적 문제입니다. 제자들은 이 실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의 파도가 잠잠해져도 진짜 파도가 잠잠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의 해결 방법은 예수님을 깨우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이 깨어나셔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바다의 일렁이는 파도는 예수님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세차게 깨웠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풍랑을 만났는데 이 문제를 한국 교회 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풍랑을 만난 한국 교회가 제자들의 배와 흡사해 보입니다. 한국 교회 안에 예수님이 주무시는 것 같습니다. 왜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실까요? 왜 예수님이 역사하지 않으실까요?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재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교회 안에서 하실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없이도 얼마든지 교회가 잘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굳이 예수님이 도와주지 않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마치 초저녁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제자들은 30년간이나 어부로 잔뼈가 굵었습니다. 그들의 경력과 노하우와 재능이 예수님을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자기들의 고기잡이배 운전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호수 하나 정도 건너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교회가 처음에는 예수님 없이는 설 수 없는 나라, 예수님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교회, 예수님 없이는 설교할 수 없는 목사, 예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성도들이었는데 한국 교회 역사가 100년이 넘어가다 보니 이제는 전문가들이 생기고, 교회를 너무 잘 알게 되고, 선교의 역사도 50년이 넘어가다 보니 노하우도 생기고,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예수님이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예수님 없이도 잘 돌아가는 교회들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재정이 있어 사역하기 힘든 것이 없고, 사역자들이 넘쳐서 예수님 없이도 계획한 일은 계획한 것보다도 더 잘 되었고, 성도들의 충성심이 높아 예수님의 능력을 빌리지 않고도 모든 일들이 척척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절에는 일주일씩 철야하면서 예수님의 능력을 구하면서 기도하고 일을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교회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교회 와서 기도하면서 예수님, 날 불쌍히 여겨달라고 눈물로 밤을 새우면서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전문가나 힘 있는 분을 찾아 도움을 구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점점 예수님이 하실 일이 없자 예수님이 배 안에서 잠이 드셨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찾지 않자 예수님이 잠이 드셨습니다. 더 큰 문제는 예수님이 배 안에 계시다는 사실도, 잠들어 계신다는 사실도 모두 깜박하고 잊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은 풍랑을 만나기 전까지는 힘써서 예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게 인간의 심리입니다. 평안한 호수 위에서는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풍랑이 일고, 자기 힘으로 안 될 때, 그때 비로소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자 잠자고 계신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도와달라고 애원합니다. 제자들의 모습이 한심하고 어리석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제자들이 가장 잘 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국 교회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을 흔들어 깨워 예수님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우리나라를 살려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습니까? 하고 예수님께 살길을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 우리 교회들이 죽게 되었으니 교회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살려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이 한국 교회 안에서 다시 일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는 일입니다. 예수님 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시도록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 그 왕의 보좌에 예수님이 다시 앉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통치하셔야 합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천국을 가니 예수님께서 문 앞에까지 달려오셔서 맞아주시더랍니다. 또 어떤 장로님이 천국을 가니 예수님께서 마당에 내려오셔서 반갑게 맞아주시더랍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이 천국을 가니 예수님이 앉아서 왔냐고 맞아주시더랍니다. 목사님이 서운해서 “왜 집사는 문 앞에까지 나오셔서 맞아주시면서 저는 앉아서 맞아주십니까?”하니,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목사는 내가 일어나면 자꾸 내 자리에 앉아서 일어날 수가 없다.”

어느 때부터 회사의 사장은 사장의 자리에 자기가 앉고, 집의 가장은 가장의 자리에 앉고, 목사는 교회의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모두 모두 예수님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 교회를, 여러분의 가정을, 이 나라와 이 민족을 통치하시고 다스려야 합니다. 교회에는 보좌에서 목사가 내려오고 그 자리에 예수님이 앉으시면 그 배는 호수 건너편까지 무사히 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보좌에서 내려오고 예수님이 앉으시면 그 가정은 무사할 것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예수님이 사장의 앉으시면 무사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그것 외에는 여러분의 가정이, 회사가, 사업 터가, 교회가 살아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고, 우리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배에서 떠나시는 경우는 절대로 없어서, “내 너를 버리지도,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믿고 있습니다. 약속 때문에 택한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굳건합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영접한 예수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 줄 아세요?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배에 들어오시고 그 배를 떠나신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예수님이 잠들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성도와 교회에 예수님이 계시지만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잠들어 계신 줄도 모르고, 예수님이 계시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힘으로 호수를 자기들의 오랜 어부의 경험을 의지해서 건너가는 모습이 한국 교회의 모습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업을 시작하고도 개업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준 액자도 걸어놓았으면서, 몇 개월 지나면 액자는 그대로이지만 예수님을 보좌에서 내려오게 하고 자기가 그 보좌에 앉아서 사업을 통치하고 다스립니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쓰러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견이 조금도 반영이 되지 않습니다.

무거워 쓰러질 때에 방법은 하나입니다. 나를 구원해 줄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사업 터에 예수님이 주무시면 안 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을 사업터의 보좌에 앉혀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무시게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계신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혹시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신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깨워야 합니다. 살려달라고 매달려야 합니다.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가정이든, 기업이든, 교회이든,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배 안에서 귀퉁이에서 고물을 베고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께 “예수님 왜 여기 계십니까, 가장 높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하고 예수님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깨어나시면 어떻게 됩니까? 39절입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막 4:39) 예수님이 깨어나시면 문제가 해결되는 줄 믿습니다. 문제는 큰 풍랑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작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은 골리앗이 크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믿음이 작다고 하십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믿음은 온 이스라엘보다 컸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크기로 싸우십니다. 오늘 예수님이 잠들어계시는 분은 예수님을 깨우고 절대적인 믿음을 회복하시길 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 생각하시며 울었던 순간이 언제이십니까? 예수님만 생각해도 눈물이 흐르고, 찬양 한 구절만 불러도 마음이 뭉클했다면 예수님이 깨어나셨다는 신호입니다. 예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면 완벽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일하시면 문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일으킨 문제의 근원도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41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면, 파도가 잠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바다가 순종하고 잠잠해졌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파도는 현상이고, 바람은 파도를 일으킨 원인입니다. 만약 파도만 잠재우시고 바람을 놔두셨다면 그 바람이 또다시 파도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그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현상만 고치시지 않고 근원도 고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파도만 잠잠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다시는 파도가 일지 않도록 원인이 되는 바람도 잠재우신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깨어 예수님께 기도해,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하게 하는 것까지만 하면 소용없습니다. 풍랑을 일으키는 바람이 멈추지 않으면 지금 잔잔해진 풍랑은 내일 또 배를 때릴 것입니다. 풍랑을 만든 바람이 사탄 마귀, 정사와 권세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리쳐야 하고, 이 풍랑을 일으킨 바람이 성도들의 죄 때문이라면 풍랑이 아니라 그 풍랑을 일으킨 죄의 바람을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파도가 아니라, 바람이 잠잠해지면, 풍랑 문제도 바람 문제도 사라질 것입니다. 41절에 제자들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막 4:41)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몰랐던 것입니다. 38절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풍랑 앞에서 선생님은 힘이 없습니다. 풍랑 앞에서는 창조주 되신 예수님을 깨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만큼 예수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잠들어계신 예수님이 깨어나실 때에 한국 교회에 엄청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제자들의 믿음도 잠자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잠자던 제자들의 믿음도 깨어나고, 예수님도 깨어있는 배여야 누구도 부술 수 없습니다. 잠자고 있는 성도여, 우리부터 깨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감수성이 메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찬송 한 구절만 불러도 뭉클해지는 영적 감수성이 메마르지 않아야 예수님이 잠들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깨어 지키는 기업, 가정, 교회는 누구도 넘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어나고 깨어나신 예수님이 교회와 각 가정을 다스리시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최병락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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