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장 25-33절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읽어드립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안에 태풍 몇 게
저안에 천둥 몇 개
저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안에 땡볕 한 달
저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 한 알이 둥글고 붉게 익는 것은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 과정에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대추 한 알이 둥글고 붉게 익기까지의 시간을 규정한다면 ‘견딤과 기다림’의 시간이라 할 것입니다. 시인은 대추 한 알에서 인생을 보고 있습니다. 인생이 익어가는 데에도 ‘견딤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본문에는 우리보다 2천여 년을 먼저 사신 ‘시므온’이 등장합니다. 시므온의 ‘이때’는 어떤 때였을까요? 그의 ‘이때’ 역시 견딤과 기다림의 때였습니다.

첫째로 그는 많은 것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당시는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로마는 단지 강하다는 이유 하나로 주변 나라들을 사정없이 점령했고, 포로들을 노예로 삼고, 수탈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의 신음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올바름, 정의, 사랑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로마와 손잡은 권력자들은 동족을 팔아 치부하고 권력을 즐길 뿐이었습니다. 이사야 5장의 말씀이 당시에도 유효했습니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사 5:8)

또 시므온이 부유했는지, 건강했는지, 가족들은 마음이 따뜻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 없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고 보면, 시므온 역시 개인적 어려움도 많았을 것입니다.

종교적으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희망은 종교에 있었지만, 당시의 유대 종교는 진리도, 생명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성전 종교는 로마 못지않은 폭력적 강자로 군림했고, 지도자들은 진리를 왜곡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부패를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신 마태복음 23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보다 금을 소중히 여겼고, 금을 위해서는 하나님도 버릴 자들이었습니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 23:16-17)

그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신앙인처럼 보였지만, 정작 심령은 시체로 가득한 무덤과 같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7)

시므온은 이런 자들이 판치는 시대를 살아야 했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므온도 나름대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닐것입니다.

우선 그는 예루살렘을 향한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본문 25절은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이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루살렘은 모든 것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마도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비과세 혜택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은 종교의 중심지로서 순례자들이 몰려들었고, 웅장한 성전과 거룩한 에봇을 입은 대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타지방 사람들은 예루살렘 주민들을 얼마나 부러워했겠습니까?

시므온도 그런 예루살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 토박이였는지, 다른 곳에서 이주해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만약 그가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것이라면, 이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주거지를 얻는데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이고, 생계 대책이 없이는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힘들어도 ‘성전과 대제사장님들이 계시는 곳이니,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루살렘은 거룩하기는커녕 악행과 폭력이 가득한 당시의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실망도 컸을 것이고,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 시므온이 본래부터 예루살렘 주민이었다 해도 실망은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는 자부심과 예루살렘이야말로 거룩한 도시라고 배웠던 모든 것이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이 났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시므온은 남들과 다르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25절은 그를 “의롭고 경건하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말씀대로 살고자 힘썼습니다. 남들이 거짓을 일삼을 때, 진실하려고 힘썼을 것입니다. 남들이 세상의 쾌락을 추구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남들이 더러운 이익을 탐하며 권력 주변에 불나방처럼 모여들 때, 깊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남들이 인간적 편법과 수단을 동원할 때, 하나님의 의로운 개입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더 악해졌고, 로마는 더 잔인해졌으며, 사람들은 망가져 갔습니다. 그 상황에서 시므온이 할 수 있는 것은 ‘견디는 것’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진 시대입니다. 이익 앞에서 우정이 죽어갑니다. 노인을 존경하는 마음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정치는 최소한의 양심과 도리도 상실한 채 권력을 위한 협잡의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충의지사들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념과 이해의 갈등으로 국민들은 이중 삼중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북한의 폭력 정권이 언제 막을 내릴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신문 보기가 두렵습니다. 카톡 메시지나 메일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두렵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도 무거운 짐들이 많습니다. 가난과 질병과 관계의 갈등 등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자신의 못남과 연약함을 마음 아파합니다.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의 현실을 슬퍼합니다. 인간의 악함을 탄식합니다. 시므온과 우리는 2천여 년의 시간을 격하고 있으나, 마치 동시대를 사는 것처럼 삶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잘해 보려고 애를 쓰기도 하고, 캠페인도 하고, 세상을 밝혀 보려고 수고합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고, 낙심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 역시 견디는 것뿐입니다. 부디 우리가 잘 견디길 원합니다. 상황을 바꾸는 것만이 성도의 승리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잘 견디는 것도 승리입니다.

둘째로 시므온이 한 일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기다렸나요? 25절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사람의 위로’가 아닌,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자신의 노력이나 몇몇 뛰어난 인재들의 노력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희망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시므온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님의 위로뿐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노력이 실패할 때 하나님께서는 시작하십니다. 세상과 사람에게 실망할 때, 우리가 붙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2021년을 맞이하면서 저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집니다. 우리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도 세우시고, 은혜도 주셔서 교회를 부흥케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대한민국의 정치, 군사, 사회, 문화, 경제에 개입하실 것입니다. 북한 문제도 총칼이나 외교를 동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만의 방법으로 개입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기다리길 원합니다. 비록 우리 눈으로 결실을 보지 못한다 해도 끝까지 기다립시다. 비록 결실에 이르지 못해도 기다리며 버틴 하루하루도 아름답고 귀합니다. 어려워도 계속 가정을 돌보고, 계속 일터에 출근하고, 되는게 없어도 계속 눈물로 씨를 뿌립시다. 2021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잘 견디고, 끝까지 기다리는 것, 이것이 2021년을 살아가는 성도의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힘으로 참고, 무슨 힘으로 기다릴 수 있을까요? 25절 끝부분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힘 있게 결정적인 말씀을 전해 줍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할렐루야!

셋째로 그는 성령의 힘으로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시므온의 현실은 너무도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보세요. 그에게는 한 줄기 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령님의 임재였습니다. 시므온의 상황은 어두웠지만, 내면은 성령님으로 인해 밝았습니다. 세상엔 희망이 없었지만, 시므온의 마음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희망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앞당겨 맛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미래에만 주어질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맛보는 현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현재는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장차 임하실 분이 아니라, 이미 그의 현재에 임하여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시므온의 현재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과 함께 하는 감사의 대상이었습니다.

한 범죄심리학자는 죄수와 수도사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해서 말했습니다. 공통점은 좁은 공간 안에서만 산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형무소의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불평을 말하는 반면, 수도사는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힘들고 어렵지만, 감사로 견디길 원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위로가 다가올 축복의 미래를 기다리길 원합니다. 시므온과 함께 하시던 성령님은 오늘 우리와도 함께 계십니다.

그렇게 사노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시므온에게 견딜 힘과 기다릴 수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26절을 보면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계시도 주셔서 낙심치 않고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또 27절에서 보시는 것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견디며 기다리던 어느 날 성령님의 감동으로 성전에 가보니, 거기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께서 계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은 그가 그렇게 기다리던 하나님의 위로를 가져오신 분이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 하신 약속대로 시므온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뵙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날 시므온은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28절 이하를 보십시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 2:28)

성도 여러분, 성령님 안에서 오늘 우리는 견디며 기다리는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믿음으로 감사하고, 위로받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위로의 날을 기다립시다. 그렇게 2021년을 묵묵히 살아갑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위로를 맛보게 되길 기원합니다.

김운성 목사

(現) 영락교회 담임목사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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