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3장 1-5절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세상의 중력을 역류하는 사람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가장 처음에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 사역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였고,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뼈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힘 있게 사는 데 있습니다. 너무도 거칠고 때로는 너무도 유혹적인 이 세상의 중력을 역류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은 이 땅의 질서를 하늘의 질서로 재조정하는 것이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에 대해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주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만 하나님이 쓰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서가 바뀐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손에 다듬어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도록 다듬어진 사람을 하나님이 쓰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떻게 다듬어진 사람을 쓰실까요?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오늘 스가랴의 네 번째 환상, 더러워진 의복을 하나님 나라의 깨끗한 예복으로 갈아입히시는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더러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 여호수아

스가랴 선지서에는 총 8가지 환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네 번째 환상을 다룹니다. 처음 1, 2, 3 환상은 공동체 전체를 위한 말씀, 외부적인 것, 물리적인 회복에 대한 말씀이라면, 제4환상과 제5환상은 공동체를 위하여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 공동체를 위하여 준비된 지도자에 대한 환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4환상은 종교 지도자인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얘기이고, 그 다음 제5환상은 정치 지도자인 총독 스룹바벨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수아’가 등장하는데,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여리고 성을 공략한 그 여호수아가 아닙니다. 이 여호수아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스가랴 시대의 대표적인 대제사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할아버지 스라야는 대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포로생활을 하다가 죽었고, 여호수아의 아버지 여호사닥은 바벨론 지역에서 대제사장을 했는데, 여호수아가 이방 땅에서 태어나서 포로 귀환 시에 아버지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마치 ‘천상 법정’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그 법정에 여호수아, 여호와의 천사, 사탄, 스가랴, 이렇게 네 인물이 등장하지요. 사탄이 여호수아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참소하고 고소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3절에 보니 아주 안타까운 상황, 아주 가슴 아픈 사연이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었다”라고 할 때, “더러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배설물을 뒤집어쓴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대제사장 여호수아 옷에 오물, 배설물이 잔뜩 묻어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대제사장 예복이 얼마나 아름답고, 품위가 있고, 고결한지 잘 아실 겁니다. 그걸 입고 서 있어야 할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 마치 오물과 배설물을 다 뒤집어쓴 것 같은 냄새 나는 옷을 입고 서 있으니 기가 찬 겁니다. 그 틈을 노려 사탄이 말합니다. “하나님, 보시라고요. 이 사람은 깨끗하고 정결하고 완벽하고 고결한 옷을 입고 서 있어야 하는데, 이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형편없는 인간 아닙니까?”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참소하는 내용을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그를 극악무도한 자처럼 몰아넣었습니다. 사탄은 이런 데 전문이 아닙니까? 사탄은 하늘 법정에서 여호수아의 속과 겉을 탈탈 터는 것입니다. “하나님 처럼 선한 분이 이 더럽고 악한 여호수아와 함께하면 되겠습니까? 여호수아를 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러운 오물 같은 걸 뒤집어쓰고 있는 여호수아, 쫓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참소하며 여호수아를 막 몰아넣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있을 수 있지요. 뭘 좀 해보려고 하는데 오물을 뒤집어쓴 것 같고 피투성이가 된 것 같은 상황, 소망이 다 끊어진 것 같은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인생

대제사장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주눅들 수 있는 상황인데, 이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을까요? 이것이 오늘 제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2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사탄을 책망하노라”, “너는 악한 거짓 고발자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신비하지요. 반전이 있습니다. “사탄아 나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하나님께서 직격탄을 날리시는 겁니다. “내 백성이기 때문에 내 백성의 말을 듣지, 나는 네 말 듣지 않는다. 내가 너를 책망하노라.”

사탄은 계속해서 “그 부정한 땅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여기 와서 헤매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이 여호수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거룩한 처소에 감히 서 있을 자격도 없는데, 하나님 앞에 서 있다니 가당키나 합니까?” 이런 식으로 참소를 하는데,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사탄아 내가 너를 책망하노라.” 그렇게 하면서 그 다음에 놀라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오늘 이게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책망하시면서 “여호수아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새번역은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 토막”이라고 표현하고,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불에서 끄집어낸 타다남은 나무 막대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을 책망하는 이유가 바로 여호수아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볼 때는 ‘그래서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는 불 시험을 통과하고도 그가 살아남았다는 뜻입니다. 그와 더불어 “불에서 꺼냈으니까 더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화기 가운데, 연기 가운데, 잿더미 가운데서 색이 검게 변하고, 불로 인해서 냄새도 날 수밖에 없고, 어떻게 보면 초라한 몰골,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는 그 여호수아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반전은 무엇입니까? 그 불같은 시험 가운데서도 통과되고 살아남았다는 점입니다. 사탄이 볼 때, 이런 오염되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아무 자격 없는 여호수아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니까 소중한 것이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다 뜨거운 불, 큰 화재 속에서 살아남은 것 같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인생일 수 있습니다. 심한 화상에서도 살아남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를 돌이켜보세요. “그래, 우리의 지난 시간 가운데서 마치 불 시험 같은 걸 통과할 때가 있었던 것이야.” 마치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이, 속이 시꺼멓게 탔다는 거예요. 우리 아내들 그러잖아요. “내 속, 남편도 몰라. 내 속 아무도 몰라. 내 속이 숯처럼 시커멓게 탔어.” 그런데 인간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는 말은 연기, 화재, 재, 오염, 온도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로 살아남게 해주신 것을 찬양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 개인도 그렇지만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도 19세기, 20세기 초반,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였지요. 일제강점기의 참혹한 시간, 한국전쟁에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아픔을 겪으며 불에서 꺼낸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의 은혜를 주시고 불에서 통과한 그 모든 시련을 이긴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 앞에 우리가 부복(俯伏)할 때 이만한 부흥과 번영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았습니다. 출애굽 하기 전에 고센 땅에서 고생하고 노예살이 하던 때, 바벨론에서 시험당하고 포로생활하며 고통당할 때,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을 때에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 3장을 해석할 때 한 번씩 인용되는 예가 하나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John Wesley)에 관한 내용인데요, 요한 웨슬레는 영국의 명예혁명, 거룩한 운동을 통해 전 세계 선교 운동의 놀라운 자원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이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수만 번의 설교를 하는 등 지대한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그가 6살 때 집에 대화재가 났다고 합니다. 다른 가족들은 불을 피해 다 나왔는데, 요한 웨슬레는 불이 난 줄도 모르고 2층에 있다가 창문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지붕이 거의 내려앉아 곧 떨어질 상황에서 다행히 구출되었는데, 어린 웨슬레가 구출되자마자 지붕이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자신을 소개할 때 스가랴 3장 2절의 이 말씀을 인용해서 “나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입니다”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요한 웨슬레를 통하여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를 하나님이 붙잡으시고 정결하게 하실 때 그야말로 정결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종,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멸시 받는 자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더러운 자에게 정결의 관을 씌우시는 은혜

사탄은 나름대로 자기 논리를 가지고 여호수아를 닦달하고 참소하며 고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여호수아를 보시고 사탄을 책망하시며 그를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하시고, 불 시험을 통과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십니다. 4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이 세 가지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서로 잘 짜인 틀과 같이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첫 번째, “더러운 옷을 벗겨버리라.” 두 번째,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해버렸다.” 세 번째, “너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참소당하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대반전의 역사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무엇입니까? 여기에 여호수아가 한 일이 있습니까? 여호수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주도권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죄악을 제거하신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더러운 옷을 벗기신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을 믿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주도권을 가지고 내가 뭘 해보겠다고 그러지만, 이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온 성도들의 더러운 옷을 벗겨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일거에 우리의 죄악을 제거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름답고 정결한 옷을 입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더럽혀진 사람, 부정한 사람이 어떻게 남의 죄악을 속죄하는 제사장이 될 수 있겠는가”라며 계속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시고, 관전자 입장에서 이 상황을 보는 스가랴가 감동을 받아 “하나님,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예복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관을 씌워주십시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정결한 관을 머리에 씌우고 아름다운 옷을 입혔습니다. 5절입니다.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두 가지입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은 오염되고 부족한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제사장의 예복을 입히시고 머리에 정결의 관을 씌워주셔서, 소위 의관을 정제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혔다’는 것은 ‘우리의 품위를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이고, ‘정결의 관을 씌우신다’는 것은 ‘권위와 영광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뜻입니다. 더럽고 오염되었다고 마귀에게 참소 받고 고통당하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품격과 고결함을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21세기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소망이 끊어진 것과 같은 상태, 피투성이와 같은 상태, 배설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형편없는 상황을 마주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오늘도 우리에게 아름다운 예복을 입히시고, 정결의 관을 씌워 주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이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아름다운 예복과 정결에 관해 주도권을 잡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있던 영웅을 부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셔서 그 사람을 깨끗한 그릇으로 만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더러운 옷, 죄악을 제거해주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개인에게도 이런 정결의 관을 씌워주셨지만,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은 우리 민족에게도 정결의 관을 씌워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지도자로 있는 나라들에도 하나님이 그들을 통하여 정결의 관을 씌워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시대에 네덜란드의 신앙은 완전히 쇠퇴해버린 상태였고 국가도 생명력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 카이퍼가 1880년도에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을 세우고, 20년 동안 성경을 바탕으로 한 영역 주권을 통하여 인간을 새롭게 하는 데 불굴의 노력을 쏟는 등 네덜란드의 교회사와 정치사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시대의 모래밭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긴 것이지요. 네덜란드 역사가들은 “네덜란드의 교회와 국가와 사회와 언론과 학교와 학문의 역사는 매 순간 아브라함 카이퍼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기록될 수가 없었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았던 네덜란드에 아브라함 카이퍼와 같은 사람을 통하여 정결의 관을 씌우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도 하나님이 주신 정결의 관을 쓰고 그 사명을 완수한 것입니다.

네덜란드만 그렇습니까?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은 이 역사 앞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정결의 관을 씌워 주신 줄로 믿습니다. 제헌 국회를 기도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만 군목 제도를 자리 잡게 하는 데 성공했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경목 제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기독교 사학이 처음에 들어와서 제대로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지요. 주님이 정결의 관을 씌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수많은 역경을 지나온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더러운 옷을 제거하시고, 아름다운 예복을 입혀주시고, 정결의 관을 씌워 주셔서 우리를 통하여 주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지금 혹시 초라한 모습으로 더러운 옷을 입고 사탄의 고소를 당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불같은 시험을 당하여 낙망한 분이 계십니까?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 죄를 단번에 사하여 주시고 정결의 관을 우리에게 씌워 주신 줄로 확신합니다. 불에 그슬린 나무 같은 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지사충성(至死忠誠)하며 살아갑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정결의 관을 수여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를 더 거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2) 우리를 거룩하게 하려고 주님이 당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정결의 관을 씌워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둘째,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한 일에 쓰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 2:21)

셋째,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 친밀하게 교제하기 위함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3)

넷째, 우리에게 참된 복을 주시기 위하여 정결의 관을 씌워 주신 것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65:4)

오늘 우리 모두가 다 이 정결의 관을 쓰고 주의 집을 사모하여 주님이 예비하신 참된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불에 그슬린 나무 같은 나를 부르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며, 정결의 관을 씌우시는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일평생 우리의 전부를 드려도 다 할 수 없는 그 은혜에 감사하며, 어떠한 일을 만나더라도 주님 붙잡고, 오매불망 사모하는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지사충성(至死忠誠)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의복을 착장하시고 하나님의 관을 수여받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 신앙의 영광과 은혜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 붙잡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정결의 관을 씌워 주신 것을 감사하며 주님 앞에 왕관을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제거하시고 정결의 관을 씌워 주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주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오정현 목사

(前) 남가주사랑의교회 개척 및 담임목사
(現)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YUST) 이사장
(現) Christianity Today Korea 발행인
(現) 한중국제교류재단 대표회장
(現) 사랑의복지재단 대표이사
(現)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 총장
(現) 국제제자훈련원 원장
(現)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작성자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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