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장 1-5절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서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여 끌려간 남유다의 유민들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런데 그 강력했던 바벨론이 더 거대하고 강력한 제국 페르시아에 의해 무너집니다. 이 페르시아의 초대 왕 고레스는 이전과 달리 유화정책을 쓰고, 이에 기원전 538년 조서를 반포하여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배령의 백성들에게 돌아갈 자유를 선포합니다. 그 바람에 유대인들 중 일부가 일차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에서 영원할 줄만 알았던 포로 생활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고 그 흐름의 맥을 짚다 보면, 인간의 역사는 필연에 의한 것 같으나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역동의 시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바벨론도 페르시아도 무너졌습니다. 결국 영원한 권력과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그분은 그의 백성들을 결코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응답하지 않는 것 같지만 언제나 그 이면에서 역사를 움직이셔요. 심지어 가장 강력하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제국과 그 황제들을 움직이십니다. 느리지만 치밀하게, 격동의 현장 같으나 인격적으로 움직이십니다. ‘소망’이란 것이 그러합니다. 소망은 근거가 있어야지요. 근거 없는 소망은 단지 희망이나, 혹은 몽상, 망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소망은, 이 모든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 자가 가장 강력하게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망을 품은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는 정작 울고 있습니다(느1:4). 이유가 있습니다. 1차로 귀환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이들이 환란 끝에 마침내 성전을 재건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대하며 희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성전 운영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들, 먹을 것의 부족, 성벽이 없기에 안전하지 않은 상황. 그래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대인이 사라진 후, 그동안 그 지방 권력을 잡고 있던 사마리아 총독이,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들까 두려워서 유대인들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회유하고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느헤미야 시절에 대대적으로 두 번째 귀환자들이 예루살렘에 돌아갑니다. 이들이 호기롭게 성전을 보수하고 성벽을 재건하려 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사마리아 권력자들이 이번에는 페르시아 황궁에 유대인들이 반란을 위한 모의를 하고 있다고 모함하여 황제로부터 모든 공사를 중단시키라는 조서를 받아내고야 맙니다. 이에 예루살렘은 결백함을 고하고, 공사를 재개하기 위한 페르시아 왕궁으로 비밀결사대를 파송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하나니’였고 느헤미야의 친척이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그로부터 이 소식을 듣습니다.

순탄하리라 생각했는데, 이 비보에 좌절합니다. 그러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다고 혹은 회복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마귀의 사악함이 범람하는 이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서는 이 총체적 난국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큰 환난을 당하고’(3절) 이 표현은 히브리어로 ‘악’ 가운데 빠져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네 현존이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기준대로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악’합니다. 심지어 이를 치유해가야 하는, 즉 성벽이 되어주어야 하는 교회마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들은 신앙적 무기력함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나아가 영적 공동체를 세워가는 데 더 이상 여력도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교회를 떠나갑니다. 큰 환란 중에 있는 예루살렘과 신앙공동체의 현실은 많은 부분 오버랩 됩니다. 과연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느헤미야 울음. 그의 눈물은 단순한 순간적 감정의 발산이 아니라, 그의 영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심령의 울음입니다. 이런 심령의 울음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통해 우리가 잘못된 악의 한복판에 있음을 깨달았을 때 시작됩니다. 맞습니다. 역사와 지금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다면 우리는 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소름이 돋는 행위들이 만연하고 일상화된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슬퍼서 웁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과 공의가 완전히 땅에 떨어진 현실 때문에 웁니다. 그러나 무기력한 자신과 무너져가는 교회의 현실에 웁니다. 이런 눈물이 우리에게 있길 바랍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그는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는 현실을 직면하고, 철저한 현실 인식 앞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청하기 시작합니다. 이 거대한 악의 한복판에서 몸부림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이 거대한 악을 이겨나가기 위해서 진정 필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과 지위가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지 않고, 우선 기도합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 1:4)

이 시대를 살아가고,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이처럼 현실에 대한 민감함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면에서 움직이고 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상이 주는 가치, 즉 물질만능주의, 무한경쟁, 생명 경시, 개인주의 등에 휘둘려 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여전히 그리고 은밀히 역사를 움직여 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절대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끈질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날마다 불의에 분노하거나 화병을 못 이겨 세상을 회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읊조립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죄 때문입니다. 이게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회개합니다(6-7절).

그리고 간청합니다(8-10절). 그런데 그가 기도하는 패턴을 보십시오. 나의 필요에 의해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근거해서 그분께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성경 말씀으로부터 인용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 그래서 죄를 벌하시는 분. 그러나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다고 약속하셨는데,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을 지키시는 분. 나아가 하나님은 심판보다 회복을 원하시는 분.’ 돌이키오니 우리를 살려주옵소서! 우리가 믿고,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이 정말 그 하나님 맞나요? 이러한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울 수는 있어도 기도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내 힘과 능력에 의지하겠지요.

무엇보다 이 구절에서 느헤미야의 하나님을 엿볼 수 있습니다. 11절에 ‘이 사람 앞에서’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바로 그가 모시는 ‘아닥사스다왕’입니다. 그는 대페르시아 제국의 황제이자, 페르시아제국의 통치를 받는 모든 백성들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 왕이 바로 전무후무한 복의 근원이고, 복의 보증자입니다. 느헤미야 역시 그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그를 낮춥니다. 하나님만이 이 세계의 주관자이자 자신의 유일한 소망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그 확신은 그의 기도를 통해 드러납니다. 사실 그의 기도는 응답이 없었습니다. 기도가 시작된 1절 ‘기슬르월’에서 2장 1절에 기록된 ‘니산월’까지는 무려 4달입니다. 그라고 해서 왜 초조함이 없었겠습니까? 무엇보다 그는 왕의 가장 최측근이자 신임을 얻는 자가 맡는 직책인 ‘술 관원’이었습니다. 자신의 계략이나 능력으로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자였으나, 언제 응답될지 모르는 기도의 자리를 택하였습니다. 민족의 구원이라는 명목하에 자기 힘으로 이집트 관리를 때려눕힌 모세의 우를 범하지 않은 것이지요.

고백합시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서 회복시켜주시고 세워주소서. 우리는 주의 백성이니이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고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어지는 느헤미야의 말씀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무소불위의 황제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불탄 성벽 앞에 무너져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그래서 모두가 포기하고 만류했던 성벽 완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하신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이토록 현실을 직시하고 울며 무릎 꿇은 한 사람, 느헤미야로부터 시작하였고, 그의 이 절실한 기도로부터 역사는 시작됩니다. 그 한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손성찬 목사 이음숲교회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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