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5-6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동행하는 에녹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늘 함께 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에녹이 65세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 5:21-22) 에녹이 65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면 시작이 좀 늦었습니다. 왜 에녹은 65세,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을까요? 그 이유를 므두셀라의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의 뜻은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뜻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을 때, 므두셀라가 죽는 날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미리 깨달았습니다.

에녹이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경건하지 않았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 앞을 떠나 에던 동쪽 놋 땅에 정착해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가인의 후예들은 점점 포악해져 갔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이 확장되는 것을 보고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므두셀라를 통해 에녹에게 심판을 알리셨고,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내 아들 므두셀라가 죽으면 심판이 올 것이다. 그러니 내 아들이 죽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라!”(유 1:14-15)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가 죽었을 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그의 연보를 확인하면 알 수 있습니다.

·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습니다.
·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 그때 므두셀라의 나이는 369세였습니다.
· 므두셀라는 969세에 죽었습니다. 바로 그 해가 노아가 600세 되던 해입니다.
· 홍수가 임했을 때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의 둘째 달이었습니다.
· 므두셀라가 죽던 해, 즉 그의 나이 969세 때에 홍수가 임했습니다.

므두셀라가 죽던 해, 그때가 노아가 600세가 되던 해고, 그때 홍수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므두셀라를 통해 에녹에게 미리 심판을 알리셨으며,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면서 살았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동행한 이유를 아시겠지요? 에녹은 므두셀라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경험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그 사건 속에서 항상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씁니다. 병이나, 헤어짐이나, 절망이나 실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첫째,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므두셀라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깨달았고, 그 후 하나님의 뜻을 알리며 살았습니다. 어쩌면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던 300년을 오로지 하나님의 뜻, 심판의 뜻만 전하며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믿음은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 가는 삶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동행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히 11:6)고 성경은 에녹을 통해서도 말합니다.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찾나요? 먼저 기도를 통해서 찾습니다. 기도는 무엇을 해 달라는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는 먼저 말씀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기대어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며, 기도 속에서 우리는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의지와 분별력, 물질과 건강과 앞길을 의뢰하기도 합니다.

기도는 좋든 싫든 적어도 하루에 한 번 규칙적으로, 꾸준히 작정하고, 끈덕지게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힘든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 위해 한바탕 씨름을 벌여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작당이라도 한 듯 온갖 것들이 길을 막습니다. 기도를 시작해도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나의 기도를 막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곳에, 사방 벽 안에, 내 앞에, 내 뒤에, 오른편에, 왼편에 계십니다. 끝없이 광대하신 분이 여기 있는 내게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도적으로 주님 발 앞에 엎드려 그분과 말씀을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그 뜻대로 살기를 구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단 한음절도 빠짐없이 주님 귀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이런 다짐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매일 기도를 놓치지 말게 하소서!”

셋째,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동행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오셨습니까? 말씀을 듣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 안으로 걸음을 옮기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고 계십니다. 동행은 교회 안에 있는 시간만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시간도 동행의 시간이 됩니다. 이 뜻은 세상에 나가서 종교적인 행위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가서 살되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b)

우리의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에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교회를 떠난 밖에 더 오래, 더 자주, 더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교회에 있을 때와 밖에 있을 때 바뀝니까? 아닙니다. 같은 몸입니다. 즉, 믿음은 교회에서만 하는 종교적인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지내는 ‘삶’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동, 이것이 ‘동행’입니다.

동행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들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하나님 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상 주십니다. 어떤 상을 주실까요? 첫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깨닫게 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고 세상에 심판을 알리자, 하나님은 그가 죽음을 보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공급받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연합할 때 모든 능력과 지혜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잠 13:20) 그러면 우리의 삶은 날로 강해지고, 풍성해지고, 놀랍게 되고, 능력을 발휘합니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성숙해집니다.

셋째, 하나님과 동행할 때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다 보면 어느새 예수님처럼 변화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원래 사람이란 동행하는 대상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점점 하나님을 닮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 갑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나갑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기도하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기도합니다. 단순히 자기 소원을 아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소원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구하며 나아갑니다. 셋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갑니다. 정직하게 살고, 인내하며 살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살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쓰며 사는 모습들입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란 것이 특별한 무엇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하루하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큰 상급을 주십니다. 죽음보다 더 크신 상급을 주십니다. 이런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장덕순 목사

한남대학교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Th.M.)
풀러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목회학박사) (D.Min.)
(前) 한일장신대학교 이사장
(前) 대한예수교장로회 익산노회 노회장
(前) 한남대학교 이사
(現) 이리신광교회 담임목사
(現) 사회복지법인 신광복지재단 이사장
(現) 재단법인 신광장학재단 이사장
(現) 전주대학교 이사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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