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4장 10-16절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도넛을 버린 던킨

우리가 잘 아는 브랜드 가운데 던킨(Dunkin’)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던킨’ 하면 도넛을 떠올립니다. 왜냐하면 1950년 미국에서 창업을 했을 때부터 약 70여 년 동안 던킨의 이름은 ‘던킨도너츠’였습니다. 그런데 2019년부터 과감하게 ‘도너츠’를 뺀 ‘던킨’이라는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이름을 바꾼 이유는 하나입니다. 도너츠의 매출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주력 메뉴를 도너츠에서 커피와 음료로 분산했습 니다. 그리고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 몇 가지 노력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입니다. 던킨의 매장의 60% 이상이 미국에 있기 때문에 저희가 직접적으로 체감을 할 수 없지만 던킨은 다른 브랜드보다 드라이브 스루가 굉장히 잘 되어 있다고 합니다. 맥도날드 와 비교하면 약 1분 정도가 빠르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9,600여 개의 던킨 매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대부분 정상 영업을 했습니다. 2019년도부터 드라이브 스루에 많은 투자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스타벅스를 비롯해 음료를 파는 기업들이 대부분 마이너스 매출을 기록한 반면 던킨은 1.3% 매출의 증가를 거두었습니다. 던킨이 변화하는 시대에 빠르게 대처하며 ‘준비’해왔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우리 삶에 적용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 많지 않죠. 준비된 자에게는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위기가 위기로 끝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홍해 앞으로 인도하신 이유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등장한 홍해 사건은 아마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도 잘 아는 내용일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로 이끄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출 13:17-1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다시 애굽으로 돌이킬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지나 광야의 시간 동안 많은 어려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앞으로 겪게 될 많은 위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바로 오늘 홍해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하시면서 위기를 가르는 힘을 준비하기 원하셨습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오래전에 스펜서 존슨(Patrick Spencer Johnson)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두 마리의 생쥐와 두 명의 인간이 등장합니다. 생쥐 두 마리와 두 명의 인간이 미로에 갇혀서 치즈를 찾는 내용입니다. 생쥐 두 마리와 두 명의 인간이 결국 미로 속에서 치즈 창고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좋았을까요?

두 명의 인간은 창고에 머물면서 느긋하게 치즈를 먹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두 마리의 쥐는 치즈창고를 발견했음에도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치즈 창고를 찾기 위해 돌아다닙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창고의 치즈가 바닥나고 말았습니다. 두 명의 인간은 패닉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쥐를 쫓아서 다른 치즈 창고를 찾으러 떠납니다.

남겨진 다른 한 명의 사람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지?” 하면서 계속 신세한탄만 합니다. 결국 두 마리 쥐와 그 쥐를 쫓았던 인간은 다른 치즈 창고를 발견해서 풍족한 삶을 산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세상의 시선, 즉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은 다른 치즈 창고를 하나 더 갖는 겁니다. 그러니 진짜 본질적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진짜 본질적인 문제는 미로 속에서 탈출하는 겁니다. 미로 속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다 죽습니다. 남들보다 열심히 살아도, 남들보다 더 많은 치즈 창고를 가져도 결국엔 미로 속에서 죽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해방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애굽의 노예로 살아왔던 지긋지긋했던 삶으로부터 탈출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홍해 앞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애굽의 군대가 추격합니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점점 가까이 오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겁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 14:11-12)

모세를 원망합니다. “애굽에서 굳이 이끌어 내서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하느냐?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둬, 차라리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게 더 좋아.” 애굽을 향해서 마음을 돌리며, 애굽 생활이 더 좋았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질적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인 믿음의 백성, 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이루어야 함을 잊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것을 꿈꾸지 못했습니다. 애굽이라는 미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제의 본질임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애굽이라는 미로에서 탈출하는 것보다 애굽의 미로 속에서 치즈 조각 하나 바라보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이 콘택트(Eye contact)

우리 교회에 오고 난 이후에 설교자로서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낍니다. “목사님, 성장한 것이 그 정도예요?”라고 물어보시면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보통 부목사 때는 설교의 기회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담임목사님께서는 좋은 목사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목사들에게 설교의 기회를 많이 주시고, 조언도 같이 해주십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설교학 교수님이시기 때문에 저희에게 해주시는 조언 하나하나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담임목사님께서 해주신 조언 중에 제 마음에 박혀서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설교할 때는 성도들과의 아이 콘택트가 정말 중요해. ‘아이 콘택트’가 ‘하트 콘택트’(Heart contact)로 이어지는 거야.”

이 메시지가 저에게는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설교자만 아이 콘택트가 중요할까요?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아이 콘택트가 정말 중요합니다. 누구와 아이 콘택트요? 하나님과 아이 콘택트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아이 콘택트가 하나님과의 하트 콘택트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이 콘택트가 마음의 상태를 결정한다

복음서에 보면 물 위를 걸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가 그 주인공입니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마 14:26-30)

오병이어 사건 이후에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보내시고 예수님은 홀로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십니다. 배를 타고 가던 중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바다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정말 주님이시면 나를 물 위로 오라 하십시오.”

베드로가 예수님과 아이 콘택트, 즉 주님과 시선을 맞추며 물 위를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에 베드로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예수님이 아닌 바람과 바다에 자신의 시선이 향하는 순간,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믿음은 사라지고 두려움이 가득 차게 됩니다. 믿음이 아닌 두려움이 가득 차고 나니 베드로는 바다에 빠지게 됩니다.

주님과의 아이 콘택트가 무너지면 하트 콘택트가 무너집니다. 주님을 바라봄이 무너지면 마음이 무너지는 겁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이 믿음으로 충만해 집니다. 바라봄이 마음의 상태를 결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출 14:10)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바라보았습니까? 애굽의 군대를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아이 콘택트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애굽의 군대만 보고 있으니 두려움에 빠져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시선이 애굽의 군대, 즉 자신 에워싸고 죽음의 위협으로 다가오는 미로 속을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급박한 위기 상황 속에서 애굽의 군대를 바라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염려하셨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애굽의 군대를 바라보니 두려운 겁니다. 애굽의 군대를 바라보니 무서운 겁니다. 그들의 바라봄의 대상이 잘못되었고, 잘못된 바라봄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결정지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문제를 가장 잘 아는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는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애굽 사람들을 ‘다시는,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누구를 보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보라는 겁니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서 싸우시리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현재 교회에 대한 인식

코로나19 시대에 교회가 위기라고 합니다.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지난 8월 중순 이후부터 코로나19가 재확산 되면서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싸늘합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방역수칙을 지키며 정부 정책에 따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부 교회들이 언론의 타깃이 되면서 부정적인 모습들이 일반 국민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교회가 이렇게까지 국민들의 냉소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도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더 확인하고, 교회에 갔다 왔는지 매주 체크합니다. 이미 많은 성도님이 삶에서 비난과 냉소가 섞인 시선을 많이 느끼고 계실 겁니다. 믿는 사람들조차도 교회에 등을 돌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교회가 이 땅의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위기를 가르고 이 땅에 소망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우리의 마음을 세상이 주는 두려움으로 채워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실 구원의 능력을 바라보겠다는 결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겁니다

많이 어려우시죠? 많이 힘드실 겁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시선이 땅을 향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오직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종택 목사의 딸 온유

『온유야, 아빠야』라는 책을 쓴 장종택 목사님이 있습니다. 찬양사역을 하시는 분이신데, 미국에서 살다가 영주권과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들어온 그 순간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스비를 내지 못할 정도의 생활고로 힘들어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선물로 주신 딸이 바로 둘째 온유입니다.

그런데 온유가 8살 되었던 해, 특이성 뇌염이 생겼습니다. 병명은 ‘항 NMDA 수용성 뇌염’입니다. 난소에 아주 작은 기형 종양이 발견됐는데 이 종양을 공격해야 할 항체가 뇌를 공격하는 이상한 병이었습니다. 온유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습니다. 뇌는 죽어있고 숨만 쉬는 겁니다. 신체 기능이 모두 정지되었습니다. 항체가 뇌를 공격해서 20일 동안 잠도 못 잤다고 합니다. 눈은 뜨고 있지만 앞을 보지 못합니다. 통증을 못 느낍니다. 통증을 못 느끼니 자신의 입안의 속살을 뜯어서 씹습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습니다.”

장 목사님은 이런 딸의 모습을 보면서 홍해 앞에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이게 뭡니까?”, “왜 내게 이러십니까?”

집으로 돌아오는데 베란다에 놓여있는 온유의 자전거를 보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답니다. 온유가 “아빠, 자전거 타러 가자”라고 말할 때 “아빠, 지금 할 일이 있어. 나중에 타자”라고 미룬 것이 마음이 미어지도록 후회가 돼서 울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예배 사역, 찬양 사역을 더 할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래도 나를 신뢰하니?”

찬양사역자로 예배하는 동안 ‘좋으신 하나님’이라 불렀고, 예배했지만 정작 자신의 시선이 하나님께 향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온유가 아파할수록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구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사모님과 함께 위기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예배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면서 중보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어느 날 온유가 갑자기 발작을 하는데 이상했답니다. 그러다가 온유가 “예수님!”을 부르면서 깨어났습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병원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후로 온유는 점점 회복되기 시작했고, 가족들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온유의 동생, 셋째 딸이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 하나님 음성 들어봤어?”
엄마가 대답합니다.
“응, 그럼.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아니, 그런 거 말고. 지금 말하는 것처럼 들어 봤어?”
그런데 옆에 듣고 있던 온유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음성은 크고 굵어.”
엄마가 질문합니다.
“온유야,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어?”
“응, 내가 울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온유야, 내가 너 살려줄게’라고 말씀하셨어.”

맺음말

우리 인생 앞에 홍해는 늘 존재합니다. 이 홍해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홍해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잠잠하게 주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가만히 서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겁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시간 “내가 너를 위해 싸워줄게, 내가 너 살려줄게”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마른 땅으로 걸어가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의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윤성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서울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선교신학(Th.M.)
(現) 증가교회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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