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시편 136편 1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처음에 온라인 예배를 시작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평소 설교할 때는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하는데, 이렇게 같은 자리에 서서 카메라만 쳐다보며 설교하는 것도 참 어색합니다. 교회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온라인으로 사랑방 모임을 시작했는데, 다들 익숙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게나마 얼굴을 보며 마음과 기도를 나눌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앞으로 상황이 점점 좋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예배와 교제뿐 아니라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내면의 변화입니다. 특별히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내면과 성품에 초점을 두고, 영성을 돌볼 때입니다. 그동안 바쁘게 움직였던 삶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시기이기에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영성과 내면의 깊은 곳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내면의 변화 여섯 번째 열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바로 양선입니다.

양선은 영어로 ‘Goodness’(선함)입니다. ‘Goodness’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처음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이 양선입니다. 성경의 첫 페이지인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의 천지창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창세기 1장에서 7번이나 반복되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영어성경에 “It was good”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양선을 뜻하는 ‘Goodness’와 어근이 같은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좋다’를 뜻하는 ‘토브’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본질로 우주 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창조에서 보인 아름다움과 위대함, 영광은 다 그의 선하심의 본질에서 나왔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 23:6)

시편의 저자는 평생에 반드시, 분명히 볼 하나님의 모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두 번째 본문 말씀에서도 같은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1)

만유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인데, 그분의 자녀인 우리는 그의 선하신 성품을 갖고 살고 있습니까? 자녀라면 아버지를 닮은 성품과 모습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던 첫 주,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심적으로 눌림을 받아 이틀 동안 부정맥이 생겼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 예배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현장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때 도움이 된 것이 지역 목사님들과의 모임이었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접어들면서 우리가 우리의 형식을 고집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 온라인 예배에 대한 거부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로는, 온라인 예배는 예배의 형식만 바꾼 것일 뿐 예배의 본질을 버리는 것이 아니였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선하신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생명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려움과 안타까움이 남지만, 이웃에게 더 선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각 교회와 목사님들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한국 교회 가운데 온라인으로 예배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다만 충분히 온라인 예배로 대체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데도 끝까지 대면 예배 방식을 주장하며, 이웃과 사회에 혼란을 주는 모습을 볼 때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비신자들의 눈에 교회가 어떻게 보일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안 그래도 신천지나 만민중앙교회 등에서 집단 감염자가 생겼는데, 그들이 교회라는 이름을 고집하고 있어 비신자들의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게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한국 교회가 입으로는 진리를 외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세상은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위기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에 있습니다.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N번방 사건을 다 아실 것입니다. 그렇게 악하고 타락한 성문화가 사이버를 타고 수십만 명의 놀이터가 되었다니 끔찍했습니다. 그들의 신분이 드러나면 아마 우리 사회는 더욱 놀라고 말 것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 심지어는 세상에서 존경받고 있는 사람도 아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 모두의 심령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의 위기, 인류의 위기는 바로 우리 내면 속사람의 위기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잊지 맙시다. 우리의 성품이 주님의 성품을 본받아 바뀌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세상을 변화시킬 때 가장 먼저 변화시키셔야만 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 우리의 성품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묵상합시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8)

방금 읽은 빌립보서 4장 8절 말씀은 ‘모든 것’을 생각하며 묵상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것’이 내포하는 단어를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선하심’, 하나님의 선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특히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깊이 묵상하면, 성령님은 우리가 묵상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통해 우리 안에서 변화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선하심을 잘 설명해 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기에 전혀 합당하지 않았을 때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나를 위해 희생시키셨습니다. 말이 됩니까?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도 범인을 위해 희생시킬 자가 세상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물으니, 본인도 아프지만 간을 준 아들이 더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의학적으로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더 아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새로 느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것, 심지어 하나뿐인 아들까지 우리에게 주셨으니 얼마나 아프셨을지 하나님의 마음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는 자의 건강이 받는 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성도님께는 아들이 셋 있는데, 둘째 아들의 간이 가장 이식받기에 적합해 그의 간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성도님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원래 예정된 날짜보다 간 이식 수술을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몸무게는 90kg인데, 간에 지방이 많아 수술이 예정된 3주 뒤까지 10kg을 감량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금식과 운동을 해서 3주 만에 10kg을 뺐고, 간을 잘라 아버지에게 이식했습니다. 건강해진 아들의 간이 그대로 전달된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

이사야 53장 1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장 30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셔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주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요, 우리를 향한 선하심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해봅시다. 그 선하심을 묵상하며 생각하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이뤄나갈 수 있습니다.

성경의 황금률대로 삽시다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대로, 너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내용이다.” (마 7:12, 쉬운성경)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실천하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실제적인 원칙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남들이 나에게 잘 대해주기를 원합니다. 나에게 선한 모습으로 말하고, 대하고,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원하듯이 그대로 남에게 해주면 주님의 선하신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면 됩니다. 내가 어려울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먼저 누군가 힘들어할 때 내가 도와주면 됩니다.

저희 부모님과 자녀들은 미국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 일이 있고, 아이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안타까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이야기한 것이 “우리가 가족들에게 하지 못하는 것을 여기서 해보자!”였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우리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부모님을 대하듯, 자녀를 대하듯 사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갖고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다른 손길을 통해 그들을 축복하고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받기를 원하는 대로 우리가 남에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황금률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그의 선하심을 닮아갈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고 세상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됩시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세상에 흩어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지금은 본질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확실히 비춰야 하는 시기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 사모하고 반영하며 비추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승욱 목사 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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