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장 22-35절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데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강철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카네기(Andrew Carnegie)는 사무실에 조그만 그림 하나를 걸어두고 그 그림을 평생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카네기는 물건을 팔기 위해 이집 저집을 전전하는 평범한 세일즈맨이었습니다. 어느 날 물건 판매를 위해 한 노인의 집을 방문했는데, 카네기는 그 집에 걸려있는 그림 액자 한 점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썰물 때에 모래톱 위에 덩그러니 걸쳐져 있는 배 한 척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카네기가 보기에 그 배는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림 속 배는 폐선처럼 보일 정도로 초라하게 낡았고 노는 모래 위에 내팽개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카네기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으니 그 그림밑에 쓰여 있는 글귀였습니다.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온다.” 이 배가 쓸모없어 보이는 것은 지금이 물이 다 빠져나간 썰물 때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올 터인데 밀물은 이 배를 물에 띄워 놓을 것이고, 그러면 이 배는 귀하게 쓰일 것입니다. 카네기는 며칠 후 그 집을 다시 방문하여 노인에게 훗날 세상을 떠나실 때 그 그림 액자를 자신에게 넘겨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습니다. 노인은 간절히 부탁하는 카네기에게 그 그림을 주었습니다. 이후 카네기는 그 그림을 사무실에 걸어 놓고 사업과 인생에 어떤 시련이 와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온다.” 이 말은 카네기의 평생 신조가 되었습니다.

카네기처럼 밀물의 때를 기다리며 살았던 또 한 사람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던 시므온입니다. 그는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때가 오면 기쁨의 항해를 할 것을 굳게 믿으며 경건의 훈련을 하며 산 사람입니다. 시므온의 인생은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눅 2:26)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이후로 성령님과 동행하며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아기 예수를 출산한 마리아와 요셉이 정결예식을 치르기 위해 성전에 들어갔을 때, 시므온은 자신이 오랫동안 소망했던 그 하나님의 때가 왔음을 깨달으며 기뻐하였습니다. 이제 시므온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우리 역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첫째,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복음은 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5)

그는 영적으로 깨어있었습니다. 그가 깨어있었다는 것은 아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바로 알아본 사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에 정통하고 많은 이들을 가르치며 사회적인 영향력도 있었겠지만, 정작 이스라엘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므온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그는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지위만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며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열망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경건하게 깨어 살았던 여러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당시 제사장 중 하나였던 사가랴와 그의 아내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6절은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소개되는 나다나엘도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는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은 동네인 벳새다 사람이었던 빌립의 지인입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부르셨는데 빌립이 예수님을 바로 따르지 않고 나다나엘을 먼저 찾아갑니다. 그만큼 나다나엘은 메시아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일에 본을 보였던 믿을 만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나다나엘에게도 인간적인 한계는 있었습니다. 그는 나사렛 같은 천한 지역에서 위대한 인물이 나올 수 없다는 당시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다나엘은 교만하거나 고집불통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빌립의 권유대로 예수님을 만나러 갑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분명히 좋게 평가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7)

나다나엘은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짧았던 생각을 뒤로 하고 주저함 없이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우리 역시 시므온처럼,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나다나엘처럼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종교적인 정체성, 교회 다닌다는 사회적인 위치,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한다는 개인적인 성취감을 넘어서야 합니다. 참된 경건은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고 어떤 직책을 수행하는가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도 받고 세상과도 벗하고 싶은 간사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며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는가, 우리 마음이 진정 하나님의 역사를 사모하는가 돌아봐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이 명령하는 대로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야 합니다.
경건의 기초는 기도라는 사실 또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던 랍비 아키바는 유대 독립운동의 주동자로 몰려 처형당하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아키바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것은 너무 편안하게 죽이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인두로 온몸을 지져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던 날 아침, 시뻘겋게 달구어진 인두로 고문을 당하면서 아키바는 늘 하듯이 아침 기도를 드렸습니다. 로마 사령관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이렇게 호된 고통을 당하면서도 또 기도를 드리는 건가?” 그러자 아키바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이제껏 한 번도 아침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소. 더구나 지금 이렇게 죽음을 앞에 두고 기도드릴 수 있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오.” 이렇게 말한 뒤, 아키바는 서서히 숨져갔다고 합니다. 기도는 모든 경건의 초석입니다. 즉 고통의 상황 가운데서도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경건의 모습입니다. 시므온 역시 곤고함이 끝없이 이어지는 삶 가운데 이처럼 기도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둘째, 시므온은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시므온이 평생의 열망이었던 메시아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성전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메시아와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결정적인 장소였습니다.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간 이유는 그가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전에 가면 나에게 유익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인간적인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던 것입니다. 시므온은 하나님의 이끄심에 그저 순종했을 뿐입니다. 성전 중심의 삶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성도들이 교회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은 마땅합니다. 세상의 매력과 가치가 교회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순종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딱 한 가지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4)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았던 또 다른 중요한 인물들 중 하나가 한나입니다. 한나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이 언급될 때마다 항상 같이 거론되는 사무엘의 어머니입니다. 한나가 아들이 없어 서러운 시절에 주님 앞에 나아와 눈물의 기도 끝에 얻은 아들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아픈 마음과 삶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집에서 기도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나는 주의 집에 머물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머무르는 그 행위 자체가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나는 주님의 집에서 주님의 종으로부터 아이를 낳을 것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받습니다. 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아들을 얻은 이후에도 한나의 신앙이 한결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성전을 가까이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들 사무엘을 성전에 드림으로 성전 중심의 신앙을 계속 유지했습니다.

성전 중심, 즉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잡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또한 나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계속 맡기게 만듭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은 기차가 선로 위를 달리는 것과 같고 지구가 태양계의 궤도를 도는 것과 같습니다. 기차마다 속도와 내부의 쾌적함이 제각각이겠지만 대형 참사는 그런 조건과는 무관합니다. 오직 선로를 벗어날 때 발생합니다. 지구에 별문제가 많이 일어나지만, 만일 지구가 태양계의 궤도를 이탈한다면 지구 자체가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뭔가를 열심히 하며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바른 경로로 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시므온과 한나처럼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이곳저곳을 방황하지 마시고 성탄절을 맞이하여 내 중심이 어디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구원을 의지하며 나와 온 가족의 삶이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바른 궤도에 들어서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시므온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므온의 열망 자체가 육신적인 욕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을 보는 것이었기에 이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약속이 성취된 것에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기를 안은 그의 마음에 경이로움이 가득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눅 2:30-32)

기쁨이 가득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 백성들의 삶에 나타나는 소중한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홍해를 건너고 또한 하나님의 권능으로 애굽의 군대가 홍해에 몰살되는 것을 목격한 후에 그들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찬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의 희열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출 15:1)

모세의 누이 미리암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출 15:21)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남녀노소의 구분이 필요 없었습니다. 두 노래 모두 위대한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마땅히 높임을 받으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의 위기를 극복한 기쁨은 결코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평생의 기다림이 성취되는 것을 목격한 시므온 역시 자기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들이 자기 능력으로 열심히 살면서 자기가 이룬 것을 자랑하고 그 과정에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경이로움에 가득 차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은 단지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깨닫는 정직한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현재 갈라타사라이에서 뛰고 있는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라다멜 팔카오(Radamel Falcao)는 콜롬비아 국가대표로 활동할 뿐만 아니라 10년 넘게 유럽의 유명 클럽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콜롬비아의 축구 영웅입니다. 팔카오는 지난 2014년 무릎에 큰 부상을 입어서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고 재활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콜롬비아 축구 유소년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기 위해 팔카오를 초청한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유소년 축구 꿈나무들은 누가 오는지 몰랐었 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팔카오가 등장하자 모든 아이들가 깜짝 놀랐습니 다. 그중에서 마이클 스티븐이라는 당시 13세 청소년이 보인 반응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 사는 가난한 소년이었던 마이클은 팔카오를 롤모델로 생각하며 축구 실력을 키우던 아이였습니다. 마이클은 팔카오를 직접 보자 감격 어린 울음이 터졌고, 무릎까지 꿇으며 팔카오를 반겼습니다. 그는 팔카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축구를 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더 나아가 마이클은 팔카오의 부상당한 무릎을 어루만지 며 “하나님이 당신의 다리를 낫게 해주실 거에요”라고 진심을 담은 축복의 말을 전했습니다. 축구스타 팔카오도 자신을 향한 뜨거운 환영과 사랑에 눈물을 흘리며 부상으로 인해 힘들었던 마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렸던 시므온의 마음도 마이클의 태도와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시므온은 자기 삶을 지탱하던 소망이 이뤄지는 순간 그 누구도 다 헤아릴 수 없는 기쁨과 감격으로 찬양을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앞장서서 기뻐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인간에게 가장 큰 성취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가 보인 모습은 아기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에게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믿음의 백성들에게 큰 본이 되었습니다. 올해 성탄절에 성도 여러분의 마음도 시므온처럼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으로 가득하여 세상에서 우리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신민규 목사

나사렛대학교 졸업
미국 남부나사렛대학교(이학사 문학석사) 졸업
미국 나사렛대학원(신학석사) 졸업
미국 캔사스주립대학교(이학석사, 교육학 박사) 졸업
미국 에모리 대학교(목회상담학박사) 졸업
나사렛대학교에서 10년간 신학부 교수 재직
아리조나 주립대학교, 프린스톤신학대학원 객원교수
나사렛대학교 총장 역임
(現) 나사렛성결회 제7대 총회감독
(現) 상암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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