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장 16-26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사람은 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에 걸쳐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도 하고, 좋지 못한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그렇게 맺은 열매로 그 사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6-18)

한국 교회는 지금 무슨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나는 무슨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성경은 성령을 불, 바람, 비둘기 등 같은 다양한 은유로 묘사합니다. ‘불’ 같은 성령은 능력을, ‘바람’ 같은 성령은 변화를, ‘비둘기’ 같은 성령은 좋은 성품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전체를 통해서 이방인들이 육체로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성령으로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사는 자들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여 육체로 마치려 하는가?”(갈 3:3)라고 탄식하며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자들을 경계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이와 같은 탄식을 하셨습니다. 믿음에서 율법으로 돌아가는 행위는 마치 개가 그 토한 것으로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신앙적 배역 행위를 하는 자들은 ‘빈집의 비유’처럼,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악독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끝까지 붙들고 그 안에 머물면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서운 심판이 기다릴 것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9-20)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목적은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팔복(八福)은 존재의 복, 성품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하고,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 입술만 선하고 거룩하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발람도 예언하는 은사가 있었지만,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울도 예언한 적이 있지만, 시기심에 다윗을 죽이려고 했고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삼손은 큰 힘과 능력이 있었지만 그의 말로(末路)는 비참했습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를 고쳤으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따라서 큰 교회를 일구고 사역한다고 해서 반드시 선하고 위대하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주의 이름으로 큰 기사와 능력을 행하고도 열매가 없으면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아무리 입술로 주님을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주의 종노릇을 해도 열매가 없으면 주님께서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입니다. 영성의 확실한 징표는 은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열매 없는 은사는 유익이 없습니다. 열매를 강조하면서 은사를 소홀히 여기거나, 은사를 강조하면서 열매를 소홀히 여기는 것 모두 온전한 복음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은사를 열매 있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는 비슷하면서도 구별되는 점들이 있습니다. 열매는 보편적이며 지속적인 반면, 은사는 개별적이며 일시적 성격을 지닙니다. 열매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할 때 ‘내적’ 열매로 나타나고, 은사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의하여 ‘외적으로’ 나타납니다. 열매는 하나님 지향적이고 영원한 것이지만, 은사는 과업 지향적이고 일시적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주어지는 것이고, 열매는 가꾸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사역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기초라면, 성령의 은사는 사역 자체를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참된 성령운동은 열매와 은사가 함께 나타나야 합니다. 열매와 은사, 윤리와 카리스마의 괴리를 극복해야 합니다. 열매와 은사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은혜의 산물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와 열매는 꽃과 열매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꽃은 열매의 약속입니다. 꽃은 과정이고 열매는 결과입니다. 열매는 시간이 걸리지만 가치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와 은사의 공통분모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의 증표는 성령의 은사보다는 성령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육의 열매를 맺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는 육체의 열매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 등 15가지가 예시되어 있습니다. 카테고리로 나누자면 음행, 싸움, 방탕으로 대별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런 열매를 천국 곡간에 들이지 않으십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눈만 뜨면 이런 것들을 신문과 뉴스에서 보게 됩니다. 육체의 열매는 육체와 가정, 공동체와 영혼을 병들게 하고 파괴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분노는 다양한 형태의 병리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격분, 증오, 폭동, 시기, 공격, 험담, 야유, 앙심, 비통, 악의, 불평, 질투, 후회, 편협, 비난, 원한.’ 그리고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좋지 않은 증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근심, 의심, 소심, 우유부단, 미신, 움츠림, 고집, 시비, 걱정, 열등의식, 비겁, 주저, 실망, 교만, 수줍음.’ 마음과 육신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면 육체에도 질병이 찾아옵니다. 이런 것들은 성령님을 근심하게 합니다.

잡초는 심지도 않고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랍니다. 씨도 뿌리지 않았고 가꾸지도 않았는데 계속해서 자랍니다. 좋은 땅, 좋은 씨앗은 잘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 두면 곧 자갈밭이 되고 잡초투성이가 됩니다. 이와 같이 죄와 타락은 자동적으로 전수되고 자행됩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는 범죄한 인류가 평생토록 땀을 흘리며 수고를 해야 식물을 먹게 하기 위함인지도 모릅니다(창 3:17-19). 저주받은 땅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타락한 인류의 판박이와 같습니다. 반면, 알곡이나 초목이나 꽃은 뿌리고 가꾸고 다듬어야 합니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인간 또한 자연히 선해지지 않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새로워집니다.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성령의 산물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죄악된 성품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4) 육체의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인간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을 따르면 자연히 육체의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소욕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인디언 추장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 안에는 개 두 마리가 있다. 한 마리는 고약하고 못된 놈이고, 다른 한 마리는 착한 녀석이다. 못된 놈은 착한 녀석에게 늘 싸움을 건다.” 듣고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개가 이깁니까?” 그러자 추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먹이를 더 많이 준 개가 이긴다.”

육체의 열매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더욱 충만하게 역사하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충만하게 거하시면 성령님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도가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 소생하게 하시는 역사가 필요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 5:18) 왜 ‘성령의 열매’입니까? 성령님이 맺게 하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맺는 나의 열매가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맺게 하는 열매입니다. 어떻게 해야 열매를 잘 맺을 수 있을까요? 원예학 용어를 차용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먼저 좋은 나무에 접을 붙여야 합니다. (롬 11:13-24)

돌 감람나무일지라도 참 감람나무에 접을 붙이면 됩니다. 참 감람나무는 예수님, 복음, 십자가 등입니다. 회개를 통해 돌 감람나무 같은 우리도 좋은 가지에 접이 붙어 양분과 수분을 공급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능히 우리를 접붙이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접을 붙기 위해서는 먼저 원가지에서 잘려야 하는데 이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접붙일 때는 끈으로 잘 매어 주어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뜻합니다. 그렇게 되면 개복숭아 가지도 자두, 살구, 복숭아를 맺을 수 있고, 고염나무 가지도 단감을 산출할 수 있습니다.

②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합니다. (요 15장)

쓸모없는 가지는 제거해주고(정리), 잎은 따주고(집중), 병충해는 제거하여 깨끗하게(성결) 해주어야 합니다.

③ 그러면 대목(臺木)과 접목(接木)이 하나로 연합하여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그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으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며, 우리의 기도는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8)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 15:16)

종합하면, 회개하고 믿음으로 주님께 붙어 있으면 됩니다.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거하고 말씀 안에 거하므로 이루어집니다. 근심함으로가 아니라 신뢰함으로 얻어집니다. 행함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떤 열매를 거둘까요? 사람은 자기가 사는 지형이나 기후, 사귀는 사람, 출신 부모의 유전적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바로 거룩한 성삼위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9가지 성품이 성령 충만한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9가지 열매는 분류상 3가지씩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악의 목록은 무질서하고 혼돈스럽게 나열되어 있는 반면, 성령의 열매는 체계적으로 정돈되어 제시됩니다.

Ⅰ. 사랑, 희락, 화평: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맺는 열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사랑’은 ‘아가페’로서 모든 열매 중 가장 우선적이고 기독교를 대표하는 열매입니다. 이는 사람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희락’은 ‘카라’로서 하나님께 기반을 둔 기쁨입니다.

정욕과 방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거룩한 하나님 안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기쁨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와 죄 사함, 소망에서 비롯되는 거룩한 기쁨입니다. ‘화평’은 ‘에이레네’로서 하나님의 평안, 하나님과의 평안, 마음의 평안을 의미합니다. 이런 화평은 ‘하나님과의 조화로운 삶’으로 나타납니다. 세 가지 열매는 대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님 때문에 우리 안에서 자체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만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쁜 일이 있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주님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이 평화로워서가 아닙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평안이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내 안에서 넘쳐나는 것입니다.

Ⅱ.‌ ‌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인간관계’에서 맺는 열매

‘오래 참음’은 고통과 비난을 견디어 내는 인내입니다. ‘자비’는 상대를 향한 부드러운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잃은 영혼과 죽어가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여기에 들어있습니다. ‘양선’은 보답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자선’은 타인을 향한 친절과 선한 일을 의미합니다.

Ⅲ. 충성, 온유, 절제: ‘자기 내면’의 열매

‘충성’은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도 충실한 것, 신뢰할 수 있음, 정직함, 신실함입니다. ‘온유’는 비록 자기 안에 강력한 힘이 있지만 어떤 목적을 위하여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온유는 비겁함이나 굴종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전지전능자로서 예수님은 자신을 온유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절제’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기 훈련을 의미합니다. 열매는 한꺼번에 드러난다기보다는 한 가지 열매가 다른 열매를 불러오는 방식으로 맺힙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 1:5-8) 눈여겨볼 것은 처음에는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 보니 기독교의 가장 대표적인 열매인 사랑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한 가지 열매라도 확실히 맺게 된다면 연쇄 작용으로 다른 열매도 풍성해질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은 각 사람의 특성과 개성을 존중하시되, 그 약점과 결점을 보완하시기 위해 특별한 성령의 열매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위대하게 사용한 분들은 좋은 사람들, 완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한 자, 어떤 면에서는 심각한 결함을 지닌 자였습니다. 다혈질의 베드로, 격정의 요한 형제, 완고한 바울. 하지만 하나님은 기질의 약점을 성령의 열매로 보완하여 사용하셨습니다. 다혈질의 베드로는 감정의 불안정성으로 충동적이고 의지가 박약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절제, 인내, 화평, 양선을 주심으로써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담즙질의 바울은 거친 성격과, 분노와 성급함,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사랑, 화평, 온유, 인내, 자비, 양선으로 균형을 맞춰 주셨습니다. 우울질의 모세와 도마는 자기중심적이고 비관적이며, 우울함과 복수심에 쉽게 굴복하는데 그때 하나님은 사랑, 희락, 화평, 믿음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점액질의 아브라함은 종종 느림과 게으름, 조롱, 고집, 우유부단한 성격을 보여 주었지만, 주님은 사랑, 온유, 절제, 믿음으로써 그를 믿음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9가지 특성이 우리의 강점은 더욱 강화시키고 우리의 약점은 보완해 줍니다.

당신에게 있는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필요한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성령님은 힘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열매는 내면에 맺는 것이요, 은사는 밖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은사가 반드시 열매를 동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열매는 은사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업적을 원하지만 믿음은 성품의 성숙을 지향합니다. 우리는 외형적인 열매를 원하지만, 예수님은 내면의 열매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열매입니다. 내면의 열매는 삶을 통해 나타납니다. 성품은 운명입니다. 성품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성령님은 우리 성품에 역사하셔서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한기채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졸업(B.A.)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졸업(Th.M.)
밴더빌트신학대학교 졸업(M.T.S.)
밴더빌트대학원 졸업(M.A., Ph.D.)
(前) 미국 내쉬빌한인교회 담임목사
(前) 미국 갈보리교회 담임목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역임
한국 기독교윤리학회장 역임
코스타(Kosta) 강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
서울중앙신학원 원장
네팔 코리아국제대학 총장
(現) 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

■저서
『삶을 변혁시키는 책읽기』, 『지명을 읽으면 성경이 보인다』, 『하나님의 위대한 질문』, 『예수님의 위대한 질문』, 『작은 예수 성품 교실』 외 다수
Author

M.T.S / 교회성장 컨설팅 및 연구 프로젝트 진행 / 국제화 사역 / 월간 교회성장, 단행본(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독서) 등을 출간하고 있다. M.T.S (Ministry Training School) 는 교회성장연구소가 2003년 개발하여 13회 이상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교회에 보급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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