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요한복음 13장 34-35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전에 한 음식점 주인이 남긴 글이 인터넷 기사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의 식당에서 곱창을 배달시킨 손님이 음식을 쓰레기 봉지에 버리고 인증샷을 찍어 올린 리뷰를 보고 올린 답변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맛있는 식사를 못 드신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손님의 리뷰를 보고 어제는 조금 생각이 깊어져 일찍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냄새가 난다는 글을 보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가 다시 구워서 집사람과 먹어 보았습니다. 아침마다 아내가 새로 끓이는 미역국도 먹어 보았습니다. 곱창은 냄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음식이기에 한 번 삶고 초벌하고 연탄불을 정해진 화력에 맞추어 굽기에 잡내가 안 나고 불향이 좋다는 손님들의 글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정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50대 후반에 퇴직하고 집사람과 사활을 걸고 하는 가게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한 분 한 분 정성으로 조리해서 보내드리는데 마음이 참 속상합니다. 오픈한지 언 3개월째,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었지만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사진을 보니 오늘은 마음이 무너져 죽을 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손님도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쓰레기로 버리는 사진을 올리셨을까 싶습니다. 찢어지는 마음이지만 그래도 다시 다잡고 우리 손님들이랑 가족들, 손주 생각하면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너무 찡했습니다. 먼저 음식점 주인의 성숙함에 감동받았습니다. 50대 후반에 퇴직하고 아내와 모든 것을 걸고 시작한 사업이었을 텐데 그 리뷰를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그런데도 손님을 배려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회답을 쓴 그분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악성댓글 문화입니다. 익명성을 이용해 너무나 비열하고 나쁜 언어들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악성댓글로 인해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시도합니다. 목회자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저 또한 악성댓글로 상처받은 적이 있고, 지금도 그 말들이 잊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악성댓글 현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중국, 유럽 등 세계가 다 그렇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더 거칠게 메마르고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1-2)

하나님은 크리스천들에게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애만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그 안에서 빛으로 살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빛으로 사는 사람은 사랑이 중심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3장 34-35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세상에 증명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종교적인 삶이나 특별한 교회의 프로그램, 훌륭한 조직력이 아닙니다. 그저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결단한다고 쉽게 되던가요? 마음을 굳게 먹고 ‘이제부터 사랑하며 살아봐야지’ 한다고 진정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던가요? 그렇게 된다고 해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환경에 따라 기복이 심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진정한 변화가 있지 않으면 사랑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불가능한 것을 우리에게 권하지는 않으실 거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이 불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계명을 주신 이유는 이제 곧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실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새 계명에 대한 이 말씀을 주시고, 14장부터는 우리에게 오실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 내면을 변화시키실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이루실 새 모습을 뭐라고 하시는지 오늘의 본문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을 읽어봅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 안에서 이루신 성령의 열매가 여기 나와 있습니다. 제일 먼저 사랑이 나옵니다. 모든 믿는 자 안에 찾아오는 성령님은 우리와 동행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인식하고, 그 안에 거하면 우리 안에 열매가 반드시 맺히는데, 그중에 제일 먼저 사랑의 열매가 열립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저 시끄러운 꽹과리일 뿐이라고 합니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특별한 지식으로 말하고 또한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 구제하고, 자신의 몸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모든 행위는 우리에게 그 어떤 유익도 없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절대적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일평생 사랑 없이 말하고 행하며 살 수 있습니다. 사랑 없이 구제하며 헌신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사랑 없이 믿음의 역사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동기와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 없이 행한 그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랑이란 우리가 가져도 되고 안 가져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필수이며 절대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이자 세상에 주님을 보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열매를 간절히 사모합시다. 우리 안에 와 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이 열매부터 맺으시도록 간구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능력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소망합시다.

그렇다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1. 성령 안에 거합시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3-4)

성경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 안에 성령으로 거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우리에게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람의 관계가 한 쪽의 관심으로만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성령과 우리의 관계도 서로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고 서로 마음을 나눌 때 관계가 형성됩니다. 아무리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해도 우리가 그 안에 거하지 않으면 관계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포도나무 비유를 계속 보면 우리가 어떻게 주 안에 거할 수 있는지 말해줍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성령 안에 거하는 것은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성령님 안에 거하는 것은 그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늘 말씀으로 역사하시고 말씀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계속 접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며 살면 그것이 곧 성령님과 함께 사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떡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밥을 뜻합니다. 우리는 밥을 주식으로 먹고 살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밥을 먹듯 매일 잊지 말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You are what you eat, 우리의 양식이 우리의 본체가 된다.” 카레를 많이 먹는 인도 사람에게는 카레 냄새가, 양고기를 많이 먹는 중동 사람에게는 양 기름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김치를 비롯해 반찬에 마늘을 많이 넣어먹기에 마늘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주식(主食)은 냄새를 비롯해 체질과 기질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면 그 말씀이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어 우리 안에 성령의 향기가 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성품이 우리 안에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 15:9)

2.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라

우리가 주님 안에, 성령님 안에 거하는 두 번째 길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사는 것입니다.
저는 다윗의 삶이 그 모범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광야로 나갔던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사울 왕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어 쫓길 때와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왕권을 빼앗기게 되었을 때입니다. 다윗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 가운데 유다 광야로 나갔고, 그곳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생명보다 귀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 63:3)

그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광야로 쫓겨났지만, 한결같은 사랑으로 자신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바쁜 왕궁에만 머물렀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고는 바라볼 것이 없는 그곳에서 놀라운 사랑, 영원하고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찾았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성령께서 주시는 사랑의 열매를 가지고 사울과 압살롬을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인 것은 알지만,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진 않습니까? 이것을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려고 하지 맙시다. 오직 성령님께 맡기고, 그가 오셔서 우리 안에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실 수 있도록 그 안에 거합시다. 성령님 안에 거하는 자는 말씀 안에 거하는 자이고,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그렇게 살 때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안에 사랑의 열매를 이루실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사랑하며,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랑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승욱 목사(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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