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요한복음 17장 1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성령과 내면의 변화’ 시리즈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주제가 중요한 이유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하시는 첫 번째 일이 내면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고, 우리 교회가 성령충만한 공동체가 되기를 사모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성령이 내면에서 변화를 이루실 수 있도록 맡겨드릴 때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지난 시간에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인데, 가지인 우리가 열매를 맺으려면 하나만 잘하면 됩니다.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때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 보고자 하는 성령님의 두 번째 열매도 그렇습니다. 기쁨의 열매가 우리 안에 잘 맺혀지려면 성령님 안에, 예수님 안에 온전히 거해야 합니다. 그분 안에 거하면서 그분의 기쁨을 잘 묵상하며 우리 자신을 맞춰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13)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자신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시며, 우리 대신 아버지께 간구해주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많은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내가 생각하고 원하고 추구하는 기쁨이 성령의 기쁨이라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우리가 추구하는 기쁨과 다릅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바로 성령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기쁨에 맞춰 살면서 그의 기쁨의 사람들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여행 일정을 짤 때 보통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합니다. 저는 최대한 많은 곳에 들러 구경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박물관이나 역사적인 장소는 물론이고 멋진 자연풍경이 있는 곳까지 유명한 곳은 온종일 돌아다니며 다 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래서 저는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일정을 빡빡하게 짭니다. 사진만 찍고 또 얼른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한국 여행자의 체질이라고 하죠. 그런데 우리 가족은 다릅니다. 한꺼번에 많은 곳을 다니면 너무 지치고, 여행의 여유를 즐기지를 못해서 싫다고 합니다. 아내와 딸은 특히 예쁜 카페에 들려서 차를 마시고 쉬어가야 여행하는 기분이 난다고 해요. 나의 기쁨이 가족의 기쁨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도 가족들의 기쁨에 맞춰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맞춰가다 보니 가족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더라고요. 나의 기쁨을 양보하고 사랑하는 가족의 기쁨을 채울 때 내 안에도 훨씬 더 충만한 기쁨이 찾아옵니다.

성령의 열매인 기쁨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을 묵상하고 그 기쁨에 나의 삶을 맞춰나갈 때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성령의 열매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신 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며 그 기쁨을 향해 우리의 삶을 조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천국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99명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명을 두고 더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인의 회개에 기뻐하심을 강조하는 표현이었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는 죄악의 길에서 뉘우치고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절제하지 못하고 기뻐하는 아버지를 보여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며 기쁨입니다. 주님은 또한 아버지께로 나와야 하는 작은 자 한 명이라도 방해하며 실족하게 하면 아예 연자 맷돌을 목에 메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너무 귀하고 기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게 주님의 진정한 기쁨이라면 우리도 여기에 삶을 맞춰나가야 합니다. 우리도 영혼 구원에 힘을 쓰며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나오는 것을 방해하거나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영혼구원을 귀하게 여기며 살 때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고, 그 기쁨을 통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2. 형제들이 하나 되어 연합할 때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단 한 가지를 놓고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21-22)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이듯 우리도 모두 하나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자신의 영광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감탄사의 문장입니다. 방금 읽은 본문은 연합의 기쁨이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기름 부어 주셨을 때와 같은 감격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3절에서는 우리가 하나 되는 모습이 항상 눈이 덮여 있는 헤르몬산에서 물이 내려와 메마른 땅을 덮는 축복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하나 됨은 주님의 감격과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합하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견해가 다르고, 성향도 달라 연합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압도하며 초월하시는 주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영광에 초점을 둡시다. 우리가 하나 되면 하나님의 기쁨, 우리 주 예수님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쁨의 열매로 변화되는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3. 우리가 전적인 믿음으로 헌신하며 순종할 때

예수님은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성경은 믿음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감동하신 믿음은 표면적인 믿음이 아닌 전적인 믿음, 계산 없이 헌신하며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이방인이자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전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자신이 부하에게 말만 하면 그대로 이뤄지듯이 예수님의 말씀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뤄질 것을 전적으로 믿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가리켜 이스라엘에선 찾아볼 수 없는 믿음이라고 감탄하고 기뻐하셨습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자신이 평생 모아 준비해 두었던 나드 병을 깨어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현장에서 지켜보았던 제자들은 마리아에게 왜 낭비하느냐고 비난하고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가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이 예수님이 곧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죽을 것을 알고서 보인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복음이 전해질 때마다 그의 행위도 같이 전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전적인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계산 없는 믿음으로 헌신하며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이러한 믿음을 배워나갑시다. 표면적이고 의식적인 믿음을 거부하고 어린아이처럼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기쁨을 따라 살게 될 것이며, 그의 기쁨을 통해 우리의 내면도 변화될 것입니다.

4. 우리와 예수님의 친밀함으로 인해

예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설명하셨습니다. 당시 종교인들이 예수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묻자, 신랑이 옆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과 제자들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첫 번째 표적을 보이신 곳이 어디였습니까? 가나라는 마을에서 열린 한 혼인잔치였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주님이 자신의 능력을 처음으로 보이신 것에도 뜻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훗날 우리와 나누실 천국의 혼인잔치를 생각하시며 그 기쁨 가운데 자신의 능력을 보이신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에베소서 5장은 예수님이 신랑이며 교회는 그의 신부라고 말씀하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에서 있을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의 사역으로 구원하신 모든 성도들이 천국에 영원히 누릴 혼인잔치의 기쁨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는 이런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그의 기쁨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합니까?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 간의 친밀함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이룰 때에 주님의 기쁨을 우리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인들처럼 표면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예수님을 따르지 맙시다. 예수님과의 연합을 친밀하게 즐기며 누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렇게 살 때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해질 것이고, 우리는 그의 기쁨으로 변화되는 축복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님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주시는 기쁨의 영성으로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영혼구원, 성도의 교제, 계산 없는 전적인 믿음, 신랑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추구함으로 예수님의 기쁨 안에서 변화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김승욱 목사(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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