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0장 12-13절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여러분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저희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생선초밥입니다. 생선초밥의 생명은 바로 밥 위에 올라가는 회의 ‘신선함’이죠. 신선한 회에 초밥, 정말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음식 전문 칼럼니스트이자 음식문화 저술가인 윤덕노 작가의 『음식이 상식이다』에 의하면 이 생선초밥의 시작은 지금 우리가 즐기는 이유인 신선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생선초밥의 원조는 바로 일본의 전통음식인 ‘나레스시’라는 것인데, 이 음식은 민물에서 잡은 생선인 붕어를 밥과 함께 ‘발효’시켜서 먹은 것이라고 합니다. 즉, 생선초밥의 원조는 신선한 생선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선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발효음식이라는 거죠. 지금은 이 정도까지 발효시키진 않고, 하루 정도 숙성시켜서 생선초밥을 먹곤 하죠. 이처럼 발효음식은 생각하지 않은 곳에도 있습니다. 발효음식은 온도, 습도, 기간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완성됩니다. 그런데 발효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게 있습니다. 바로 ‘부패’라는 것입니다. 조건에 맞으면 발효가 되고, 그냥 음식을 방치하면 부패가 됩니다. 발효는 몸을 건강하게 하지만, 부패는 몸을 상하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말씀, 예배, 교제, 기도 등의 필수조건들을 잘 맞추어주면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믿음은 점점 익어가고 성숙하게 ‘발효’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을 아무 조건도 맞추지 않고 방치해두면 점점 썩고 ‘부패’하게 됩니다. 이번 코로나 시국이 그렇습니다. 이 코로나 시국이 벌써 반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8개월 동안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앙적인 어려움도 함께 생기고 있습니다. 회중성이 빠진 온라인 영상과 음성을 통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또, 온라인 시설이 없는 교회들은 아예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코로나 이후 여러분의 믿음은 ‘발효’했습니까? 아니면 ‘부패’했습니까? 회중성이 빠졌어도 온라인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이 상황에서도 우리의 신앙은 익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온라인이라는 핑계로, 모이지 않는다는 핑계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포기하고, 예배하는 척만 했다면 이 기간 동안 여러분의 신앙은 썩어가고, 부패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코로나 시국에도 신앙이 발효되고 익어가는 우리 청소년들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만 이런 문제가 있었을까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셨어요. 그 믿음을 가지고 출애굽을 하였고,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는 절대적이었어요. 광야에서의 세월은 힘들긴 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믿음이 익어가는 시기였죠. 그러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입성합니다. 그곳에서 믿음의 ‘제도’들이 만들어지죠. 그러면서 그들은 제도에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성전’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성전’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긍정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가시적인 신앙의 중심이 생겼지만, 부정적으로는 하나님 외에 또 다른 것들을 의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전 안의 기물들, 성전 안의 제사장들, 그리고 그들이 해주는 의식들을 믿음의 방편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들은 ‘믿음 발효’의 필수조건인 하나님보다 사람과 의식을 더 중요한 조건으로 삼기 시작했고, 그들은 믿음 발효의 필수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방치되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그들의 모든 행위와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부르짖던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호세아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서 이렇게 믿음이 ‘썩어’서 죄로 ‘부패’해 가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12절입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첫 번째, 우리 안에 하나님의 씨앗과 열매가 없다면 썩어가고 부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농사를 예를 들면서 이스라엘에 선포합니다. 당시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농사를 예로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이 말은 이스라엘의 마음 밭에 공의를 심으면 인애라는 열매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인생 밭이 가꾸어져 있는 땅에 공(Righteousness)를 심고 인애(The fruit of unfailing love)를 거둘 수 있어야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자기를 위하여’, ‘For yourself’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인생을 위해서 이스라엘은 공의를 심어 인애가 열매로 나오는 땅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이스라엘의 내고 있는 열매가 오직 참담한 죄악뿐이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이죠? 농사짓는 형식과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땅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농사의 근본이 땅이듯이, 그들의 믿음의 본질부터 잘못되었고 부패되었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본질이 변질되면 세상에서 뭔가 얻는 것 같지만, 실은 철저하게 부패하고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청소년부 선생님 한 분이 손자를 보셨습니다. 너무나 좋아하시 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코로나 때문에 신생아실에 못 가서 너무 안타깝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이처럼 아기를 보기 위해 신생아실로 가지만, 미래에는 ‘아기 배양실’로 갈 수도 있다는 글을 접했습니다. 생물학자이자 과학작가 인 폴 뇌플러(Paul Knoepfler) 교수가 쓴 『GMO 사피엔스의 시대』를 보면, ‘GMO 사피엔스’란 유전자변형 생물(Genetically Modified Organ ism)의 줄임말인 ‘GMO’와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사피엔스’를 합쳐서 만든 단어로서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변형시켜서 ‘만들어지는 인간’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미 이런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고, 2016년에는 중국 과학자들이 유전자변형 인간배아를 만들어 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기는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미리 제거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고, 외모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꿈의 기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기술의 중요한 문제는 그 배아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병에 걸리거나 죽는 배아가 수없이 많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아가 여성의 자궁에 착상할 때 유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유전자변형 시에 하나의 질병을 없애기도 하지만 그 변형으로 인해 다른 여러 개의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탄생의 본질을 변화시키려 할 때 얻는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훨씬 더 많은 것을 잃는 비극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 믿음의 본질을 버리고 세상을 따라갈 때, 하나님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오늘 13절에 나오는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할 때 겉으로는 많이 얻는 것 같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을 얻지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비참하게 잃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본질의 씨앗이 심겨야 합니다. 그 본질적인 공의의 씨앗이 심어질 때 우리는 실패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의 삶이라는 인생 밭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애의 열매, NIV 성경으로 보면, “the fruit of unfailing love”, ‘실패하지 않는 사랑의 열매’가 열리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실패하지 않는 하나님 사랑의 열매가 열리는 경험이 없다면 여러분은 공의(Righteousness)의 씨앗을 심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씨앗은 무엇일까요? 그 하나님의 공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공의의 씨앗이 여러분의 인생에 뿌려지지 않는 한, 하나님의 실패하지 않는 사랑의 열매를 통해 얻는 축복과 은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 씨앗이 뿌려지지 않는 이유가 단지 여러분의 생각, 스타일, 형식, 외면적인 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닐 수 있어요. 더 깊은 문제로, 신앙의 본질이 사라져버려서 여러분의 인생 밭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씨앗이 뿌려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땅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들락날락했지만, 내 인생의 밭은 내 정욕과 욕망의 씨앗만 받아들이고 오직 세상 자랑과 교만의 열매만 맺을 수 있는 땅으로 이미 변해버렸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라는 겁니다. 이미 우리 인생의 밭은 그리스도의 씨앗을 뿌릴 수가 없는 아주 세상적이고, 교만하고, 악한 상태가 되었다는 거예요(13절). 호세아 선지자 때 이스라엘의 상태가 그랬어요.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명령하십니까?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선포합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 12:12)

두 번째, 하나님의 공의의 씨를 심고, 인애의 열매를 맺는 삶을 위해서는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묵은 땅’이 무엇입니까? 여기 묵은 땅은 단순히 오래된 땅이 아닙니다. NIV 성경을 보니까 ‘Unplowed ground’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Unplowed’란 말은 사전적으로 ‘아직 경작하지 않은’, ‘아직 쟁기질이 안 된’, ‘아직 개간되지 않은’ 이란 뜻을 의미합니다. 즉, 묵은 땅이라는 것은 오래된 땅이 아니라 내 곁에 있었지만 무관심했던 땅이고, 내가 쳐다보지도 않던 땅이어서 한 번도 경작하거나 개간을 하지 않은 새로운 땅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농사를 지던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자신이 땅을 비옥지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땅으로 관리하기 위해 비료를 주고, 물을 주고, 얼마나 열심히 자기의 땅을 경작하고 개간했을까요? 그 수고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죠. 그런데 지금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던 그 땅을 버리고, 새로운 땅, 전혀 건들지도 않은 땅, 지금까지 내가 무관심했던 그 땅을 다시 쟁기질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부패한 이스라엘을 고치는 방법은 현재의 땅을 갈아엎고, 개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예 본질이 훼손된 그 땅은 버리고, 새로운 땅에서 처음부터 쟁기질을 시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 부패하고 썩어가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해서 내리신 해결책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묵은 땅이 어디인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 우리의 묵은 땅은 바로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적인 땅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살다 보니 우리의 땅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영적인 땅에 우리는 너무 무관심했고, 쳐다보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이미 대체해버렸습니다. 예배 대신 공부를 더 우선순위에 놓고, 말씀 대신 교과서를 더 우선순위에 놓고, 하나님 대신 친구들을 더 우선순위에 놓고, 영적 체험 대신 순간의 유흥을 더 우선순위에 놓고, 그것들이 마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인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이며, 합리화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께서 가끔 예화로 사용하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는 젊은 시절에 인터넷 사업을 하셨어요. 장사가 아주 잘되셨다 고 합니다. 당시의 꿈이 ‘돈 많은 장로’가 되는 것이었다고 해요. ‘이 세상에 목회자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보다 장로가 되어서 교회를 돕고 목회자를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겠다’라고 생각을 하셨대요. 잘못된 생각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장로가 되는 꿈’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믿으셨는데, 고백하기는 그 모든 것이 ‘목회를 피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였다고 하십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미국과 영국으로 두 번 유학을 갔어요. 영국은 신학을 공부하러 갔지만, 미국은 다른 이유였어요. 2000년도 초 미국에서 ‘예 술경영’(Art Management)을 전공하기 위해서였어요. 당시 나의 비전은 ‘문화를 통해 하나님을 전하는 사명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생각이 다 ‘목회를 피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였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 당시 담임목사님이나 저나 모두 다 아예 삶의 형식뿐 아니라, 그 안의 본질이 변질되어 있었던 것이죠. 진정한 사명의 밭을 갈고 있지 않고, 지금 내가 가고 싶은 그 땅이 맞다고 합리화하면서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처럼 저희에게 ‘묵은 땅’을 보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항상 옆에 있었지만, 내 땅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내가 경작할 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묵은 땅, ‘목회’라는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땅을 기경할 때부터 하나님께서 담임목사님을, 또한 저를 사용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 내 땅에서 하나님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땅으로 가서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이라는 본질을 잃었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더 열심히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너무 세상만 바라보다가 방치시킨, 쟁기질 한 번 안 한 그 믿음의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예배를 드려야 하고, 말씀을 말씀으로 인정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순간의 유흥, 순간의 기쁨보다 영원한 하나님의 기쁨과 평안을 바라며 그 믿음의 묵은 땅을 갈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괴로울 수 있습니다.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호세아를 통해 말한 본질이고, 바로 그것이 썩어가고 부패해가는 우리의 삶을 치유하고 회복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해결책입니다. 괴롭더라도, 아프더라도 우리는 이제 믿음의 묵은 땅을 기경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묵은 땅을 기경하여서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심고, 하나님의 실패하지 않는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모든 청소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승병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B. A.) 및 신학대학원(M. Div.) 졸업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청소년사역학 석사(M. A. in Youth Ministry)
주안대학원대학교 선교학 박사(Ph.D. in Intercultural Studies)
주안대학원대학교, 침례신학대학교, 협성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청소년 사역 및 선교학 강의
(現)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청소년사역 외래교수
(現) 한국선교신학회 임원
(現) 세계가나안농군운동본부 청소년 분과 자문위원
(現) 오순절성령연구소 부소장
(現) 정암유스미션 연구소장
(現) 금란교회 비서목사, 선교국장, 청소년부 담당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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