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 다음세대 4주차 김윤성 목사(증가교회)

사춘기 신앙(청년부)

요나 1장 1-3절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사춘기, 자아가 살아나다

보통 사춘기라고 하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그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 보면 참 말을 안 듣습니다. 저에게도 그렇게 말을 잘 안 들었던 사춘기 시기가 있었습니다.

저의 사춘기 시절에는 인기 연예인들이 TV에 출연하여 힙합바지를 입었습니다. 벨트도 무릎까지 축 늘어뜨리고, 바닥에 질질 끌리는 바지를 입는 것이 대세였습니다. 연예인들이 입고 다니니까 저도 힙합바지가 너무 입고 싶었습니다. 힙합바지를 입어줘야 멋있어 보이고 폼이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유독 힙합바지 입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똥싼바지를 왜 입느냐, 옷을 왜 질질 끌고 다니느냐”라고 격하게 반대하셨습니다. 이렇게 반대하시면 입지 말아야 하는데, 그때는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하면 왜 더 하고 싶은지 기어코 사서 입었습니다. 힙합바지 입고 친구도 만나고 교회도 갔습니다. 교회에서 어머니를 만났는데, 그런 저를 못 본 척 피하시더라고요.

당시 저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생각은 틀리고 제가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었습니다. 치기 어린 마음에 기어코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춘기를 보낸 겁니다.

사춘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합니다. 미성숙한 생각임에도 자신의 뜻과 고집을 쉽게 굽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뜻이 분명해지는 시기이기에 부모님과 선생님과도 많은 갈등을 일으키는 시기라는 겁니다.

사춘기 선지자 요나

우리가 읽은 요나 선지자 이야기는 주일학교에서부터 많이 들었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요나는 다른 선지자들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보통 선지자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로 행하고, 받은 대로 전하는 사람을 우리는 선지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어떤가요? 

요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받았습니다. 1-2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했습니다.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요나는 어디를 향했습니까? 니느웨를 향해서 즉각적으로 갔나요? 아닙니다. 본문 3절을 보니,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향합니다.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을 것 같았습니다. 니느웨는 악독한 나라이며, 북이스라엘을 수없이 침공하고 괴롭힌 나라니까 용서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심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한 곳은 니느웨인데, 정반대 방향이었던 다시스로 향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선택을 했습니다.

요나의 특이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마치 사춘기를 겪는 아이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한 선지자가 바로 요나라는 인물입니다.

우리도 요나와 같이 ‘사춘기 신앙’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뜻이, 내 생각이, 내 마음이 먼저가 될 때 우리의 신앙이 사춘기 신앙으로 바뀝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답답해 보이고, 융통성이 없어 보이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지혜롭지 못해 보입니다. 내 생각과 판단을 의지하며 선택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끼는 것을 아끼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법륜스님,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유튜브에 법륜스님에게 고민을 이야기하고 답변을 듣는 영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재밌는 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한 여성분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스님, 저희 친정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는데 그때 극락왕생을 빌며 49재도 지냈습니다. 그런데 친정엄마를 생각하면서 궁금한 것이 엄마가 진짜 극락에 계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스님께 희망적인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자 법륜스님이 자신이 하는 말을 따라 하라고 합니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 것이니라.” (“천국이 너희 것이니라.”)

“답이 되었어요?”라는 법륜스님의 물음에 이 여성분이 당황하면서 되묻습니다.

“스님, 그건 교회에서 하는 말 아니에요?”

법륜스님이 대답합니다.

“아니 지금 스님이 얘기하잖아. 스님이! 목사가 얘기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그럼 어머니가 지옥에 갔으면 좋겠어요? 천국에 갔다고 믿으면 편하잖아. 어머니 지옥 갔다고 하면 마음이 편해요, 안 편해요? 천국과 지옥, 아무 곳도 아니고 공중분해 되었다고 하면 마음이 편해요, 안 편해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여성분이 다시 말합니다.

“안 편합니다. 그래도 스님, 천국에 가셨는지, 안 가셨는지 모르잖아요.”

다시 법륜스님이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뭐라고 했어요?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불교의 특징은 자신의 고뇌와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수련을 거듭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겁니다. 자신이 스스로 그 일들을 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그 중심이 맞춰져 있습니다. 

어머니가 천국에 갔다고 생각하라는 것, 그렇게 믿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은 결국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라는 겁니다. ‘엄마야 어찌 됐든지 천국에 갔다 치고 살면 되지 않느냐, 마음만 편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식입니다. 질문자 중심의 상황에 끼워 맞추는 식의 답변밖에는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즉,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에 자기 생각, 환경, 상황이 선택의 기준과 명분이 되는 겁니다.

마침! 다시스행 배를 만난지라

요나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따라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3절 말씀을 보니까 그곳에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려간 곳에 마침! 있었던 다시스행은 마치 요나의 생각을 지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일이 술술 풀리는 겁니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상황과 환경이 풀린다고 다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는 겁니다. 상황과 환경을 자신의 생각에 끼워 맞추어 그것을 하나님의 길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상황과 환경이 명분이 될 수 없습니다. 상황과 환경이 선택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 그것이 우리의 인생의 유일한 명분이요, 근거요,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귀신 들린 여종을 치유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힙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낙심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지진이 일어나면서 모든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집니다. 특이한 것은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옥문을 열어주셨구나, 이건 분명히 하나님 뜻이야! 빨리 나가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즉 사명대로 사는 사람이 바울이었기에 환경이 선택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환경이 아니라 사명을 따라서 그 자리에 남았던 바울과 실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16장 31-32절 말씀입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모든 죄수가 도망갔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간수와 간수의 가정에 말씀을 전하며 그들의 영혼과 육의 생명을 살리게 됩니다.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명에 따라 선택했더니 말씀을 전하고 구원받는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일 첫 번째 질문이 이겁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 답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즉, 어떤 상황과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가 자신의 뜻에 따라서 선택하며 살아가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뜻을 꺾고 하나님께 맞춰갑니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에 하나님의 관심이 나의 관심이 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이 용서하는 것을 용서하게 되는 겁니다.

요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관심을 갖는 니느웨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는 니느웨를 용서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명하신 대로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결국 요나는 바다에 던져지고 물고기 배 속에서 하나님께 항복하고 니느웨로 향합니다. 

길갈, 안종혁 교수

유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청년 사역자 중에 안종혁 교수가 있습니다. 신시내티 대학 석좌교수, (주)실로암 바이오사이언스 창업자, 미국 KOSTA 공동대표, 미주 아가페 결혼교실 설립대표, MEMS(미세전자제어기술) 편집위원 등 이력만 보아도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쓴 『길갈』이란 책을 보면 그의 이야기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이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그는 가정이 어려웠던지라 공고를 졸업하고 방직공장에서 3년간 일을 합니다. 낮에는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 전문대학에서 공부합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인하공대에 편입하여 이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에 취직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길이 ‘학자’라는 것을 깨닫고 서울대 전기공학과 석사 과정을 거쳐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유학 기간의 막바지에 이르면서 마지막 단계인 박사학위 예비시험을 보는데 세 번이나 낙방을 경험합니다. 이제 기회는 단 한 번! 네 번째 예비시험이 남았습니다. 네 번째도 떨어지면 학교를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네 번째 예비시험에서도 떨어집니다. 더 이상 기회가 없는 그는 용기를 내어 마지막 기회를 한 번만 더 달라고 청원합니다.

어렵게 다섯 번째 박사학위 예비시험을 준비하게 됩니다. 마지막 주어진 기회를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재미있었던 성경공부 모임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께 반항하는 마음이 자꾸만 생깁니다. 

“왜 하나님은 4번의 예비시험에서 나를 도와주시지 않았는가?”

지금까지 어려운 시간을 버텨온 것은 언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이 배우고 공부한 것을 사용하겠다는 마음 때문인데 하나님이 침묵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운 겁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 가지 결단을 합니다. 어차피 응답 없는 주님께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합격하겠다는 결단을 합니다. 그런데 주일이 지나고 허리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시험조차 볼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자 그의 내면을 꿰뚫어 보신 하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종혁아, 너에게 가장 귀한 향유 옥합은 무엇이냐?”

“주님, 그것만은 묻지 마세요.”

자신에게 가장 귀한 향유 옥합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박사학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주님 앞에서 결국 안종혁 교수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이제 항복합니다. 평생 주님의 제자로 살겠습니다. 박사학위도 주님 발아래에 기꺼이 내려놓습니다. 주님만 따르겠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안종혁 교수는 자신의 생각과 환경을 꺾어버리고, 이후로는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맞추며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요나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 뜻으로 다시스를 선택하며 회피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환경적인 요인 때문이라며 자신의 뜻을 정당화하고 있진 않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오직 사명의 길입니다. 내 뜻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의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윤성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서울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선교신학(Th.M.) 
(現) 증가교회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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