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 금요예배 2주차 박성규 목사(부전교회)

7 I am series

예수님의 자기소개(6) 길과 진리와 생명

‘7 I am Series’의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생명의 빛, 생명의 떡, 선한 목자, 부활이요 생명, 양의 문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계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맥, 앞과 뒤의 연결된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이 말씀을 하신 시점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날 밤 즉, 고난주간 5일 차인 목요일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강론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강론의 한 부분입니다. 이는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매우 긴 강론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1절에서 16장 33절까지 최후의 강론이 실려 있는데, 오늘 말씀인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은 그 강론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심히 괴로운 마음으로 강론을 펼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괴로워하셨을까요?

첫째, 자신이 제자 가룟유다에게 배신당하고 팔릴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요 13:2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요 13:26)

둘째,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안면몰수(顔面沒收)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요 13:38)

셋째, 십자가는 인류가 행한 사형 방법 중 가장 잔혹하고 참담했습니다. 그 고통을 알고 있는 예수님은 매우 괴로우셨을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이 구원받아야 함에 관심을 쏟으신 것입니다.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요 13:33)

여기에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나옵니다. ‘내가 가는 곳’이란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는 말씀에서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베드로가 그곳이 어딘지 물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 13:36)

그곳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왜 지금은 갈 수 없을까요? 이 문맥은 요한복음 14장으로 이어집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1)

당시 제자들의 마음에는 근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꾸 어디로 가신다고 하고, 자기들 중에 한 사람이 배신할 것이라고 하고, 수제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안면몰수할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우리 제자 공동체가 와해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때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상황도 잘 아십니다. 욥의 경우처럼 때로는 특별한 목적으로 침묵하실 때도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고민과 걱정과 근심을 아시고 그에 대한 해답을 주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의 근심을 해결하여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길 바랍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이제 어디로 가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2)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 천국으로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 부활하사 승천하셔서 바로 이곳 천국으로 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막 16:19) 

승천하여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 이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에서 일어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의 순교 때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5) 

오늘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희생하는 성도들을 보고 예수님은 감동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받으면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 당하는 것을 고마워하십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역사의 마지막 날에 다시 우리 앞에 오실 것입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11) 

이는 가견적(可見的) 재림입니다. 구름을 타고 그대로 오시는 것입니다. 신천지의 주장과는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당시 제자들이 목격했던 그대로 다시 오십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6)

예수님의 두 번째 강림(降臨)인 재림(再臨)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때 성도의 몸을 부활시키셔서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천국으로, 불신자의 몸은 부활시켜서 지옥으로 보내실 것입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 25:46)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9) 

또한, 영생을 얻는 방법은 오직 ‘믿음’이라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완전한 구원을 얻어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속죄받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벌을 받고, 부활을 해도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서 전도해야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영벌이 아닌 영생을, 심판의 부활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을 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궁극적(窮極的)인 목적은 우리를 하늘 아버지의 집,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2)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순되는 것 같은 이 말은 아버지 집인 천국에 ‘거할 곳이 많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부정적 가정법으로, ‘확실히 많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수사법입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3)

예수님께서 먼저 천국에 가서 예비하면, 여기서 ‘~하면’의 조건으로 해석한 원어(ἐὰν)는 조건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예비했을 때’라고 특정 시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거처를 예비했을 때’로 해석하여 ‘재림의 때’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몸이 부활하여, 영혼과 함께 완전한 구원을 받은 상태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의 집, 천국으로 가면서 제자들에게 다시 말합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요 14:4) 

그 말을 들은 도마가 질문합니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요 14:5)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께 가는 그 길을 너희가 안다”고 말씀하셨는데,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길’을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바로 ‘길, 진리,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길, 진리, 생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길을 중심으로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해석해보겠습니다. 세 단어를 이렇게 세 가지로 풀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① 나는 생명에 이르는 진정한(진리의) 길이다 : 진리를 형용사로 푸는 것보다 명사 그대로 풀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② 나는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이다 : 진리를 알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길의 목적지가 천국인데, 마치 진리와 생명이 목적지처럼 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③ 나는 진리와 생명이 되기 때문에 길이다 : 길의 목적지는 천국이다. 예수님이 진리와 생명이 되기 때문에 길이라는 이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 

길, 진리, 생명은 모두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삼중의 표현은 구원 사역의 많은 측면을 강조합니다. 길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데, 그 연결자인 예수님은 길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길이 되십니다.

아프리카에 파송된 선교사 한 분이 선교 대상 지역을 답사하는 도중에 깊은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릴 뻔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지역 답사 때는 원주민을 가이드로 고용했습니다. 원주민 가이드와 함께 다니는데, 계속 이상한 곳으로만 인도해서 정글 속에서 헤매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선교사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당신 도대체 길을 아는 건가요?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에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원주민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정글에는 길이 없어요. 내가 가는 데가 곧 길입니다.”

우리도 지금은 신앙생활을 어려운 길을 걷고 있을지 몰라도, 예수님이 바로 길이십니다. 그분만 따르면 천국에 갑니다.

또한 예수님의 존재와 행하신 모든 일에는 진리이기 때문에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속죄한다는 것도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메시아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따라서 재림 때에 우리의 육신도 부활시킨다는 것이 믿을 만한 것, 즉 진리가 됩니다.

레온 모리스(Leon Morris) 박사는 예수님이 생명임을 증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은 육체적 생명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직 그 이름의 가치에 합당한 생명은 그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바로 그 생명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1-12)

이 영생은 예수님을 모신 자, 영접한 자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 6장 40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 그분의 십자가가 내 죄를 속죄하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죽을 몸도 부활시켜 전인적 구원을 이루실 것을 믿는 자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종교를 뜻하는 영단어 ‘Religion’는 ‘다시’를 뜻하는 ‘re’와 ‘잇다’를 뜻하는 ‘ligare’이 결합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종교란 끊긴 것을 이어주는 것으로 끊긴 것을 이어주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십시오. 그리고 전하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영생을 얻고 구원을 누리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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