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 주일예배 3주차 박한수 목사(제자광성교회)

거룩지수를 진단하라

레위기 19장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몸무게를 재는 것은 킬로그램, 땅의 크기는 제곱미터, 길이는 킬로미터입니다. 이처럼 보이는 것을 측량하는 것도 있지만 IQ나 EQ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측량하는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 엥겔지수를 들어보셨습니까? 1857년 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Christian Lorenz Ernst Enge)이 가계지출을 조사해 발견한 법칙으로, 소득이 낮은 가계일수록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엥겔법칙, 엥겔지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후진국일수록 당연히 엥겔지수가 높습니다. 왜냐하면 월급을 받고 식료품을 사면 이후에 문화생활 할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선진국일수록 엥겔지수가 낮습니다. 식료품비 이외에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거룩지수는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영적 건강 상태는 어떠한가요? 피검사를 하면 건강 상태가 나오고, 재무 상태를 점검하면 재정 상태를 알 수 있듯이 예배 참석, 봉사 등을 통해 그 사람의 믿음 상태, 영적 상태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섬김이나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내면의 영적 상태, 즉 자신의 거룩지수를 점검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영적인 거룩지수를 평가할 수 있을까요?

1. 죄에 대하여 얼마나 깨어있는가? 

어느 날 산에 있는 고목나무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사실 나무가 갑자기 바람에 쓰러진 것이 아닙니다.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속에서는 개미가 나무를 파먹거나 썩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죄에 쓰러졌다는 것은 갑자기 쓰러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죄가 시작되었던 것이고 알게 모르게 곪아있던 죄가 터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거룩지수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어떤 주의 종이 넘어졌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가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그가 스스로 깨닫지는 못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의 영적 상태를 우려하고 걱정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등장한 인물 중에 삼손이 있습니다. 삼손은 가장 큰 은혜를 입고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거룩지수를 측량하지 못했고, 결국 영과 육이 함께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차에도 꼭 있어야 할 표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온도계와 유류계입니다. 차의 생명과 직결되게 때문입니다. 이처럼 영적 상태를 측량하는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이 망가지면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당신의 영적 측량계는 어떠한가요? 망가져 있다면 당장 고쳐야 합니다.

언어는 시대가 흘러가면서 새롭게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동성애’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쉽게 쓰이고 있습니다. 반면, 요즘은 ‘거룩’이라는 단어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찾아보면 ‘거룩’이라는 단어는 성경 외에 없습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수많은 단어와 언어가 쏟아지고 있지만 ‘거룩’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쓰이고 있나요? 어쩌면 50년 후에는 ‘거룩’이라는 단어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에서는 ‘거룩’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쓰고 있나요? ‘거룩’, ‘재림’ 등도 옛날보다 많이 쓰지 않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천국, 지옥이라는 단어가 교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들어야 할 소리가 무엇인가요? 행복인가요? 기쁨인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써야 할 단어가 무엇인가요? 생명이 있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병원에서 병에 걸렸다는 말은 듣기 싫은 말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를 살리기 위한 말입니다. 병을 알아야 치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이 있음에도 병을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게 됩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여야 하는 말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주는 말이어야 합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은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겉모습으로 내 안에 영적 거룩의 상태를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의 영적 거룩지수를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우리는 사소한 죄라 할지라도 두렵게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한 잔’, ‘한 번’, ‘한 사람’, ‘한 시간만’이 내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립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21-22)

범사에 어떤 모양이라도 죄는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 큰 죄, 작은 죄가 없습니다. 죄는 항상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가장 작은 죄는 생각으로 짓는 죄입니다. 예수님은 속으로 품은 죄도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씨는 작지만 태산을 태웁니다. 작은 실수가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죄는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에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철저히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더욱 기도와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면 성령에 충만하게 되고, 성령이 충만하면 거룩하게 됩니다. 말과 옷차림과 행동과 삶의 모든 부분이 바뀝니다.

2) 우리가 접하는 사람들은 거룩한 사람들인가?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폭력배들을 살펴보면 다 문신을 하고 몰려다닙니다. 이처럼 전도하는 사람은 전도하는 사람들끼리,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들끼리, 성경 읽는 사람들은 성경 읽는 사람들끼리, 목회에 전념하는 목사들은 목회에 전념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요? 겉모습으로 사람을 차별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직언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바나바를 비롯한 탁월한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주변에도 역시 12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혼자 고립되지 마십시오.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서 범사에 거룩한 사람들, 신실한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을 평생에 곁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구하셔야 합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잠 1:10) 

3) 거룩한 에너지를 충전받고 있는가? 

우리는 정기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정결하게 씻어내야 합니다. 옷이 더러워지면 세탁을 하고 집이 더러우면 청소를 하듯, 우리의 영혼을 정기적으로 정결케 하는 데 투자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금식을 들 수 있습니다. 금식은 육신의 정욕을 제거하고, 영혼의 분별을 유익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만약 지속적인 죄의 유혹을 받는다든지, 원치 않는 죄의 소굴로 내 발이 걸어가거든, 이는 영의 소원이 육의 소욕을 제어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기에 이제는 특단의 조치로 육의 힘을 빼는 금식에 돌입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의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40일을  금식하신 사건이 나옵니다. 물론 예수님이 금식을 하셨기에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에는 충분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40일을 광야에서 주리셨기에 사탄의 시험을 받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금식하셨기에 육의 공격을 분별하여 승리하셨습니다.

제대로 된 금식은 혼란한 우리의 영혼을 안정되게 하며, 들떠있는 교만한 상태를 겸손하게 만들고,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과 시기와 질투를 물리치는 힘을 주며, 죄에 끌려가는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거룩한 삶으로 전환할 수 있는 동기를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집회일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작정한 기도의 기간이며, 어떤 사람은 거룩한 독서가 될 것입니다.

2. 이 시대를 보라  

시대마다 시대를 지배하는 일종의 사상,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80년대는 민주화, 90년대는 개혁, 2000년대는 정보화시대였습니다. 지금 2020년 세상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요? 시간이 조금 지나가 봐야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이 시대의 정신은 개인화입니다. 정보화는 개인화를 촉발했습니다. 개인의 자유, 개인의 비밀, 개인의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다음 시대의 패러다임은 무엇일까요? 제가 볼 때는 향후 5, 10년 안에는 개인화에 반발하여, 집단화 현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탄의 전략입니다. 개인화의 폐해를 경험한 사람들은 집단화를 요구할 것이고, 이는 적그리스도의 도래와 감시체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바꾸어 남기고 있는데 그것 중의 하나가 바로 공동체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 언제든지 개인의 권리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볼 때 경제적 피해보다 더 위험한 것입니다. 교활한 사탄은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해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하면서 전 세계를 팬더믹, 실체가 불확실한 공포를 심어줌으로 집단 감시체계를 강화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은 달라지지만, 사탄의 전략은 여전히 하나입니다. 그것은 더러움입니다. 그래서 좌우,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사탄이 지배하는 곳은 더렵습니다.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안착한 광야 만나세대는 대단히 강성한 세대로 전쟁에 승리하여, 단숨에 가나안 땅을 정복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20여 년이 흘러 여호수아가 죽기 직전에 이들은 영적으로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승리에 도취해 가나안의 문화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을 세상의 문화와 더러운 세속문화에서 지켜내지 못한 관계로, 청년 복음화율 3%라는 현실을 맞이했습니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을 곁에 두는 세속적 정치를 지향함으로 더럽혀졌습니다.

3. 너희 모두는 거룩하라

우리는 모두 거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거룩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주목하십니다. 이것은 거룩한 자를 사용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진정 복을 받기를 원하면 거룩해야 합니다. 마귀는 더러운 자를 찾고, 하나님은 성결한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 같으면 거룩함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 으뜸이 ‘거룩’입니다. 

4. 거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9:3)

1) 부모를 경외하라(3절)

부모를 떠나 부모를 대적하니 세상의 악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역입니다. 부모를 경외하는 자는 거룩함에 이릅니다. 부모는 모든 자신의 자녀들이 깨끗하길 원하고, 선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거룩하게 되는 길입니다.

2) 안식일을 지키라(3절) 

이 말은 예배를 사수하라는 말입니다. 예배할 때 우리는 거룩해지고, 죄를 깨닫게 됩니다. 예배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예배와 말씀의 찔림을 통해 내 영혼의 수술이 일어나며, 회개가 일어나며, 거룩의 동기를 얻습니다.

3) 우상을 파하라(4절)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9:4) 

우상숭배는 영적인 간음입니다. 영적으로 더럽혀지는 지름길입니다.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고 내 취미, 즐거움을 하나님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따라간다면 분명 우리는 거룩함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목하시고 기억하십니다. 세상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더라도 거룩하게 살아간다면 천국에서 거룩한 자, 진정한 성도로 여김을 받게 됩니다. 로마가 초대교회에 항복했던 이유는 교회가 거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하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교회에 항복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 언어, 꿈, 행동은 얼마나 거룩한가요?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분별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회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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